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 800만원 주고 병역 면제? 법원 “진짜 병일 수도” 무죄
[무죄] 800만원 주고 병역 면제? 법원 “진짜 병일 수도” 무죄
'뇌전증 위장' 혐의 20대 남성
법원은 왜 검찰의 주장을 뒤집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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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 브로커에게 800만 원을 건네고 ‘뇌전증’ 진단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20대 남성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셔터스톡
병역 브로커에게 800만 원을 건네고 '뇌전증(간질)' 진단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20대 남성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병역기피 목적의 속임수라는 검찰의 주장과 달리, 피고인이 실제로 질병을 앓고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계약서와 송금 내역 등 명백한 정황 증거에도 불구하고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결정적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브로커의 시나리오, 800만원 계약…모든 것이 '유죄'를 가리켰다
지난 2016년 현역(2급) 판정을 받았던 이 모(28) 씨. 그는 입영을 미뤄오다 2020년 4월, 병역 브로커 구 모 씨를 만났다. 계약 내용은 명확했다. "뇌전증으로 5급(전시근로역) 판정을 받게 해주겠다. 실패 시 전액 환불한다"는 조건으로 800만 원을 건넸다.
이후 모든 것은 브로커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가는 듯했다. 이 씨는 구 씨의 지시에 따라 병원을 찾아가 "고등학생 때부터 경련 증상이 있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약을 먹지 못했다"며 허위 증상을 호소했다.
결국 '상세불명 뇌전증' 진단서를 받아 병무청에 제출했고, 그해 12월 꿈에 그리던 5급 판정을 받았다. 검찰은 이 씨가 병역을 기피할 목적으로 속임수를 썼다며 그를 병역법 위반 및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조작 불가능한 증거"…뇌파(EEG) 검사가 뒤집은 전세
모든 정황이 유죄를 가리키는 듯했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이 씨가 브로커를 찾게 된 경위와 객관적인 의료 기록에 주목했다.
이 씨는 오토바이 사고 이후 의사로부터 "군대에 가기 힘든 몸 상태"라는 말을 들었고, 스스로도 경련 증상을 자각해 인터넷에 병역 관련 질문을 올렸다가 브로커 구 씨와 연결됐다. 재판부는 "허위 증상을 만들 목적이라기보다, 실제 증상으로 병역 면제가 가능한지 알아보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결정적인 증거는 뇌파(EEG) 검사 결과였다. 이 씨는 2020년 4월 B병원에서 진행한 뇌파 검사에서 '우측 전두-측두엽 스파이크파(intermittent spike in Rt. F-T)'라는 이상 소견을 받았다. 이는 의도적으로 조작할 수 없는 객관적인 의학 자료다. 중앙신체검사소 역시 해당 소견을 근거로 이 씨에게 5급 판정을 내렸다.
브로커 구 씨조차 법정에서 "피고인은 뇌파 이상 소견이 명확해 이례적으로 2개월 만에 5급 판정을 받았다"고 증언할 정도였다.
"병역 면제 후에도 계속된 치료"…법원, 진정성 인정
재판부는 이 씨가 5급 판정을 받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뇌전증 관련 치료를 받아온 점도 무죄 근거로 삼았다. 재판부는 "병역 면제만을 목적으로 부작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약물을 계속 복용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 씨가 고등학생 시절 치료 기록이 없다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서도 "의료법상 진료기록 보존 기간(10년)이 지났거나, 기초생활수급자였던 피고인의 비급여 처방 내역이 건강보험공단 기록에 누락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재판부는 "피고인이 브로커의 조언을 받아 증상을 다소 과장했을 순 있지만, 실제 증상과 객관적인 뇌파 이상 소견에 기초한 만큼 병역 기피를 위한 속임수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