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 교수 에세이 (47)] 전관예우는 미풍양속이다
[정형근 교수 에세이 (47)] 전관예우는 미풍양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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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82년에 개정된 변호사법은 사무직원의 인원까지도 대한변호사협회가 정하도록 했다. 변호사윤리장전에는 사무직원 채용 시에 다른 변호사와 경쟁하거나 신의에 반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었다. /셔터스톡
목포지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신문을 하는 사건을 수임하였다. 광주에 있다 보니 순천, 목포, 해남, 장흥지원 사건은 거리가 1시간 이내에 갈 수 있어서 부담 없이 맡게 된다. 목포를 갈 때는 유달산도 생각나고 좋은 식당도 많지만, 매번 일 마치자마자 사무실로 돌아와야 했다. 그날도 목포까지 1시간 넘게 달려갔다. 피의자는 피해자와 합의도 하였고, 처벌을 받은 전과도 없는 초범이었다. 그래서 구속영장이 기각될 것을 기대하면서 변론을 준비하고 갔다.
법정에 들어가니 다른 사건을 재판 중이었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면서 진행 중인 사건 내용을 들어보니, 그 사건의 변호인이 광주에 있는 법원장 출신 변호사였다. 법정에 있던 법원 공무원이 재판장에게 변호사가 출석하지 않겠다고 연락이 왔다고 전해주었다. 판사는 그 말을 듣고도 별다른 반응 없이 피의자에게 몇 마디 물을뿐이었다. 내 차례가 되어 피의자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해달라는 내용의 변론을 하고 광주로 왔다. 그런데 오후에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피의자나 그 가족은 매우 실망이 컸다.
그런데 그날 오후에 목포지원 형사사건 수임하고서 불출석하였던 법원장 출신 변호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 무렵에는 다른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하던 사무직원을 채용한 경우에는 그 직원을 채용하였던 변호사의 동의서를 받도록 했다. 동의서를 써주지 않으면 지방변호사회에 채용 신고를 할 수 없었다. 최근 내가 채용한 사무직원이 그 변호사 사무실에서 근무하였던 터라 내가 동의서를 받으러 간 것이었다. 그분은 몇 번이나 동의서를 써주겠다고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이직하려는 직원에게 동의서를 안 해주는 것으로 골탕을 먹이고 있었다.
지난 1982년에 개정된 변호사법은 사무직원의 인원까지도 대한변호사협회가 정하도록 했다. 변호사윤리장전에는 사무직원 채용 시에 다른 변호사와 경쟁하거나 신의에 반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동의서를 받도록 하는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동의서 받도록 한 것은 사무직원의 직장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위헌적인 조치에 해당된다. 지난 2008년 개정된 변호사법은 사무직원의 자격과 인원에 대하여 대한변협이 정하도록 한 규정은 폐지하였다. 아무튼 우리 사무실로 옮겨온 지 보름도 넘었는데, 동의서를 해주지 않고 있어서 내가 그 변호사를 찾아간 것이다. 차를 마시면서 오전에 목포지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신문에 참여했는데, 변호사님께서 수임한 사건도 진행하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 변호사는 나에게 자랑삼아 말을 했다.
"나는 변호인 선임계만 제출하고 법정에 출석하지도 않았는데, 구속영장이 기각되었다."
자신의 영향력을 나에게 과시하였다. 나는 그분이 선임한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다. 나는 전관 변호사의 위세를 한껏 과시하는 그분에게 한마디 했다.
"법원에서 전직 법원장께 예우를 해주신 모양입니다."
그러자 그분은 한껏 기분이 올라 한마디를 더했다.
"판사 할 때 박봉으로 고생한 동료를 위하여 먹고살도록 봐주면 뭐가 안 좋냐? 전관예우는 미풍양속이여!"
판사가 박봉으로 고생한다는 말을 들으니 갑자기 한 장면이 떠올랐다. 평소 알고 지내던 판사가 사직을 한다고 하여 법원에서 행해지는 퇴임식에 참석했다. 퇴직하는 판사를 위한 법원장의 고별사 중에는 이런 덕담도 나왔다.
"O판사님은 판결문에 오자 한자 남기지 않으신 꼼꼼하고 훌륭한 분이셨다!"
그런데 저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내가 수임하여 재판했던 사건을 퇴직하는 판사가 맡았는데, 나는 패소 판결을 받았다. 얼마 후 배달된 판결문을 받아 보니 오자가 두 군데나 있었다. 간단한 사건이라 판결문도 서너 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이었다. 의뢰인은 판사가 판결문도 제대로 쓰지 못하였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럼에도 퇴직하는 순간이라 지난 과오는 전부 아름답게 장식되고 있었다. 꽃다발과 재직 기념패의 전달이 끝나자, 사직하는 판사가 연단에 나서 고별사를 하였다. 그 판사는 고별사를 적은 종이를 안주머니에서 꺼낸 다음 읽어나갔다.
"월급이 적어 백화점을 가지 못하고 길거리표 옷을 사 입어야 하는 현실이 힘들었다."
그러면서 감정이 복받쳤던지 읽던 것을 멈추고 눈시울을 적셨다. 그 자리에 참석해 있던 판사의 배우자도 눈물을 훔쳤다.
"지인이 생활비를 대줄 테니, 계속 판사로 근무하라!"
이런 제안도 받았다고 했다. 그 퇴임식에 법원 직원들도 많이 참석해 있는데, 판사가 월급이 많지 않아서 길거리표 옷을 입어야 했던 현실이 슬펐다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니 매우 안타까웠다. 그렇게 법원을 나온 그 판사는 변호사 개업한 지 얼마 후부터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녔다.
내가 직접 사무소에 가서 직원 이직에 동의해 달라고 요청하자, 며칠 후에야 법원장 출신 변호사는 동의서를 써주었다. 그래서 그 동의서를 첨부하여 사무직원 채용 신고를 하였다. 그런데 며칠 후에 법원장 출신 변호사는 무슨 영문인지 동의서를 보류한다고 변호사회에 통지하였다. 그리고 내가 동의 없이 사무직원을 채용하였다는 이유로 징계를 해야 한다는 내용의 진정서도 접수시켰다. 사무직원이 다른 법률사무소로 이직할 때 종전 고용주가 써주는 동의서 제도를 악용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변호사회 이사회에서도 그 변호사의 눈치를 보면서 동의서의 취소를 결정했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 시비를 가리기보다는 원만하게 해결하는 것이 좋을 거 같아서 다시 그 변호사를 찾아갔다. 그리고 잘 해결하였다. 아무튼 그 변호사 사무실은 언젠가부터 일요일에도 불이 켜져 있었다. 무슨 일이 많아서인지 사무실도 새롭게 확장하였다. 많은 직원들이 매일 분주하게 사무실을 출입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변호사가 많은 직원들을 고용하여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주민들에게 금융기관에서 대출받은 돈을 안 갚을 수 있도록 파산신청을 해준다고 한 것 같았다. 그렇게 하여 엄청 많은 사건을 수임하였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두세 달 후에 피고인 접견을 하려고 교도소에 있는 변호인 접견실에 갔다. 그곳에서 수의 차림으로 있는 그 변호사를 보았다. 얼굴은 무겁고 수심으로 가득한 표정이었다. 나는 영문을 몰라서 인사를 하면서 "아니! 변호사님! 여기 웬일이세요?" 나도 모르게 물었다. 그 변호사는 사건 수임과 관련하여 금품을 제공하였다는 범죄사실로 구속된 상태였다. 그분의 대학 후배 변호사들은 공동으로 선배의 변론에 나섰다. 얼마 후에 그 변호사는 법률사무소 문을 닫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