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건 수중 훈련이 '체육행사' 둔갑"... 故 이윤봉 소방위 위험순직 인정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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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건 수중 훈련이 '체육행사' 둔갑"... 故 이윤봉 소방위 위험순직 인정될까

2025. 12. 09 17:09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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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j.jo@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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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동료 소송서 "사실상 훈련" 인정

형식 논리에 갇힌 '위험순직'의 벽 넘을지 주목

수중 인명 구조 훈련하는 소방대원들 /연합뉴스

2023년 5월, 강원도 삼척의 한 바다. 삼척소방서 119구조대 소속 베테랑 구조대원인 고(故) 이윤봉 소방위(당시 48세)가 차가운 바다 속에서 숨을 거뒀다.


그가 입고 있던 것은 30kg에 달하는 고중량 잠수 장비였고, 장소는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저수온 해역이었다.


고(故) 이윤봉(당시 48세) 소방위 /연합뉴스


누가 봐도 고도의 위험이 따르는 '수중 인명구조 훈련' 현장이었지만, 서류상 이 활동의 명칭은 '부서별 직장체육행사'였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이 소방위의 죽음을 '위험직무순직'이 아닌 일반 순직으로 처리했다. "단순 체육행사 중 사망"이라는 이유였다.


오는 19일, 인사혁신처가 이 소방위의 위험직무순직 인정 여부를 놓고 재심의에 들어간다. 핵심 쟁점은 '체육행사'라는 행정적 외피를 벗겨내고, 그 안에 감춰진 '실전 훈련'의 실체적 진실을 인정하느냐에 달려있다.


"훈련할 곳 없어 체육시간 쪼갠다"... 비극의 서막

사건의 발단은 열악한 소방 훈련 현실에 있었다. 유족과 동료 소방관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일선 소방서에는 잠수 훈련을 할 수 있는 전문 시설이나 장소가 거의 전무하다. 하지만 구조대원들은 정해진 교육 시간을 이수해야 하고, 언제 닥칠지 모를 수난 사고에 대비해 감각을 유지해야만 한다.


수중정화 활동하는 소방대원들 /연합뉴스


결국 대원들이 선택한 고육지책은 '직장체육행사'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서류상으로는 '수중정화활동'이나 '체육행사'로 기재하고, 실제로는 실전과 다름없는 수중 탐색 및 인명 구조 훈련을 진행해온 것이다. 이 소방위의 사고 당일 역시 명목은 '환경 정화'였지만, 실제로는 고난도 잠수 기술을 요하는 실습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소방위의 동료들은 "정화 활동이라는 명칭 하나가 수중 작업의 고위험성을 희석시켰다"며 "죽음마저 훈련이 아닌 체육행사의 범주로 축소된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입을 모은다.


법원의 반전 판결 "그것은 훈련이었다"

인사혁신처가 이 소방위의 위험직무순직을 불승인한 것과 달리, 사법부는 이미 해당 활동의 '훈련적 성격'을 인정한 바 있어 이번 재심의의 강력한 변수로 떠올랐다.


사고 당시 함께 활동했던 동료 소방관 A씨의 행정소송 결과가 결정적이다. A씨는 당시 "걷기 운동을 하라"는 지시를 어기고 수중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견책 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주며 징계 처분을 취소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스킨스쿠버 장비를 이용한 활동이 119구조대의 중요 업무인 점 ▲해경에 사전 신고하고 안전 절차를 밟은 점 ▲해당 활동이 소방공무원 교육훈련 규정상 '수준 유지 훈련'에 해당하는 점을 명확히 했다. 즉, 법원은 서류상의 '체육행사'가 아닌 실질적인 '교육훈련'으로 판단한 것이다.


'형식'보다 '실질'... 위험직무순직의 법적 요건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안이 '공무원 재해보상법'의 입법 취지를 시험하는 무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위험직무순직은 생명과 신체에 고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직무를 수행하다 사망한 경우 인정된다. 법적으로 '실기·실습 훈련 중 입은 재해' 또한 이에 포함된다. 쟁점은 서류상 '체육행사'로 적힌 이 활동을 법률상 '실기·실습 훈련'으로 볼 수 있느냐다.


대법원 판례는 교육훈련의 범위를 넓게 해석하여 "직무수행과 직접 관련된 준비 행위"까지 포함하고 있으며, 행정 처분에 있어 '형식'보다는 '실질'을 우선시하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법무법인의 한 전문가는 "고중량 장비를 착용하고 저시야 해역에 들어간 행위는 실질적으로 고도의 위험이 내재된 훈련"이라며 "동료 소방관 사건에서 법원이 이미 '훈련의 성격'을 인정한 만큼, 인사혁신처가 형식적 명칭에 얽매여 위험직무순직을 거부한다면 이는 법원의 판단과 배치되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19일의 재심의, 명예회복의 길 열릴까

유족 측은 "위험을 무릅쓰고 훈련하다 죽음을 맞이했다면 그에 합당한 예우가 있어야 한다"며 고인의 명예 회복을 호소하고 있다. 위험직무순직으로 인정될 경우, 유족 급여와 연금 등 경제적 보상뿐만 아니라 국가유공자 등록을 통해 고인의 희생을 국가가 공식적으로 기리게 된다.


현장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편법 아닌 편법을 쓸 수밖에 없었던 소방관들. 그 과정에서 발생한 비극을 국가가 단지 '서류상의 이름'을 이유로 외면한다면, 누가 국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차가운 물 속으로 뛰어들 것인가. 오는 19일, 인사혁신처의 결정에 소방 조직 안팎의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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