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를 위한 규정…사자명예훼손, 실제 처벌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
'죽은 자'를 위한 규정…사자명예훼손, 실제 처벌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

우리 형법에는 '죽은 자'를 위한 규정이 있다. 바로 사자(死者)명예훼손 조항이다. /게티이미지코리아·셔터스톡·편집=조소혜 디자이너
우리 형법에는 '죽은 자'를 위한 규정이 있다. 바로 사자(死者)명예훼손. 사망해 육신은 사라져도 그 사람의 사회적·역사적인 평가는 남아 있기 마련. 이를 실추시켰을 경우 사자명예훼손죄가 성립한다.
5·18 민주화 운동 당시 군 헬기사격을 증언했던 고(故) 조비오 신부를 회고록에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하여 논란을 일으킨 고(故) 전두환씨. 생전의 그가 고령의 나이에 재판에 넘겨진 이유도 바로 고인의 명예를 훼손시켰다는 혐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우선 사자명예훼손죄는 ①'허위의 사실'을 적시(摘示·지적하여 보임)해 ②고인의 사회적 평가를 저해했을 때 성립한다(형법 제308조). 즉 문제가 되는 발언이 허위라는 인식을 발언자가 하고 있어야 유죄로 인정된다. 이때 법원은 발언자가 허위가 아니라고 믿게 된 근거나 자료의 확실성, 표현 방법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판단한다.
실제로 해당 혐의로 재판을 받은 피고인 중에는 "허위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며 범행을 부인하는 경우가 있었다. 진실로 믿고 그런 것이니 죄가 안 된다는 취지였다. '과장된 표현'을 했을 뿐이라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 4년간 유죄를 선고 받은 피고인 8명. 이들이 법정에 서게 된 건 사실 고인의 가족 등의 고소 때문이었다. 사자명예훼손은 친고죄로, 고인의 가족 또는 자손으로 고소권자가 한정돼 있다. 유족들은 가해자의 악의적인 발언들로 고통받다가 고소를 결심했고, 재판부에 엄벌을 탄원했다.
사자명예훼손의 법정형은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禁錮)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로톡뉴스가 검토한 사자명예훼손 사건 8건 중 실형은 없었다. 절반 이상인 6건에 벌금형이 선고됐다. △동종 처벌 전력이 없거나 △반성하거나 △사실관계를 인정하는 점 등이 양형에 고려됐다.
가장 무거운 경우는 300만원(1건)이었다. 생전에 한 테마파크 관련 업무를 했던 피해자. 인터넷 기자였던 A씨는 해당 테마파크 비리에 대해 보도하며, 피해자가 그 중심에 있었다는 내용을 기사로 작성했다. 하지만, 피해자는 이미 비리 문제가 불거진 뒤 해당 사업을 맡았던 상황. 그런데도 비리로 인한 인사위원회를 앞두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식의 기사를 썼다.
재판에 넘겨진 A씨는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기사에서 'OO(회사명) 부장'이라는 식으로 피해자를 지칭했으니, 일반인 입장에서는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적어도 피해자와 함께 근무한 사람이라면 기사에 기재된 직책과 담당업무만 보고도 누군지 알 수 있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이어 단정적으로 기사를 썼고, 추가 검증을 통해 다른 객관적인 정보와 비교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후 A씨는 항소했지만, 수원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김귀옥 부장판사)는 기각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한 직원을 지칭하며 "죽은 분이 어느 정도냐면 팀장이 힘들어서 입이 돌아갔다는데…"라고 말한 B씨에게 벌금 100만원이 선고됐다. 사실 B씨와 사망한 피해자는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니었다. 또한 B씨는 다른 직원에게 들은 사실이라고 변명했지만 정작 해당 직원들은 그런 말을 한 적도 없었다.
특히 사건 당시는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한 지 며칠 되지 않던 시점. 사망 원인을 두고 회사 내부에 여러 소문이 돌던 상황에 B씨는 피해자에 대한 허위사실을 단정적으로 내뱉었다. "죽은 사람에게 미안하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이며.
지난 2020년 8월 서울중앙지법 형사16단독 이준민 판사도 이런 점을 지적하며 "피고인의 명예훼손 발언으로 딸을 먼저 보낸 피해자 유족에게 크나큰 상처를 준 점에 비춰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판시했다. 다만, 초범인 점 등을 들어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후 B씨는 대법원까지 사건을 끌고 갔지만 기각됐다.
나머지 사건들에선 각각의 피고인들에게 벌금 50~70만원이 선고됐다.
나머지 2건은 징역형의 집행유예였다. 집행유예의 경우 징역 6개월에서 징역 1년 내외에서 선고됐다. 탈북민 작가 이주성씨의 경우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지난 2017년 저서 '보랏빛 호수'를 출간한 이씨. 그는 저서에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5·18 당시 북한 김일성 주석과 결탁했다'라거나 '김 주석에게 특수부대 남파를 요청했다'는 등의 주장을 했다. 이에 대해 그는 진실로 믿었다고 주장했다.
지난 2020년 6월, 서울서부지법 형사3단독 진재경 판사는 이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진 판사는 "피고인은 한정된 경험과 다른 사람에게 들었다는 이야기들만 고집하며 보편적 인식과 근거들을 외면했다"며 "(문제 된 발언으로) 고인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이후 항소심에서도 1심과 동일한 형량이 선고됐다.
C씨는 사망한 피해자에게 성범죄를 당했다는 등의 발언을 하여 고인의 명예를 훼손했다. 피해자는 지난 2000년 가게 이전 문제 등으로 C씨 아버지와 다투다가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지난 2016년, C씨는 친구들에게 "내가 사망한 피해자로부터 성폭행당했고, 그것 때문에 아버지가 그를 죽였다"고 허위사실을 말했다. 이후 유족들은 C씨에게 사과를 요구했지만, 그 역시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지난해 11월, 춘천지법 속초지원 형사1단독 조재헌 판사는 C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출산을 하여 양육할 자녀가 있다는 등의 이유가 고려됐다.
이 기사는 2022년 06월 10일 네이버 로톡뉴스 프리미엄에 먼저 발행된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