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간 돌봐온 지적장애 딸 살해한 엄마…재판부 "딱한 사정이 있다" 집행유예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20년 간 돌봐온 지적장애 딸 살해한 엄마…재판부 "딱한 사정이 있다" 집행유예

2021. 10. 21 15:04 작성2021. 10. 21 15:13 수정
박선우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sw.park@lawtalknews.co.kr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지적장애와 자폐 앓던 딸 살해한 어머니

20년 넘게 사랑으로 보살폈지만⋯다른 자녀도 백혈병 진단 받으며 불행 겹쳐

재판부 "부모가 자녀의 생사 결정할 권리 없지만⋯딱한 사정 있다" 집행유예

"딱한 사정이 있다." 살인 혐의를 받는 피고인을 향해 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죄의 무게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자신의 친딸을 살해한 어머니 A씨. 재판부는 왜 A씨를 선처해준 걸까. /게티이미지코리아·편집=조소혜 디자이너

"딱한 사정이 있다."


살인 혐의를 받는 피고인을 향해 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죄의 무게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말과 함께 피고인 A씨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자신의 친딸을 살해한 어머니 A씨. 재판부는 왜 A씨를 선처해준 걸까.


지적장애 앓는 큰 딸 지극정성으로 보살핀 어머니에게 닥친 시련

A씨에게는 두 명의 딸이 있었다. 그 중 첫째 딸 B씨는 선천적인 중증 지적장애와 자폐증을 앓았다. 장애로 인해 평소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던 B씨. 이를 A씨가 온전히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A씨는 딸 B씨의 치료와 특수교육 등을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고됐을 법 하지만 그래야 한다고 A씨는 생각했다.


그렇게 20년이 넘는 시간을 큰딸에게 쏟았다. 그러던 A씨에게 또 하나의 시련이 찾아왔다. 둘째 딸이 백혈병 진단을 받으면서다. 당시 둘째 딸의 나이는 불과 15세. 항암치료를 받아야 했던 둘째 딸도 어머니의 도움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두 딸 모두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A씨의 육체적 부담과·정신적 스트레스는 점점 쌓여갔다. 그리고 아이들 모두가 이렇게 된 것이 자신 때문은 아닌지 자책감과 우울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A씨의 고통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A씨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사망했기 때문. 이런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A씨는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러던 중 지난해 7월, 또 다시 시작된 B씨의 폭력적인 행동. 냉장고 문을 열고 의자를 미는 등의 행동이었다. A씨에겐 지난 20년간 B씨를 돌보며 숱하게 겪었던 것. 일상과도 같았지만, 그날의 A씨에겐 일상이 아니었다.


'죽기 전에는 이렇게 힘든 일상이 끝나지 않겠구나.'


A씨는 그렇게 죽음을 결심했다. 이후 차를 몰아 공터로 향했다. 하지만 A씨 혼자가 아니었다. 큰딸 B씨도 함께였다.


재판부 "첫째 딸에 못다 준 사랑을 둘째 딸에 베풀어라" 집행유예 선고

먼저 B씨를 살해한 뒤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A씨. 하지만 살아남은 A씨는 결국 지난 4월 살인 혐의로 법정에 섰다.


이 사건을 맡은 창원지법 제4형사부 장유진 부장판사는 먼저 "인간의 생명을 고의로 침해하는 행위는 매우 중대한 범죄"라고 지적했다. 딸 B씨의 생명은 한 번 잃은 이상 영원히 회복할 수 없고, 부모가 자녀의 생사를 결정할 권리까지 갖는 건 아니라는 취지에서였다.


이어 장 부장판사는 "자녀가 신체장애 또는 정신장애를 가졌더라도 그 때문에 자녀의 생명을 침해하는 행위는 오히려 범행에 취약한 피해자를 상대로 한 것이어서 비난 가능성이 더욱 크다"고 했다. 또한, A씨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모두 같은 선택을 하는 것도 아니라고 지적했다.


다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복지시설 및 단체 봉사활동, 대민지원 봉사활동 등 40시간의 사회봉사도 명령도 부과됐다.


우선, 우발적으로 저지른 것이 고려됐다. 장 부장판사는 "A씨는 20년 이상 중증 지적장애를 가진 피해자에게 사랑과 관심을 보이며 여느 부모 이상 노력해온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던 중 여러 사건들로) 심신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둘째 딸에게 A씨가 필요하다는 점도 감안했다. 장 부장판사는 "A씨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해 투병 중인 둘째 딸을 돌보게 함으로써 첫째 딸 B씨에게 못다 준 사랑을 베풀 수 있게 하는 것이 형벌의 목적에 비춰볼 때 실형 선고보다 적합하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장 판사는 "A씨가 비록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사람이기도 하지만 피해자를 20년 이상 돌봐온 어머니이자, 가장 가까운 유족"이라며 "피해자의 사망을 누구보다 슬퍼하고 아픔도 가장 크게 받을 사람"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딱한 사정들을 고려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고 판시 이유를 밝혔다.

나만 모르는 일상 법률 상식, 매일 아침 배달해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