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IT업계 주목한 '세기의 판결'⋯1심 결과는 '페북 승'
전 세계 IT업계 주목한 '세기의 판결'⋯1심 결과는 '페북 승'
"국내외 기업 간 기울어진 운동장" 바로잡겠다 했지만⋯
구태언 변호사 "인터넷 기업 비용부담 적절해야 업계 발전"

22일 서울행정법원 제5행정부는 페이스북이 방통위를 상대로 제기한 시정명령 등 처분 취소청구 소송에서 청구인용 결정을 내렸다. /셔터스톡
‘세기의 판결’로 불리며 세간의 화제가 됐던 페이스북과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간 행정소송 1심에서 페이스북이 승리했다. 22일 서울행정법원 제5행정부(부장 박양준)는 페이스북이 방통위를 상대로 제기한 시정명령 등 처분 취소청구 소송에서 청구인용 결정을 내렸다.
1심 선고를 앞두고 막판까지 참고 서면을 주고받으며 치열한 공방을 벌였던 양측은 서로 상반된 표정으로 법정을 빠져나왔다.
전문가들은 이 판결이 업계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예견해 왔다. 판결 결과에 따라 향후 페이스북과 국내 통신사 간 망 이용료 협상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또 다른 글로벌 콘텐츠 기업인 구글과 넷플릭스에도 영향을 줄 거란 분석이 우세했다.
이번 소송은 지난해 3월 방통위가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페이스북에 과징금을 부과한 데서 비롯됐다. 이는 방통위가 해외 사업자를 제재한 첫 사례로, 당시 방통위원장이었던 이효성 전 위원장이 “주요한 성과”라고 꼽았던 일이다.
이 전 위원장은 당시 “이번 사건은 글로벌 통신사업자가 국내 통신사업자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해외로 접속경로를 변경하여 국내 이용자의 이익을 침해한 사건”이라고 소개하며 “글로벌 기업의 국내 시장 영향력 증대에 따른 새로운 유형의 금지행위란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한 바 있다.
페이스북은 국내에 '캐시서버'를 KT에 두어 대용량 동영상 콘텐츠 등의 원활한 접속과 속도를 만들었다.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는 이러한 KT의 페이스북 캐시서버를 중계 접속해 사용하고 있었다.
캐시서버란 기업 내에서 인터넷 사용자가 자주 찾는 정보를 따로 모아두는 서버를 말하는데, 대용량 동영상 콘텐츠 등의 원활한 접속을 위해 미리 콘텐츠를 다운로드 받아 정보를 빠르게 찾을 수 있다. 캐시서버는 보통 사용자와 가까이 둔다.
이후 정부가 '상호접속에 관한 고시'를 변경하면서, KT가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에 '접속료'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자 KT는 페이스북 측에 “이 금액을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에 지불해야 한다”고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페이스북이 지불을 거부하면서 싸움이 시작됐다. 통신사와의 협상이 뜻대로 되지 않자, 페이스북은 접속경로를 임의로 변경했다는 것이 방통위의 주장이다. 이 때문에 SKB 및 LGU+ 망을 통해 페이스북에 접속한 이용자의 접속 속도가 떨어져 서비스 이용이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방통위 조사 결과 SKB 및 LGU+ 망을 이용하는 페이스북 이용자들은 접속이 안되거나 동영상 재생 등 일부 서비스의 이용이 어려워졌고, 이용자 문의‧불만 접수 건수는 접속경로 변경 후에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방통위는 이 같은 페이스북의 행위가 전기통신사업법상 금지행위인 이용자 이익저해행위라고 판단, ①시정명령 받은 사실의 공표 ②업무 처리절차 개선 ③과징금 3억 9600만원을 부과했다.
법원을 설득하기 위해 양측이 내세운 논거는 치밀하다.
먼저 페이스북은 “망사용료 협상은 기업과 기업 사이에서 이뤄져야 하는 일임에도 정부가 이를 간섭하는 것은 월권”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콘텐츠 제공사업자로서 인터넷 접속 품질에 대한 책임을 부담할 수 없고, 이용약관에 서비스 품질을 보장할 수 없다고 명시하였으므로 전기통신사업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방통위는 “페이스북이 콘텐츠 제공사업자라 하더라도 직접 접속경로를 변경한 행위 주체로서 책임이 있으며, 이용약관에 서비스 품질에 대한 무조건적인 면책조항을 둔 건 부당하다”고 맞섰다.
접속경로 변경에 대한 고의성이 없었다는 페이스북 주장에 대해서는 “페이스북이 이용자 불편을 체감하고 추가적인 불편 가능성을 예측했음에도 접속경로를 변경했다”고 반박했다.
1심 법원은 방통위의 과징금 부과가 부당하다고 선언함으로써 페이스북의 손을 들어줬다.
방통위의 페이스북에 대한 이 같은 조치는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에 힘을 실어주려던 의도도 포함돼 있었다.
그간 국내 기업들은 해외 기업들에 비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역차별을 받으면서 뛰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해 왔다. 그 중 대표적인 문제가 통신망 이용료 부분이다. 페이스북과 마찬가지로 구글도 이용료를 면제받고 있지만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기업들은 막대한 이용료를 지불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구태언 법무법인 린·테크앤로 부문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는 것은 해외에 비해 불합리한 국내의 규제를 개선하여 이룰 일”이라면서 “국내 기업에 적용되는 규제를 외국 기업에도 똑같이 적용하는 방식으로 해결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망 이용료의 기본이 되는 트래픽은 인터넷 이용자들이 발생시키고, 인터넷 이용자들은 모두 망 이용요금을 부담한다”면서 “망사업자의 매출에 기여한 콘텐츠 제공 기업들에게 지나친 망 이용료를 부담시키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