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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제3막이 열리다

2023. 01. 20 14:07 작성
정진섭 변호사의 썸네일 이미지
jsjung@souln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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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섭 변호사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걱정을 하기 이전에, 항상 '내가 누구이며 무엇인지, 무엇을 나라고 여겨 왔는지'를 스스로 성찰하는 것이 먼저라고 말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1. 송구영신/ 근하신년

2023년 토끼해가 시작되고 어느새 3주차에 접어들었습니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마침 음력설이 되었으니, 새해 인사 겸해서 저의 근황을 전해드립니다.


연말연시에는 누구나 한해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덕담을 주고받지만, 제게는 인생에 무척 중요한 일이 생겼습니다. 부모 네 분 가운데 홀로 살아계시던 장인어른이 노환으로 별세하셔서 1월 1일에 장례를 모셨습니다. 6.25 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참전해서 태백산맥 준령에서 목숨을 건 전투로 나라를 지켰고, 슬하 4남매 골고루 잘 키워내신 자상한 가장이셨습니다. 애국정신과 가족사랑을 겸비한 그분의 공덕은 생전에 손수 집필한 참전 회고록과 영전을 지킨 태극기와 대통령 근조기, 그리고 많은 조문객을 통해 충분하게 증명되었습니다.


삼우제 마치고, 평상시로 복귀해서 신년 벽두부터 사무실 일 처리와 밀려드는 결혼식 일정 등으로 파김치가 되어 동네병원을 찾았더니 코로나 확진으로 뜻하지 않게 자가격리를 시작했습니다. 연초부터 일주일이나 칩거하는 동안, 아내의 지극정성 덕택에 지금은 회복되었지만, 동시에 많은 걱정이 떠올랐습니다. 한편으론 저 자신과 제 주변의 모든 것을 되돌아보고 스스로 통찰하는 시간도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떠오른 생각은 "더 이상 내 머리 위에 비를 피할 지붕이 없다. 이제부턴 내가 지붕이 되어, 비바람을 막아줄 차례가 되었다."는 스스로의 책임감입니다.


육신의 관점에서만 보면 누구나 생로병사의 인생 여정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마치 빗방울이 구름에서 떨어져 강줄기 따라 굽이굽이 바다로 흘러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좌절하거나 비관할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의 물방울이 바다에서 일어나 바다로 되돌아가듯이, 한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가장 기본적인 원소로 환원되어 우주만물에 합일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육신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망망대해와 같은 생명력의 근원으로 흡수되어 우주 만물을 생성·유지시키는 우주생명에 합일되는 것이 당연한 순리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인간은 육신만의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의 본질은 유형적인 물질육체와 그 육체를 유지시키는 무형적인 생명, 그리고 육체와 생명을 하나로 이어주는 인간정신, 즉 '나'라고 하는 보편적 단일의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비록 육신이 소멸된다 해도, 무형적인 생명력과 인간정신 자체는 절대 사라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정신은 태초부터 우주만물을 있게 한 우주정신과 분리될 수가 없고, 궁극적으로 합일과 사랑이라는 보편적 우주의식과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순리라 할 것입니다.


집에 칩거하는 동안, 멀리 떨어져 사는 7살 손주와 체스 원격시합을 했습니다. 어린 시절 어깨너머 배웠던 체스 규칙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아서, 겨우 초등학교 1학년 입학 예정인 손주한테 쩔쩔맸지만, 인터넷으로 연결해서 일진일퇴 공방을 주고받는 것만으로 정말 재미있고, 유쾌한 경험이었습니다. 덕분에 육신의 피로가 많이 풀렸습니다.


2. 변호사다운 변호사/ 법률플랫폼의 미래

대한변협 회장 선거가 드디어 끝났습니다. 먼저 김영훈 당선인에게는 축하를, 패배한 두 분에게는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나 선거운동 기간 내내 법률플랫폼 문제가 가장 큰 이슈로 거론되고, 많은 오해와 갈등이 벌어진 것은 제겐 정말 뜻밖의 사태였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법률서비스 시장 환경 속에서, 온라인 법률플랫폼의 역할은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화두가 되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대면 상담의 기회가 줄어들고 온라인 상담의 이용 빈도가 크게 높아졌습니다, 기존의 연고 위주 또는 오프라인 대면 방식의 법률서비스는 효율이 떨어지고, 낙후적인 한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위적인 억제나 규제만 없다면 앞으로 온라인 법률플랫폼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


저는 로톡과 네이버 엑스퍼트 초기부터 플랫폼에 가입해서 법률상담을 해드리고 있습니다. 가입 동기가 영업활동보다는 오랜 전문분야인 특허·저작권 분야의 법률지식을 사회 환원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라, 10분·15분 주어진 시간 동안 친절하게 상담해 드렸고, 되도록 과도한 소송이나 비용지출을 줄이는 방향으로 조언해 드렸습니다. 상담 결과에 만족한 의뢰인의 상담후기를 받아보면서 보람도 느꼈습니다.


