역대급 참치 풍어에도 그물 찢는 동해안 어민들…"잡으면 불법, 버려야 합법"
역대급 참치 풍어에도 그물 찢는 동해안 어민들…"잡으면 불법, 버려야 합법"
기후변화로 난류성 어종 급증
참치 어획 쿼터(할당량) 이미 소진
풍어에도 웃지 못하는 속사정

지난 9일 강원 강릉시 주문진항앞바다에서 정치망 그물에 잡힌 다량의 대형 참다랑어(참치)가 배에서 내려지는 모습. /연합뉴스
역대급 참치 풍어에도 동해안 어민들은 불법을 피하려 그물을 찢으며 물고기를 바다에 버리고 있다. 기후변화로 바다 생태계는 급변했지만, 경직된 어획 규제와 부족한 인프라가 빚어낸 현장의 비극이다.
18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이원규 전국어촌계장협의회 회장은 기후 변화로 인한 동해안의 고수온 현상으로 참치, 고등어, 정어리 등 난류성 어종이 대거 잡히고 있다고 밝혔다.
과거 주력 어종이었던 한류성 어종의 어획량은 급감한 상태다.
그러나 어민들은 풍어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물에 걸린 물고기를 다시 바다로 폐사시키는 극단적인 조업 현장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1,200톤 쿼터제의 역설... "잡으면 불법, 버려야 합법"
가장 큰 문제는 어족 자원 보호를 위해 국제적으로 설정된 '어획 쿼터(할당량)' 규제다.
이 회장은 "우리나라에서 연간 잡을 수 있는 참치 쿼터량이 1,200톤 정도인데, 올해 참치 어획량이 많다 보니 이 양이 전부 소진됐다"고 설명했다.
쿼터가 소진된 상황에서 참치를 추가로 어획하는 것은 명백한 위법 행위다.
조업 중 고등어나 정어리 등 다른 어종과 함께 참치가 그물에 대거 섞여 들어오기 때문에, 어민들은 참치를 잡지 않기 위해 아예 그물을 찢어 고기 전체를 바다에 방류하고 있다.
법을 지키기 위해 생계 수단인 그물을 찢고, 잡은 물고기마저 수장시켜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이 회장은 이를 두고 "어민들의 눈물이 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영하 60도' 인프라 전무... 잡아도 돈이 안 되는 법적·제도적 공백
그렇다면 참치를 피해 고등어나 정어리를 주력으로 잡으면 되지 않을까. 여기에는 동해안의 척박한 어업 기반시설이라는 또 다른 장벽이 존재한다.
동해안은 전통적으로 오징어 등 한류성 어종 중심의 조업이 이루어지던 곳이다. 최근 북한 수역에서 조업하는 중국 어선들의 영향 등으로 오징어 씨가 마르면서 난류성 어종으로 대체됐지만, 이를 처리할 시설은 준비되지 않았다.
이 회장은 "참치 같은 경우는 영하 60도 이상 급속으로 동결시켜야 하고, 고등어나 정어리도 냉동·냉장 시설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하지만 동해안에는 이러한 제빙 시설이나 급속 동결 시설이 매우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난류성 어종은 생선 자체에 열이 많아 조업 즉시 얼음을 쳐서 보관해야 선도가 유지된다.
법적인 쿼터 제한을 차치하더라도, 고기를 보관할 시설이 없어 선도가 떨어지면 결국 어가 폭락으로 이어져 경제성을 상실하게 된다. 이 회장은 "어업 기반시설이 없다 보니 고기를 잡아 와도 처리할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기후 변화는 이미 동해안의 지도를 바꿔놓았다. 하지만 법적 쿼터 규제는 유연성을 잃었고, 행정 당국의 인프라 지원은 과거의 바다에 머물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