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표 갑질에 아파트 관리직원 전원 사직⋯그런데 '직장 내 괴롭힘'은 아니다?
동대표 갑질에 아파트 관리직원 전원 사직⋯그런데 '직장 내 괴롭힘'은 아니다?
울산 아파트 관리직원 9명 줄퇴사
노동부 "입주자대표는 법적 고용주 아냐" 진정 종결
변호사들 "형사고소 및 민사소송은 가능"

울산의 한 아파트에서 관리사무소 직원 9명이 일부 동대표의 폭언과 부당 지시를 이유로 집단 사직했다. /보배드림 커뮤니티 캡처
"밤에 잠을 재우지 말아볼까"라는 협박과 쓰레기통을 발로 차는 모욕을 견디다 못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 9명 전원이 사직서를 던졌지만, 법적으로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9일 YTN 라디오 '이원화 변호사의 사건X파일'에 따르면, 최근 울산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관리사무소 직원 전원이 집단 사직했다.
직원들은 엘리베이터 공지문을 통해 9가지 사직 이유를 폭로했다. 일부 동대표들의 부당한 책임 전가, 언어폭력, 비상식적인 업무 지시, 채용 부당 간섭 등이 그 원인이었다.
입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쓰레기통을 걷어차며 면박을 주고, 협박성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병원 치료까지 받은 직원들은 결국 고용노동부에 직장 내 괴롭힘 진정을 제기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행정 종결 처분이었다. 누가 봐도 명백한 갑질이었지만, 법의 잣대는 달랐기 때문이다.
갑질은 동대표가 했는데, 고용주는 위탁업체라는 '사각지대'
고용노동부가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하지 않은 이유는 아파트 관리 시스템의 독특한 고용 구조 때문이다.
로엘 법무법인의 김형철 변호사는 방송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제도는 근로계약 당사자인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에서만 적용된다"며 "직원들의 법적 사용자는 위탁관리업체이지 입주자대표회의가 아니기 때문에 입주자대표회의 구성원들이 아무리 심한 갑질을 해도 법 적용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현실에서는 입주자대표회의가 하청업체 원청처럼 직원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서류상 고용주가 아니라는 이유로 괴롭힘 방지법의 철퇴를 피해 간 것이다.
김 변호사는 이를 "상당히 불완전한 구조"라고 평가했다. 현행 공동주택관리법상 입주자대표회의의 부당한 간섭이 있을 경우 지자체가 조사에 나설 수 있지만, 이를 어겨도 별도의 형사처벌 규정이 없다는 점도 법적 사각지대로 꼽힌다.
직장 내 괴롭힘 아니어도, 형사고소·민사상 손해배상 '철퇴' 가능
그렇다고 갑질 입주민에게 아무런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김형철 변호사는 "형사 고소와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밤에 잠을 재우지 말아볼까"라는 발언은 협박죄, 공개적인 장소에서 면박을 준 행위는 모욕죄나 명예훼손죄가 될 수 있다.
실제로 과거 관리소장에게 욕설과 협박을 한 입주민이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거나, 술에 취해 수십 차례 폭언을 퍼부은 입주민이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판례도 존재한다.
폭행이나 협박은 상대방 신분을 불문하고 엄연한 범죄이기 때문이다.
사후 법적 대응을 위해서는 철저한 증거 수집이 필수다.
김 변호사는 피해 직원들에게 ▲일시와 내용을 기록한 메모 ▲업무 시간 외 부당 지시가 담긴 카카오톡·문자 메시지 보관 ▲당사자 간 대화 녹음 ▲최대 30일 이내에 삭제되는 CCTV 영상의 신속한 보존 요청 등 4가지를 조언했다.
전등 교체·택배 보관 요구도 사실상 '강요'⋯피해는 입주민 몫
우리가 무심코 던지는 사소한 부탁 역시 법적 테두리를 벗어난 갑질이 될 수 있다.
김형철 변호사는 "택배를 맡아달라거나 집 안 전등을 교체해 달라는 요청은 명백히 관리 직원의 업무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며 "관리비는 공용 시설 유지·보수를 위한 비용이지 개인 심부름 비용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특히 재계약 권한을 쥔 입주민의 부탁은 거절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직원들에게 사실상 강요나 다름없다고 평가했다.
일부의 도 넘은 갑질로 관리사무소가 마비되면, 결국 그 피해는 부메랑이 되어 전체 입주민에게 돌아간다.
실제로 이번 전원 사직 사태가 벌어진 울산의 아파트에서는 논란이 커지자 입주민들이 직접 해임 투표를 열어 해당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을 해임한 것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