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4만원 술값 '외상' 나 몰라라⋯재판부 "징역형 선고해야 한다"면서도 벌금형 택한 이유
874만원 술값 '외상' 나 몰라라⋯재판부 "징역형 선고해야 한다"면서도 벌금형 택한 이유
형종상향금지 원칙에 따라 징역 선고 불가⋯벌금만 100만원 높여

약 900만원 가까이 되는 술값을 계산하지 않은 20대에게 벌금형이 선고됐다. /셔터스톡
약 900만원 가까이 되는 술값을 갚지 않은 20대에게 벌금형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0단독(재판장 오덕식 부장판사)은 17일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오 부장판사는 "범행 후 정황 등을 고려하면 징역형으로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면서도 벌금형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형사소송법 때문이다.
지난해 2월, 서울 강남에 위치한 유흥주점을 방문한 A씨. 2주 사이 총 4회에 걸쳐 총 874만원 상당의 술과 접객 서비스를 이용했다.
하지만 돈은 내지 않았다. 모두 '외상'을 달았다. 직원의 결제 요구를 무시하던 A씨는 결국 사기 혐의로 기소됐다.
원래 법원은 A씨에게 벌금 200만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약식명령이란 정식 재판을 열지 않고 서류만 검토해 법원에서 벌금 등을 선고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A씨는 이마저도 억울하다며 불복했다.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재판에서 A씨는 "당시 종업원이 '외상을 해줄 테니 먹고 가라'고 해서 이에 응한 것"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즉, 종업원의 제안에 따라 술을 마신 상태였으니 '기망(欺罔⋅남을 속여 넘김)'의 의사가 없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사건을 맡은 재판부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 부장판사는 당시 경제적 능력이 없었음에도, 이를 속이고 3차례나 더 방문했다고 판단했다. 또한, 종업원이 A씨에게 수차례 외상을 갚으라고 한 점과 A씨의 채무 상태 등을 고려해 사기 혐의를 인정했다.
A씨에게 최종적으로 선고된 1심 판결은 벌금 300만원. 앞서 약식명령에서 선고된 벌금보다 100만원이 올라간 금액이었다.
오 부장판사는 "범행동기 및 결과, 범행 후 정황을 고려하면 A씨를 징역형으로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면서도 "약식명령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하지 못하는 점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는 형사소송법 제457조의2 1항 '형종(刑種⋅형의 종류) 상향 금지 원칙'에 따른 것이다. 약식명령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한 사건에서 약식명령의 형보다 중한 종류의 형을 선고하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A씨가 애초에 받았던 벌금형보다 높은 금고형이나 징역형을 선고할 순 없던 것이다. 대신, 벌금액은 조정했다. 당초 20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높였다.
오 부장판사는 '300만원'으로 형량을 정한 이유에 대해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고, 우울증이 사건에 영향을 미친 점 등을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