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부모는 3년 전 죽었다, 저들은 바퀴벌레" 노모 살해한 아들…교도소 아닌 치료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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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모는 3년 전 죽었다, 저들은 바퀴벌레" 노모 살해한 아들…교도소 아닌 치료감호?

2025. 10. 23 11:25 작성
손수형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sh.son@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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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신미약 감형에도 재범 위험 높으면 치료 먼저

망상에 사로잡혀 노모를 살해한 40대 남성이 징역 10년과 함께 치료감호를 선고받았다. /셔터스톡

"내 부모님은 3년 전에 사망했고, 저들은 부모님의 몸을 차지한 바퀴벌레들이다."


끔찍한 망상에 사로잡힌 40대 아들은 등산화를 신은 발로 80대 노모의 얼굴을 수차례 밟아 살해했다. 아버지를 향한 공격은 미수에 그쳤지만, 존속살해라는 반인륜적 범죄에 사회는 경악했다. 법원은 그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지만, 그가 향한 곳은 교도소가 아니었다. 바로 충남 공주에 있는 국립법무병원, '치료감호소'였다.


범죄를 저질렀지만 감옥 대신 병원으로 먼저 보내지는 치료감호. 23일 YTN 라디오 '이원화 변호사의 사건X파일'은 로엘법무법인 남채은 변호사와 함께 이 제도의 실체와 한계를 짚었다.


교도소와 다른 치료 시설⋯징역형은 치료 후에

치료감호는 심신장애나 약물 중독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재범 위험성이 높은 사람에게 내려지는 일종의 '보안 처분'이다.


남채은 변호사는 "형벌을 집행하는 교정 시설이라기보다는 치료와 재활에 중점을 둔 의료 시설에 더 가깝다"고 설명했다. 이곳에서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심리치료사 등이 팀을 이뤄 약물치료와 다양한 재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징역형과 함께 치료감호가 선고되면, 치료감호를 먼저 집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치료를 통해 재범 위험성이 낮아졌다고 판단되면, 그때 교도소로 이송돼 남은 형기를 채우게 된다. 중요한 것은 치료감호 기간은 징역형 기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사일 폭격" 환청으로 시작된 비극

재판부가 '바퀴벌레 망상' 살인범에게 치료감호를 명령한 이유는 그의 기이한 범행 과정에 있다. 사건 당일 새벽, 그는 "부산에 미사일 폭격이 있을 예정이니 대피하라"는 환청을 듣고 부모님 댁으로 달려갔다.


남채은 변호사에 따르면, 과거 필로폰 투약 후유증으로 정신질환을 앓던 그는 부모님을 모시고 서울로 향하던 택시 안에서 "아버지 몸에 바퀴벌레가 기어 다닌다"며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모텔로 돌아온 그의 머릿속은 이미 "부모님은 죽었고 저들은 바퀴벌레"라는 망상에 완전히 지배된 상태였다.


법원은 "정신질환으로 사물 변별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서 범행했다"며 심신미약을 인정했다. 하지만 "단순히 사회에서 격리하는 것만으로는 또 다른 비극을 막을 수 없다"며 치료 필요성을 강조해 징역 10년과 함께 치료감호를 명령했다.


부모는 "치료" 원했지만⋯엇갈린 판결

하지만 모든 사건이 치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를 '사탄'으로 보는 망상에 시달리다 흉기를 휘두른 또 다른 아들의 사건에서, 부모는 재판 내내 "처벌이 아닌 치료가 필요하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그러나 검찰은 치료감호를 청구하지 않았고, 법원도 이를 요구하지 않았다.


결국 이 아들은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됐다. 남채은 변호사는 "피고인은 교도소에서 치료다운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여전히 망상에 시달리고 있고, 그의 부모님은 매주 아들을 면회하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유명무실했던 제도, 대법원의 '경고'로 변화 기류

이처럼 치료감호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은 계속돼 왔다. 지난 10년간 정신장애 범죄자는 매년 수천 명에 달했지만, 검찰의 치료감호 청구율은 1% 미만에 불과했다. 검사에게만 청구권이 있고, 재범 위험성 입증이 까다로운 탓에 제도가 사실상 방치됐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알코올 중독 상태의 피고인에게 치료감호를 검토조차 하지 않은 것은 위법이라며 원심을 파기했다.


남채은 변호사는 "앞으로는 법원이 재판 과정에서 치료감호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살피고, 검사에게 청구를 요구하는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라고 강조한 것"이라며 이 판결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이 판결 이후 법원행정처가 전국 법관에게 판결문을 안내하는 등, 사법부가 처벌과 함께 치료 필요성을 심각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히 범죄자를 사회와 격리하는 것을 넘어,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해 또 다른 비극을 막으려는 사법 시스템의 의미 있는 변화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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