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엄마 "아빠한테 납치당한 제 딸을 돌려보내 주세요"…대법원의 판단은?
프랑스 엄마 "아빠한테 납치당한 제 딸을 돌려보내 주세요"…대법원의 판단은?
면접교섭 기간 끝났는데도 딸 돌려보내지 않은 아버지⋯대법원 "미성년 약취죄 성립"
사건 대리한 김재련 변호사 "정말 의미 있고, 마땅한 판결 나와"

면접 교섭 후 양육권자에게 돌려보내지 않으면, 자신의 아이 일지라도 "미성년자 약취죄가 성립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 게티이미지코리아·편집=조소혜 디자이너
"면접교섭 끝나면 집으로 아이 데려다줄게."
아내와 이혼한 남편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는 면접교섭 기간이 종료됐음에도, 아이를 양육권자인 아내에게 돌려보내지 않았다. 오히려 아내와 연락을 끊었고,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연락하는 것도 막았다. 당연히 만나지도 못하게 했다. 아내 입장에선 '자녀가 납치를 당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까진 남편이나 아내가 이런 행동을 해도 처벌되지 않았다. 해외와 달리 명시적인 처벌 조항이 없는 게 결정적이었다. 그나마 미성년자 약취(略取)죄를 적용하는 게 최선이었지만, 수사기관에서부터 소극적이었다. 폭행⋅협박 등을 사용한 게 아닌 이상 이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오늘(9일) 기념비적인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에서 최초로 이 행동이 "미성년자 약취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분명히 했다. 아이를 억지로 납치하는 등 강력범죄에서나 적용되던 혐의가, 자녀를 돌려보내야 하는 의무를 따르지 않았을 때도 적용될 수 있다고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약 5년 3개월, 정확히 1929일 만에 '집'으로 돌아간 아이가 있다. 당시 10살이었던 레아다. 한국인인 레아의 아버지 A씨는 이혼 절차를 밟던 중 면접교섭권을 이용해 레아를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데려왔다. 이후 약속한 날짜가 지났는데도, 레아를 프랑스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레아의 어머니인 프랑스인 아가타씨는 레아를 되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법에 호소했다. 결국 프랑스 법원은 A씨에게 유죄를 선고하며 국제체포 영장까지 발부했지만 A씨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A씨가 이렇게 고집부릴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지금까지 한국에서 이런 행동이 '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제 아가타씨는 A씨를 한국 수사기관에 고소했지만, 검찰은 2번이나 무혐의 처리했다.
결국 아가타씨는 검찰의 무혐의 처리가 "부당하다"는 신청을 법원에 냈고, 이를 법원이 받아들인 끝에서야 겨우 A씨를 한국 법정에 세울 수 있었다.
그렇게 아가타씨가 레아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동안, 레아는 5년간 한국에서 A씨와 지냈다. 프랑스어를 잊어버렸고, 아가타씨와 만나지도 못했다.
우리 법원은 1⋅2⋅3심 모두 A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지난 2019년 5월 1심을 맡은 수원지법(형사 9단독 김상연 판사)은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이 판결에도 A씨는 레아를 돌려보내지 않았고, 항소했다.
다행히 레아는 2심 재판 과정에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당시 재판장(수원지법 제2형사부 김귀옥 부장판사)이 선고 직전, A씨에게 "아이를 (엄마에게) 돌려보내라"며 "그렇지 않으면 선처가 불가능하다"고 최후통첩을 한 덕분이었다. 이때가 지난 2019년 10월. 마침내 레아는 아가타씨와 함께 프랑스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2심에서 징역 1년의 '선고유예'로 선처를 받은 A씨.
A씨 측은 "대법원의 판단을 다시 받아보겠다"며 상고했지만, 9일 대법원에서도 원심(2심) 판결을 확정했다. A씨의 행동은 자신의 아이를 데려온 것일 지라도 '불법'이라는 취지였다.
이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면접교섭권 행사를 빌미로 미성년 자녀를 데려간 후 자녀를 인도받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경우 형사 범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라며 "부모의 분쟁 상황에서 미성녀자의 자유와 복리를 충실히 보호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조차 열리지 않을 뻔한 사건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덕분에 대법원에서 '최초'라는 선례가 남게 됐다. 법원의 이번 결정을 이끌어 낸 건 법무법인 온세상의 김재련 변호사다. 김 변호사는 그동안 아가타 씨 측을 대리해 사건을 담당했고, 직접 레아를 프랑스로 데려다주고 오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9일 로톡뉴스와 통화에서 "레아는 현재 어머니와 함께 무척 잘 지내고 있다"며 "정말 의미 있고, 마땅한 판결이 나온 것"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지금도 대한민국엔 부모가 이혼하면서 미성년 자녀를 볼모로 삼는 경우가 너무 많다"며 그런 점에서 대법원이 의미 있는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다만, 해당 판결을 일반화해서 바라보긴 어렵다. 대법원 관계자는 "행위의 목적과 의도, 당시의 정황과 피해자의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미성년자약취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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