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 교수 에세이(42)] 정 박사님! 축하합니다
[정형근 교수 에세이(42)] 정 박사님!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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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학위를 받는 것은 특정 분야의 연구 전문성을 확인받는다기보다는 인품을 연단 하는 과정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셔터스톡
대학원 다니는 것이 힘들어 어느 학기에는 일부러 등록금을 납부하지 않았다. 변호사 활동을 하는데 박사학위가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학문연구에 대한 뜻도 있는 것이 아니라서 대학원을 중퇴하고 싶었다. 그러고 나니 서울로 수업에 참석하려고 비행기, 전철, 고속버스, 택시를 타고 다니는 부담감도 사라져 후련했다. 땅끝 해남에서 서울까지 오가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며칠 후 지도 교수님이 전화를 걸어왔다.
"정 변호사님이 2학기 등록하는 것을 깜박했나 봐요. 업무로 바빠서 그랬다고 사유서를 대학원에 제출한 후에 등록금을 납부하세요."
직접 전화를 하여 저렇게 챙겨주시는 교수님에게 "미안합니다. 대학원 그만 다니려고 합니다."라고 말씀드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뒤늦게 사유서를 제출하고, 다음 학기 등록금을 납부하였다. 그렇게 어렵사리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괜히 대학원 입학했다가 법률사무소를 시골로 이전하는 바람에 고생을 했는데, 이제는 학교와 관련 없이 지낼 수 있게 되어 홀가분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지도교수님이 전화를 하셨다.
"해남에서 어렵게 대학원 다니느라 고생했는데, 박사학위 논문도 써서 마무리를 잘하면 좋겠네요."
그런 말씀을 하시는 교수님에게 못하겠다고 할 수가 없었다. 그간 고생한 것도 있고 하여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로 했다. 논문 분야는 국가배상법 제5조(공공시설 등의 하자로 인한 책임)로 정했다. 처음에는 "하천의 설치나 관리의 하자(瑕疵)로 인한 국가배상책임 연구"로 제목을 정하고 써나가기로 했다. 하천의 설치나 관리를 잘못한 과실로 발생한 피해배상 문제를 연구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홍수로 제방이 터져서 하천 주변의 가옥이 침수되고 전답에도 큰 피해를 준 것을 자주 봐왔던 터라 재미도 있을 거 같았다.
그리하여 그 제목으로 논문을 쓸 자료를 구하고 있는데, 어느 학교 대학원에서 "하천수해의 국가배상책임에 관한 연구"라는 박사학위 논문이 출간된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미 결정한 같은 주제의 논문을 계속 써야 할 것인지 고민이 되었다. 박사학위는 기존에 연구되지 않은 새로운 분야에 관한 연구여야 한다고 하여, 하천과 관련된 국가배상 연구는 그만두기로 했다. 그래서 논문 주제를 하천이 아닌 도로(道路) 분야로 결정하였다. 논문 제목을 "도로의 설치·관리의 하자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에 관한 연구"로 정했다. 도로를 잘못 만들거나 관리를 소홀히 하여 손해가 생긴 경우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국가배상을 청구하는 내용이었다.
논문자료를 구하려고 일본을 두 번이나 갔다. 동경대 도서관에서 국가배상책임 관련 논문을 구해왔다. 동경대에서 박사학위 과정에 유학 중인 후배가 자료수집에 도움을 주었다. 서점에서도 많은 책을 구입해 왔다. 국가배상 관련 자료는 일본에 많았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우리 대법원 도서관에도 일본 자료가 많았다. 그 후 대법원 도서관에서 몇 박스 분량의 자료를 복사하였다. 서울에서 개업 중인 후배 변호사가 여러 번 도서관을 오가는 수고를 해주었다. 자료를 구하는 데 돈도 많이 들었지만, 원하는 자료를 충분히 구할 수 있어서 매우 기뻤다.
일본에서는 국가배상법 분야의 연구는 거의 완결된 상태로 보였다. 도로나 하천의 설치 또는 관리의 잘못으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도 많았다. 그 결과 각종 자연재해가 많은 일본이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제도적인 환경이 정비된 것 같았다. 특히 고속도로나 일반 도로 또는 공항 부근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교통소음도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사례들이 많았다. 우리 대법원 판결 중에는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 요지를 거의 그대로 반영한 것을 발견하기도 하였다.
퇴근 후에 논문을 써야 했다. 피곤한 몸으로 글을 적어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글은 첫 줄, 첫 페이지 채우는 것이 힘들다. 논문 역시 처음 쓰기가 힘들었다. 복잡한 생각이 스쳐 무엇을 어떻게 적어야 할지 모른 상태에서 컴퓨터 자판에 손을 얹으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정리된다. 그리고 누에고치에서 가느다란 비단실이 나오듯 글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페이지를 넘기게 되고, 한참 진도가 나가 250면가량 이르게 되었다.
그렇게 완성된 논문을 지도교수님에게 보여드리고 수정하는 작업을 반복하였다. 그렇게 완성된 논문을 제출하였다. 학교에서는 내가 해남에서 근무한다고 심사날짜도 공휴일로 잡아 주었다. 심사위원장을 맡으신 서울법대 최송화 교수님을 비롯하여 교수님 네 분이 심사를 하였다. 한여름에 선풍기가 돌아가도 무더운 기온에 긴장을 하니,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흘렀다. 날카로운 질문이 오갔고, 특히 한국의 연구 수준이 미흡하여 일본 자료를 많이 참고하였냐는 질문도 있었다. 논문 내용에 나오는 학설을 놓고 심사위원들 사이에 논쟁이 붙어서 논문심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심사위원들이 치열한 학술토론회를 개최한 것 같은 언쟁이 오가는 것을 긴장 속에 지켜보았다.
"아, 싸우지들 마시고 제 논문심사나 빨리해주세요!"
이런 생각이 치솟아 올랐다. 논문 심사는 심사위원 한 분이 한 장(章)을 맡아서 미리 검토한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질문하였다. 그렇게 다섯 분의 질문이 끝난 후에 또다시 처음 순서대로 질문과 수정할 곳을 지적하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금방 수긍할 만한 지적도 있었지만, 동의하기 어려운 사항을 물고 늘어진다는 느낌도 받았다. 좋게 물어볼 말도 의도적으로 날카롭고 뾰족한 어투로 질문하는 것으로 보였다. 기분이 상한 적이 많았지만, 모든 질문과 지적에 공손하게 답변을 하였다. 박사학위를 받는 것은 특정 분야의 연구 전문성을 확인받는다기보다는 인품을 연단 하는 과정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그런 혹독한 심사 시간이 지난 후에 심사위원장께서 나에게 잠깐 밖에 나가 있으라고 했다. 여름 날씨에 긴장한 탓에 땀이 흥건했다. 한참 후에 들어오라고 하여 심사실로 들어갔다.
"정 박사님! 축하합니다!"
심사위원장이신 최송화 교수님이 환한 표정으로 축하해주셨다. 심사하던 때와는 전혀 다른 표정이었다. 2001년 8월에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변호사 개업한 지 6년 만이었고, 44세 되던 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