기다리던 변협 주도의 공공 법률플랫폼 '나의 변호사' 역시, 늦었지만 작년부터 운영을 개시했습니다. 민간 법률플랫폼에 이어, 온라인 공간에서 국민의 기본권 옹호라는 변호사의 공익적 사명을 구현할 공공 플랫폼이 드디어 출범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시대변화에 부응하는 변협 주도의 공공 플랫폼이 금세 정착되고, 확산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용자 편의성과 시스템 안정성을 동시에 갖춘 법률플랫폼을 계속 유지하고, 개선해 나가려면 적지 않은 전문인력 확보와 지속적인 투자가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변협 집행부 입장에서는 공공 플랫폼이 정착되기 전에 먼저 민간 플랫폼이 커지게 되면, 많은 변호사들이 거기에 종속되고, 변호사 윤리가 실추될까 봐 염려하는 것 같습니다. 변호사 광고금지나 비변호사와의 동업금지라는 법조윤리에 반하는 과당경쟁이 촉발되어 변호사 업계의 전체이익이 훼손될 것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런 변협 집행부의 걱정이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민간 플랫폼을 적대시하고 가입 변호사들더러 탈퇴하도록 강제하면 과연 부작용이 사라질까 하는 의문은 여전합니다.


대다수 시민들 입장에서는 공공이든 민간이든 효율적인 법률플랫폼이 빨리 정착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런데 공공 법률플랫폼의 경우, 민간 플랫폼에 비해서 전문인력과 비용투자 면에서 열악할 수밖에 없고, 변협 내부의 노력만으로 시스템 관리 역량을 확보하기에 벅찰 것입니다. ​그래서 민간 플랫폼에 대한 무조건 적대시 정책보다는 공공 플랫폼과 민간 플랫폼 간에 선의 경쟁을 유도하고, 그 대가로 민간 플랫폼의 협력을 얻어내고, 그들의 기술적 장점과 시행착오를 반영하여 공공 플랫폼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차라리 현명한 대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법률플랫폼의 탄생과 발전은 저에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전 같으면 은퇴할 나이인 제가 변호사다운 변호사의 삶을 연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 세대는 법조계 입문할 때부터 끊임없이 '도구의 혁명'을 겪어왔습니다. 젊은 시절 법조계 입문 당시 두꺼운 법전과 판례집, 볼펜과 타자기를 갖고 일을 배웠고, 중견 법조인이 될 무렵에야 퍼스널컴퓨터가 보급되고 인터넷이 연결되면서 판례DB와 전자소송이 생겨났습니다. 그때마다 정보화의 역기능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컸지만, 우리나라의 IT 기술은 비약적으로 거듭 발전해서 세계 1등 국가로 도약해 버렸습니다.


'법률은 과거의 반영이고, 기술은 미래의 반영이다'라는 격언이 있듯이, 이번 변협선거 기간중 논란에도 불구하고, 법조계의 도구 혁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부디 변협 집행부가 의욕적으로 개설한 공공 법률플랫폼 '나의 변호사'가 장차 신세대 법률문화의 '인프라'로 자리 잡고, 국내외 막론하고 법률서비스의 혁신 모델이 되기를 기원하고 응원합니다. 그리고 더이상 법률플랫폼을 둘러싼 소모적 갈등과 대립을 마감하고, 새로운 법률서비스 시스템을 통해서 변호사다운 변호사의 사명을 다하게 되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3. 무명변호사의 일상4/ 배보다 배꼽이 크다

지난해 인생2.5모작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10월부터 매달 '무명변호사의 일상1,3,3'이라는 소제목으로 평소 변호사 생활에서 겪는 애환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글의 요지는 외국인 근로자의 임금체불 사건에 애착을 갖고 승소판결을 얻어냈지만, 정작 피고법인의 재산이 없다는 이유로 수년째 민사집행을 거부하고, 그로 인해 원고의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고통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딱한 사연입니다.


