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추 펴려다 8개월째 의식불명…병원은 '퇴원 통보', 가족은 '의료살인'
척추 펴려다 8개월째 의식불명…병원은 '퇴원 통보', 가족은 '의료살인'
척추측만증 수술 후 뇌손상 빠진 17세 소녀, 병원의 퇴원 요구에 법적 분쟁 예고
'의무기록 공유 실패'가 핵심 쟁점으로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17세 소녀가 척추 수술을 받다 8개월째 의식불명에 빠진 가운데, 병원이 퇴원을 통보해 파문이 일고 있다.
곧은 척추를 꿈꾸며 수술대에 올랐던 17세 소녀는 8개월째 눈을 뜨지 못하고 있다. 수술 후 응급처치 과정에서 뇌 손상을 입은 김주희(가명) 양.
사투를 벌이는 딸을 지켜보는 가족에게 병원은 “더 이상 해줄 치료가 없으니 퇴원하라”는 냉정한 통보를 건넸다.
'기록에 있는데 왜 몰랐나'…16번의 실패, 멈춰버린 뇌
비극은 수술 후 찾아온 폐렴에서 시작됐다. 의료진은 호흡 확보를 위해 기관 삽관(기도에 튜브를 넣는 시술)을 시도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정보가 누락됐다.
김 양은 선천적으로 기도가 좁아 기관 삽관이 어렵다는 사실이 수술 전 검사에서 확인돼 의무기록지에 명시돼 있었다. 그러나 응급 상황에 투입된 의료진은 이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의료진은 무려 16차례나 삽관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뒤늦게 목을 절개해 기도를 확보했을 땐 이미 뇌로 가는 산소 공급이 끊긴 뒤였다. 반복된 실패는 김 양의 뇌에 치명적인 저산소성 뇌 손상을 남겼다. 가족들은 “환자의 특수성만 제대로 인지했어도 막을 수 있었던 명백한 인재(人災)”라며 피를 토했다.
'치료 끝, 병실 비워라'…8개월 사투 가족에 날아든 퇴원 통보
딸의 의식이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려온 가족에게 병원의 통보는 비수처럼 꽂혔다. 병원은 “호흡기 내과에서 더 이상 해줄 치료가 없다”, “일반 병실에서 주치의를 맡아줄 의사가 없다”는 이유를 들며 퇴원을 요구했다.
인공호흡기와 각종 의료 장치에 생명을 의존하는 딸을 데리고 갈 곳도, 돌볼 방법도 없는 가족은 망연자실했다. 이는 사실상 치료 중단 통보나 다름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의료계에서도 환자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 퇴원 요구는 진료 거부에 해당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의료과실 vs 진료거부…법원이 주목할 두 가지 쟁점
법률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의 법적 쟁점을 크게 두 가지로 본다.
첫째는 ‘의무기록 공유 실패’에 따른 의료과실 책임이다. 대법원은 “진료기록부는 다른 의료인에게 정보를 제공해 환자가 적정한 의료를 받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97도2156 판결).
김 양의 기도 특성이 기록됐음에도 응급 처치에 반영되지 않았다면 병원의 과실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둘째는 ‘부당한 퇴원 요구’가 진료 거부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10조는 “정당한 사유 없이 응급의료를 중단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의식불명 상태의 환자에게 지속적인 의료 제공을 거부하는 행위는 이 법에 저촉될 소지가 크다는 분석이다.
승소율 1.4%의 벽…'자동 조정'이 마지막 희망 될까
이제 공은 법적 다툼으로 넘어갈 전망이다. 가족이 병원의 책임을 묻기 위해 택할 수 있는 길은 험난하다. 의료과실을 입증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은 1심 판결까지 평균 2년이 걸리고 환자 측 승소율은 1.4%에 불과하다.
또 다른 길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통한 조정 신청이다.
특히 김 양처럼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중상해 환자의 경우, 병원의 동의 없이도 조정 절차가 자동으로 시작된다는 장점이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의무기록이 부실하거나 의료진 간 정보 공유가 실패했음을 입증한다면 법적 절차를 통해 환자의 치료받을 권리를 지켜낼 여지는 충분하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