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돌봐준 은인 무참히 살해한 노숙인의 범행 이유 "다른 사람에게 잘해줘서⋯"
4년간 돌봐준 은인 무참히 살해한 노숙인의 범행 이유 "다른 사람에게 잘해줘서⋯"
[지나간 판결 훑어보기] 자신이 호의 베풀었던 노숙인에게 살해당한 60대
범행 동기 물었더니 "다른 노숙인에게 잘해주는 게 불만이었다"

없는 처지에도 여러 노숙인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기로 소문난 60대 노인이 무참히 살해된 채 발견됐다. /그래픽=조소혜 디자이너
부산의 대표적인 번화가, 서면이 있는 부산진구. 지난해 9월 이곳의 한 옥탑방 주변이 비통함에 잠겼다. 없는 처지에도 여러 노숙인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기로 소문난 60대 노인 A씨가 무참히 살해된 채 발견되면서다.
A씨는 옥탑방에 살면서 그 건물을 관리해주는 대가로 약간의 월급을 받았고, 노점에서 작은 화분을 팔아오며 소소하게 생계를 꾸려왔다. 넉넉지 않은 사정이었지만 길거리를 배회하는 노숙자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한 손에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한 장을 쥐여주고, 잘 곳이 없다면 옥탑방 한 켠을 기꺼이 내어줬다. 모두가 더럽다고 피하는 노숙인들을 위해 선뜻 다가갔던 '노숙인들의 천사'였다. 그런 그의 목숨을 앗아간 건, 다름 아닌 그가 수년간 호의를 베풀어오던 노숙인 B씨였다.
B씨는 30대 후반의 젊은 나이였지만 일정한 수입과 거주지가 없었다. 이를 딱하게 여긴 A씨는 B씨에게 4년 가까이 매일 용돈을 주고, 필요할 때면 옥탑방에 재워주면서 허물없이 지냈다. 하지만 노숙인 B씨는 이런 은혜를 무자비한 폭행과 살인으로 갚았다.
두 사람의 인연은 지난 2015년 겨울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소 노숙인들에게 용돈을 주고 머물 곳을 제공해주던 A씨는 노숙인 B씨를 알게 됐다. A씨는 B씨에게도 다른 노숙인들에게처럼 똑같이 호의를 베풀었다.
판결문에는 A씨가 B씨에게 '매일' 용돈으로 1만원을 주었다고 적었다. 2015년 겨울부터 B씨에게 피살당한 2019년 9월까지 말이다. 다 합하면 적지 않은 돈이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 "A씨는 계속하여 호의를 베풀었다"고 특별히 언급했다.
비극은 그 호의를 당연하게 여긴 노숙인 B씨가 변심하면서 시작됐다. 어느 날부터 노숙인 B씨는 A씨에게 "건물 관리 일을 넘겨달라"고 요구했다. 주요 수입원을 넘겨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받은 A씨는 거절했다.
이런 불편한 과정이 있고 난 뒤에도 A씨는 여전히 B씨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A씨가 일하는 시간에 옥탑방이 비면 B씨가 그 공간을 쓰게 허락했고, B씨는 다른 노숙인들과 함께 옥탑방을 자주 찾아 휴식을 취했다. 살인 사건이 발생한 날에도 노숙인 B씨는 그 옥탑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A씨가 퇴근할 시간이 되자 옥탑방을 나와 다른 노숙인과 술을 마셨다. 그리고 새벽 1시 다시 B씨 옥탑방을 찾았다.
다음날 다시 일해야 하는 A씨는 옥탑방에서 자야 했지만, 예고 없이 찾아온 노숙인 B씨는 "좀 자다가 갈게"라고 말하며 방에 누웠다. A씨가 "네 방에 가서 자라"고 말하자 느닷없이 구타가 시작됐다.
폭행의 정도는 차마 글로 쓰기 어려울 정도였다. 폭행이 계속된 도중에 A씨가 구토를 하며 쓰러졌지만 B씨는 멈추지 않았다. 식칼과 전선, 끌 등이 동원된 무차별적인 폭력 끝에 A씨는 사망했다. 재판부조차 "그 방법이 매우 무자비하고 흉포하다"고 할 정도였다.
B씨는 범행 이후 4시간에 걸쳐 범행에 사용된 도구들을 은폐하고 범행 현장을 깨끗하게 치웠다.
은인과도 다름없는 A씨를 무참하게 살해한 죄로 결국 법정에 선 B씨.
재판 과정에서 밝혀진 B씨의 범행 동기는 이랬다.
"A씨가 하던 건물 관리 일을 자신에게 넘겨달라고 요구했지만 거절당하자 '무시당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평소에 A씨가 다른 노숙자들에게 잘해주는 것도 불만스러웠다."
1심을 맡은 부산지법 제6형사부(재판장 최진곤 부장판사)는 B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B씨에게 적용된 '보통 동기 살인' 유형의 최고형에 가까운 형량이었다. 대법원 산하 양형위원회 권고안에 따르면, 이 유형의 범죄는 최대 16년까지 선고할 수 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를 수차례 폭행하고 줄로 목을 조르는 방법으로 피해자를 살해했는데, 범행의 내용과 수법 등에 비추어 그 죄책이 매우 무겁다"며 "피해자가 느꼈을 공포와 육체적 고통을 가늠하기 힘들다"고 했다.
1심 직후 노숙인 B씨와 검찰은 모두 항소했다. B씨는 "형이 너무 무겁다" 했고, 검찰은 "형이 너무 가볍다" 했다. 지난 6월 부산고법에서 열린 2심 재판부는 검찰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형량을 18년으로 올렸다. 상한선(16년)을 2년 초과한 형량이었다.
부산고법 제2형사부(재판장 오현규 부장판사)는 양형위원회가 정한 상한선을 넘어선 형량을 선고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피해자는 자신도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음에도 평소 주위 상인들이나 노숙인들에게 물심양면으로 호의를 베풀어 왔고, 피고인 역시 그동안 피해자로부터 용돈과 잠자리를 제공받는 등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아왔다. 그럼에도 피고인은 피해자가 피고인뿐 아니라 다른 노숙인들에게도 잘 대해 주고, 피해자의 생업인 건물 관리 일을 피고인에게 넘겨달라는 피고인의 억지 요구를 거절한 것이 불만이었다는 등의 석연치 않은 이유를 들어 피해자의 생명을 짓밟았다."
2심 재판부는 그 이외에도 ①피해자가 범행에 취약한 60대 후반 노인이었다는 점 ②B씨의 범행수법이 잔혹하다는 점 ③B씨가 살인을 은폐하고 도주하려 했다는 점 등도 중요하게 고려했다.
2심 재판부는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원심이 선고한 형은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고 결론 지었다.
이후 B씨는 2심 판결이 너무 가혹하다며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대법원 제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은 이를 기각하며 징역 18년형을 확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