이 글을 읽은 지인 한 분이 "무명변호사라는 표현은 맞지않다. 당신은 지재권 전문검사로 명성을 날렸는데, 이까짓 민사집행 하나 해결 못 하느냐"는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격려와 응원으로 해주신 말씀이지만, 솔직히 승소판결을 얻기보다 판결 집행이 더 어렵다는 법조계 안팎의 속설을 직접 체험하기 전까지는, 저도 믿기 어려웠습니다. 수년간 피고가 보여준 태도는 75세 고령의 원고가 지쳐서 포기하기를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피고법인은 지재권 분야의 국제 조정중재를 위해 특허청의 인가를 받아 설립된 공익법인입니다. 따라서 피고법인의 존재 이유를 생각한다면, 재단이사들은 더 이상 사건 해결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더 이상 국제적인 수치거리로 키워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그 전에 원만히 마무리해야만 합니다. 여기서 시간을 더 끄는 것은 단지 법인 대표자 개인의 위법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조정중재 문화의 후진성을 드러내는 증거가 될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피고법인과 재단 이사들이 보여준 무관심과 방임적 태도는 원고만이 아니라 대리인인 저까지 분개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건의 실체가 명명백백하고, 시간도 분명히 원고 편이라, 판결에 의해 확정된 채권은 단기 소멸시효에 해당하는 경우라도 그 소멸시효는 10년이나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민법 165조). 판결확정 채무명의 원금 합계는 9770만원(3년치 체불임금 9000만원+퇴직금 770만원)인데, 최초 임금체불 시점부터 연5%의 법정이자가 붙고, 판결문 송달 이후 소송촉진특례법상 15%의 비율에 의한 지연손해금까지 포함하면, 지난 연말 기준 원리금 합계가 1억 6000만원이나 되었고, 앞으로도 매달 120만원씩 증가하기 때문에, 점점 배보다 배꼽이 커지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얼마 전 체불임금과 퇴직금 원리금 전액을 즉시 지급하라는 내용증명을 다시 발송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피고법인은 답장 없이 묵살하고 있습니다. 만일 피고법인이 이번에도 채무명의 원리금을 전부 청산하지 않는다면, 부득이 정부기관이나 사회 여론에 본격적인 호소를 시작해야 될 것 같습니다. 원고는 몇 달 전부터 저더러 특허청에 진정서를 제출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 감독을 소홀히 한 정부기관의 불찰도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저도 더 이상 민사집행법의 사각지대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만간 원고의 요청에 따를 생각입니다.


4.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갈릴레오의 고독

연초부터 집안의 대소사와 코로나 확진으로 심신의 피로가 겹치면서, 문득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밀려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걱정이라기보다는, 그동안 내가 자기자신의 본질이나 정체성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구나, 그 이유는 누구의 탓도 아니고, 단지 나 스스로 자기자신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기 때문이구나 하는 자기반성이었습니다.


그동안 코로나 백신을 4번이나 맞고, 노화된 치아교체를 위해 임플란트 시술을 받으면서도, 감기몸살과 코로나 확진을 피하지 못한 것을 보면, 이제는 생로병사라는 자연의 순리를 받아들일 나이가 된 것 같습니다. 아마도 머지않은 장래에 현직 변호사 생활도 접게 될 것이고, 이후에는 평범한 자연인으로 조용하게 지내고 싶습니다.


사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걱정을 하기 이전에, 항상 '내가 누구이며 무엇인지, 무엇을 나라고 여겨 왔는지'를 스스로 성찰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선택에는 일장일단이 있고, 선택할 자유가 있다면 반드시 선택에 따른 책임도 뒤따를 것입니다. 이렇게 살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후회감이나, 앞으로는 이렇게 살아야겠다. 저렇게 살아야겠다 하는 것은 단지 선택의 문제일 뿐입니다.


문득 천동설이 지배하던 중세 유럽의 암흑시대를 떠올려 봅니다. 지동설을 다른 사람보다 먼저 받아들인 선각자들은 종교재판을 받고 심지어 마녀 취급을 당했습니다. 갈릴레오는 감옥에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비록 그는 당시 고립되고, 외로웠지만 장구한 시간이 흘러가면서 콜럼버스의 신대륙발견, 마젤란의 세계 일주를 통해서 그의 학설은 증명되고, 보편화되었습니다. 결국 갈릴레오의 고독은 근대 르네상스 혁명을 만들어낸 '빛'이자 과학정신의 승리가 되었습니다.


그렇듯이 자기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인지를 먼저 아는 것은 결코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누구든지 '인간의 존엄성'을 깨우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필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과거 우리가 '육신의 나'만을 나라고 여겨왔다면, 마치 그림자를 보면서, 그것을 실체라고 여겨온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자기자신의 본질에 대한 오해이자 착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림자를 드러나게 하는 '빛'이야말로 자기자신의 진정한 실체가 아니겠습니까?


모든 선택의 주인은 '나'입니다. 모든 것이 내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비록 육신이 소멸된다 해도, 무형적인 생명력과 인간정신 자체는 절대 사라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육신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망망대해와 같은 생명력의 근원으로 흡수되어 궁극적으로 우주생명과 보편적 우주의식에 합일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투철한 자기 통찰만이 자기자신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저 중세 암흑시대의 선각자들처럼 고독한 독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순리이기 때문에, 굳이 저만의 인생 제3막 선언이라고 내세울 일도 아닙니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본지 편집 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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