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없는 법 통과⋯곧 대한민국은 전동킥보드 무법지대(無法地帶)가 된다
생각 없는 법 통과⋯곧 대한민국은 전동킥보드 무법지대(無法地帶)가 된다
풀어줬다 다시 옥죄려한다⋯전동킥보드 규제 '아이러니'
부랴부랴 법 다시 고치고 있지만⋯앞으로 최소 4개월간 '무법지대'
사고는 3년 만에 18배 폭증했는데⋯국회는 왜 그냥 법을 통과시켰나

"규제 완화하겠다"며 법 통과시키더니, 손바닥 뒤집듯 다시 "규제하겠다"며 법안을 준비하고 있는 규제. 전동킥보드 법안을 둔 국회의 헛발질을 정리해봤다. /셔터스톡⋅편집 및 국회=조소혜 디자이너
앞으로 최소 4개월. 대한민국이 전동킥보드의 '무법지대(無法地帶)'가 된다. 당장 이틀 뒤면 면허가 없어도 전동킥보드를 탈 수 있도록 규제가 '완화'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키보드는 사고는 하루에 5건 가까이 발생하고 있는데, 규제가 완화되면 더 많은 사고가 예상된다.
특히나 면허가 사라지면서 킥보드를 탈 수 있는 최소연령이 만 16세에서 만 13세로 낮춰진다는 점이 가장 우려스럽다. 하루아침에 청소년 130만명이 전동킥보드를 타고 다닐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사고가 한 차례 더 급증할 수도 있다"고 걱정하는 이유다.
이틀 뒤에 닥쳐올 이런 문제점에 대비해 국회가 부랴부랴 "규제를 부활하겠다"고 나섰지만, 아무리 빨라도 내년 4월까지는 방법이 없다. 규제 부활법안을 최대한 빨리 통과시키더라도 그 이상 시차를 좁힐 수 없기 때문이다. 최소 4개월간의 '법률상 공백'으로 피해를 보는 건 고스란히 국민이다.
어디서부터 뭐가 어떻게 꼬인 건지 로톡뉴스가 정리해봤다.
대한민국에 처음 전동킥보드 공유서비스가 등장한 건 지난 2018년 9월. 성장세는 대단했다. 반년 만에 가입자 수 4만명을 돌파했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4차위)가 발 빠르게 대응했다. "사용자가 늘고 있는 전동킥보드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면허 면제, 자전거도로 주행 허용 등이 구체적인 방안이었다. 전동킥보드 관련 업계가 우후죽순 생겨난 것도 이때였다. 대학 캠퍼스와 서울⋅부산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전동킥보드가 확산하기 시작했고, 현대자동차와 카카오⋅네이버 등 대기업도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규제 완화 입법화도 순조로웠다. 업계가 요구했고 정부가 힘을 실었다. 지난 3월 '제5차 규제⋅제도혁신 해커톤'에서 행정안전부⋅국토교통부 등이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물론 안전을 이유로 규제 완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나왔지만, 그다지 힘을 얻지는 못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지난 5월 국회는 규제를 완화한 개정안(도로교통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직접 관련 법안 3개를 통합해 만든 개정안이었는데 '면허 면제'가 골자였다. 기존에는 전동킥보드의 법적 지위가 '원동기(소형 오토바이)'였으나, 이를 '자전거' 수준으로 낮췄다.
로톡뉴스는 당시 국회 회의록을 들여다봤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안전에 문제가 생기지 않겠느냐", "현실적으로 위험한 내용은 없느냐" 등의 찬반 토론 내용을 분석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행정안전위원회에서도, 법제사법위원회에서도, 본회의에서도 토론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의 없느냐", "더 이상 토론하실 위원님 안 계시느냐"는 의장의 질문에 돌아온 답은 매번 같았다.
"예."
법사위에서는 전문위원이 검토보고서까지 제출했지만, 이마저도 1쪽짜리 분량에 1문장으로 끝났다.
"검토한 결과 별다른 문제점이 없는 것으로 보임."
어째서 아무도 토론하지 않았을까. 지난 11월 JTBC 보도에 따르면 국회의원들은 당시 상황 자체를 기억 못 하는 경우가 많았다. "왜 토론하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 법안이 뭐냐", "내가 아무 얘기도 안 했었냐"며 되묻거나, "위험하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막연하게 생각했다"는 식으로 답했다.
국민들이 넘어지고, 부러지고, 찢어지고, 죽고 있다. 아직 법이 시행되지도 않았지만 "전동킥보드의 안전에 구멍이 뚫렸다"는 보도가 쏟아진다. 올해 2분기(4~6월)에만 벌써 440건. 이 중에는 사망 사건도 드물지 않았다. 사망자 중에는 운전자 물론 동승자와 인도를 걷던 보행자까지 있었다.
지난 4월에는 부산 해운대에서, 5월에는 인천 논현동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킥보드 운전자가 숨을 거뒀다. 이들은 신호를 위반했고 헬멧 등 안전장비도 착용하지 않았다. 8월에는 서울 신림동에서 길을 걷던 60대 행인이 중태에 빠졌다. 내리막길을 과속해서 내려오던 전동킥보드가 피해자를 그대로 덮쳤다.
사고 방지를 위해 "과속이라도 못 하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여기에도 법에 구멍이 나 있다. 현행법에도, 앞으로 개정될 법안에도 이를 어겼을 때 처벌하는 규정이 없다. 헬멧 등 안전장비 미착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불법인 건 맞지만 이를 단속하고,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는 셈이다.
경찰청 교통기획계 담당자도 로톡뉴스와 통화에서 "전동킥보드의 제한 속도인 시속 25km를 넘어도 처벌 규정이 없다"며 "번호판이 없어서 (속도위반 여부를) 인지하는 것도 어렵다"고 밝혔다.
사고는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데 사고 방지를 위한 기본적인 법령도 '공백'인 것이다.

안전 규제 '번복' 사태는 이렇게 벌어졌다. 규제를 완화한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급기야 사실상 만장일치로 규제를 완화해줬던 국회가 다시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7개월 전과는 정반대로 안전 기준을 올리는 법안을 잇달아 발의됐고, 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재개정안을 의결했다.
다시 면허 제도를 부활해 만 16세부터 전동킥보드를 탈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행되려면 아무리 빨라도 내년 4월이다. 재개정안의 시행 시기를 '공표 후 4개월'로 정했기 때문이다. 오는 9일 본회의를 통과한다고 치더라도,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는 시간 등을 거치면 내년 4월부터 시행될 수 있다.
그때까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정부는 부랴부랴 경찰청, 공공기관, 사업자들과 민관 업무협약을 맺었다. 개정안이 시행돼도 만 18세 아래로는 업체가 전동킥보드를 대여해주지 않기로 한 내용이었다. 정부의 제안에 업체들이 응한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엇박자'는 당분간 피할 수 없다. 10일부터 시행되는 개정안에 따라 운전은 '만 13세부터', 업무 협약에 따라 대여는 '만 18세부터'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적어도 4개월 넘게 우리 국민들은 무법지대에서 살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