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쳐간 내 미술품 돌려달라…법원이 도난 인정하지 않은 결정적 이유
훔쳐간 내 미술품 돌려달라…법원이 도난 인정하지 않은 결정적 이유
수백억 미술품 거래 동업약속
서명 없는 계약서로 8억 소송 패소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수백억 원대 미술품 거래 수익과 도난당했다는 고가의 미술품들을 둘러싼 8억 원대 소송이 법원의 '청구 기각' 판결로 막을 내렸다. 모든 것을 걸었던 동업 계약서는 정작 서명도 날인도 없는 빈 종이에 불과했다.
화려한 미술계의 이면에서 갤러리 운영자 A씨와 여러 회사를 운영하는 사업가 B씨는 2022년 3월, 은밀하고도 달콤한 동업을 시작했다. A씨가 국내외 유명 미술품을 발굴해 소개하면, B씨가 자금력을 동원해 이를 매입하고 재판매해 수익을 나누는 구조였다. A씨의 주장에 따르면, 두 사람의 약속은 구체적이었다.
"수익은 49대 51로 나누고, 매달 1,000만 원의 자문료를 별도로 지급한다."
A씨는 이 구두 계약을 믿고 2년 넘게 B씨에게 수백억 원어치의 작품을 소개해 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믿음은 곧 깨졌다.
"수익금도, 자문료도, 내 작품까지도 돌려달라"
A씨는 "B씨가 수익 정산은커녕 자문료와 물품 대금까지 떼먹었고, 심지어 내가 보관하던 미술품까지 훔쳐 갔다"며 B씨와 그의 회사들을 상대로 8억 1,000만 원의 소송을 제기했다.
A씨가 돌려달라고 요구한 목록은 화려했다. 유명 화가의 그림과 브론즈 조각상은 물론, 고가의 한정판 피규어와 명품 핸드백까지 포함됐다. A씨는 B씨가 자신의 창고에 무단으로 침입해 이 모든 것을 절취한 뒤, 자신의 회사 사무실 등에 은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A씨는 법정에 두 사람의 동업 관계를 증명할 결정적 증거라며 계약서 한 부를 제출했다. 여기에는 '수익 배분 51:49', '매월 자문료 1,000만 원' 등 A씨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조항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법원의 냉정한 한마디 "서명·날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제30민사부(재판장 김석범)의 판단은 냉정했다. 재판부는 A씨의 모든 청구를 기각하며 B씨의 손을 들어줬다. 수백억 원대 거래의 종착지는 '원고 완전 패소'였다.
모든 것을 뒤집은 것은 A씨가 자신만만하게 제출했던 바로 그 계약서였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짧고 명료하게 지적했다.
"위 계약서에는 원고와 피고 B의 서명·날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법정에서 서명 없는 계약서는 단순한 참고 자료일 뿐, 두 사람의 약속을 증명하는 법적 효력을 갖지 못했다. 재판부는 "원고가 주장하는 내용의 동업계약이 구두로 체결되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미술품 도난 주장 역시 무너졌다. A씨는 해당 미술품이 자신의 소유이며, 보관 장소 또한 자신이 관리하던 곳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원고가 소유한 것이라거나, 그 장소를 단독으로 지배·관리함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오히려 B씨가 해당 장소의 임대차보증금과 임대료 등을 지급한 정황이 드러났고, A씨가 B씨를 상대로 낸 건조물침입 등 형사 고소 또한 경찰에서 '혐의없음'으로 종결된 사실이 확인됐다.
수백억 원이 오가는 화려한 미술계의 이면, 그들의 동업 관계는 서로에 대한 믿음 위에 세워졌지만, 법정에서는 서명 없는 계약서 한 장의 무게를 넘어서지 못했다.
[참고] 서울중앙지방법원 2024가합87483 판결문 (2025. 6. 5. 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