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노인의 예금, 직원이 빼돌렸는데…정작 농협은 '나 몰라라'
치매 노인의 예금, 직원이 빼돌렸는데…정작 농협은 '나 몰라라'
농협 "개인의 일탈" 뒷짐만⋯정말 아무 책임 없을까
민·형사상 책임 묻긴 어렵지만, 최소한 예금한 '돈'은 돌려줘야

한 농협 직원이 치매를 앓던 노인의 정기예금을 몰래 빼돌려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게티이미지코리아·네이버지도 캡처·편집=조소혜 디자이너
치매를 앓던 노인이 요양원에 입원해있던 동안, 아무도 모르게 정기예금이 해지됐다. 그 안에 있던 600여 만원도 인출된 상태였다. 심지어 요양원 위치는 충청남도. 예금이 인출된 지역농협 소재지는 경기도 부천이어서 거리도 상당히 멀었다.
노인이 사망한 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자녀가 사실관계 확인에 나서면서 비로소 사건 전말이 드러났다. 해당 농협 직원 A씨가 치매 노인 몰래 그 필적을 위조해, 예금을 해지하고 돈을 가로챘던 것. A씨는 이 돈을 "신용대출을 갚는 데 썼다"고 털어놨다.
현재 경찰은 이 사건 A씨를 횡령 등의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 그런데, 해당 직원이 속해 있던 은행에선 "개인의 일탈"이라며 꼬리 자르기에 나서 눈총을 받고 있다.
이번 농협의 해명처럼, 설사 직원의 일탈로 금융 사고가 났더라도 고객은 은행을 믿고 돈을 맡겼다. 그러니 은행 역시 함께 책임져야 하는 건 아닐까.
이에 대해 검사 출신인 법무법인 명재의 하나 변호사는 "사용자와 근로자를 모두 처벌할 수 있는 '양벌규정'이 있는 게 아니라면, 원칙상 범죄를 저지른 당사자만이 형사 처벌을 받게 된다"고 짚었다. 이어 하 변호사는 "형법상 횡령죄는 양벌규정이 규정된 범죄가 아니다"라며 "직원 A씨가 횡령을 저질렀다고 해서, 사용자인 은행 역시 똑같이 처벌할 수 없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또한, 대법원은 ① 은행 임직원이 고객의 돈을 임의로 빼돌렸다면 ② 그 돈을 맡긴 고객이 아니라 ③ 고객 예금을 받아 관리하는 은행의 돈을 횡령·배임한 것으로 본다(2017도7489).
다시 말해, 은행을 업무상 횡령이나 배임죄를 저지른 '가해자'가 아니라, 오히려 '피해자'로 본다는 이야기다. 돈을 맡긴 사람으로서는 다소 황당할 수 있다.
법률 자문

이런 이유로 은행에 형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면, 민법상 '사용자책임'을 적용할 수는 없을까? 민법에 따르면, 근로자가 주어진 업무를 하다가 제3자에게 손해를 끼쳤을 때 이를 사용자가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본다(제756조).
이에 대해 옳은 법률사무소의 강승구 변호사는 "법리적으로 보면, 이번 농협 횡령 사건에도 민법상 사용자책임이 적용될 수는 있다"고 했다.
다만 "고객이 (은행에도 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사용자 책임을 주장하려면, 은행이 횡령을 저지른 직원에 대해 사무를 감독할 주의 의무를 위반했다는 걸 입증해야 한다"면서 "현실적으로는 은행의 과실 등을 증명하기 어려워 사용자 책임을 묻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나 변호사도 "은행이 해당 직원에 대해 교육 등 관리·감독 의무를 완전히 저버렸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다면, 은행에 손해배상 등을 청구하기란 어려운 일"이라고 짚었다.
결국 은행 측에 형사 처벌을 가하거나 손해배상 책임을 묻기란 쉽지 않은 상황. 하지만 이대로 은행이 모든 책임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다. 최소한 고객이 잃어버린 돈만큼은 돌려줄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예금 채권자가 금융 기관에 반환을 요청할 때는, 예금했던 사실만 있으면 된다"고 본다. 반대로 "채무자인 금융기관이 고객에게 돈을 돌려주지 않으려면, 예금이 정당하게 인출됐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고 했다(2010다613).
해당 판례에 따르면, 제3자나 금융기관 임직원 등이 임의로 예금 계좌를 해지하고 돈을 가져갔더라도 고객은 여전히 넣어두었던 예금을 받아 갈 권리가 있다. 은행이 돈을 잃어버린 것이지, 고객이 가지고 있던 예금 채권까지 소멸해버린 건 아니라서다.
잔고가 0원이 됐더라도, 예금 채권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니 해당 은행은 고객이 맡겼던 돈을 다시 돌려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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