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현장서 쫓겨나는 원주민들 곁엔 늘 '그'가 있었다⋯"숨쉴 구멍 되겠다"
재개발 현장서 쫓겨나는 원주민들 곁엔 늘 '그'가 있었다⋯"숨쉴 구멍 되겠다"
서촌 궁중족발부터 정릉골까지
이종건 활동가가 목격한 젠트리피케이션의 민낯

을지로 노가리 골목의 '을지OB베어'가 강제집행으로 철거된 2022년 4월 21일 을지OB베어 자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옥바라지선교센터와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강제집행을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는 모습. /연합뉴스
도심 재개발로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철거민들을 10년째 지켜온 가장 강력한 무기는 투쟁 구호가 아닌 따뜻한 밥상이었다.
10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유승민 작가는 지난 10년간 강제집행 현장에서 철거민들의 곁을 지킨 이종건 '옥바라지선교센터' 활동가의 여정을 조명했다.
서대문형무소 맞은편 옥바라지 골목부터 서촌 궁중족발, 청계천 공구거리, 을지로 오비베어 등 서울의 굵직한 젠트리피케이션(낙후된 구도심이 번성해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 현장에는 늘 그가 있었다.
"서울의 불평등 목격"⋯ 신학대생이 10년 차 철거 현장 활동가가 되기까지
시작은 지난 2016년 옥바라지 골목 재개발 강제집행 사태였다.
당시 신학대에 재학 중이던 이 활동가는 역사학자들과 예술가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골목을 지키기 위해 분투할 때, 전도사로서 할 수 있는 예배를 택했다.
이 활동가는 방송 인터뷰를 통해 "서울이란 도시가 굉장히 불평등하고 이상한 구조로 짜여 있구나를 목격했다"며 "투쟁에 모든 걸 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옥바라지 하는 마음으로 숨쉴 구멍이 되자는 마음으로 옥바라지선교센터라는 이름을 가져갔다"고 밝혔다.
그의 발길은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밀려나는 세입자들에게 향했다.
임대료 인상을 둘러싼 건물주와 세입자 갈등으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의 계약갱신요구권이 5년에서 10년으로 개정되는 계기가 된 '궁중족발 현장'이 대표적이다.
이후에도 제조업의 심장이던 청계천 공구거리, 42년 역사를 지닌 서울미래유산 을지로 오비베어 등이 하루아침에 철거되는 과정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
폭력과 대치 공간 허문 건 성명서가 아닌 '식기'와 '화구'
폭력적이고 거친 대치가 일상인 강제집행 현장에서 시민들의 마음을 연 것은 잘 만든 구호가 아니었다. 유 작가는 "철거민들과 마주 앉는 밥상에서 시민들 마음속 문턱이 허물어진다"고 분석했다.
이 활동가 역시 현장의 연대는 밥상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주 가혹한 형태의 강제 철거를 당했다고 하더라도 거기서 가장 먼저 마련되는 거는 화구를 준비하는 거고 식기를 준비하는 게 제일 먼저였다"며 "철거민들이 제일 걱정하는 거는 여기 모인 사람들이 지금 이 시간에 밥을 어떻게 해결할까 발을 동동 구르며 걱정하신다"고 회상했다.
멀리서 연대하려는 시민들 또한 가장 먼저 식사 해결 여부를 물으며 김밥과 컵라면을 보내왔다. 강제집행이 들어온 날, 부서진 현장에 다 같이 모여 김밥을 먹었던 기억이 가장 선명하다는 것이 이 활동가의 고백이다.
1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강제성⋯ 지금은 '정릉골'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이 활동가가 체감하는 강제 철거 폭력성과 젠트리피케이션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들이 만든 공간이 부유한 사람들의 사적인 공간인 아파트로 대체되는 비극은 현재 성북구의 마지막 달동네 '정릉골'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1960년대 청계천 철거민들이 이주해 형성된 정릉골은 임대주택이 한 채도 들어서지 않은 채로 재개발이 추진되며 주민들이 또다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현재 이곳에서는 수십 년간 살아온 주민들이 동네와 제대로 작별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한 달 동안 '굿바이 정릉골' 행사가 진행 중이다. 삶의 터전이 밀려나는 연대 현장에도, 어김없이 매일 따뜻한 밥상이 차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