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로 경비원 죽음 불러왔지만, 죽음에 대한 책임은 없는 '갑질' 입주민
'갑질'로 경비원 죽음 불러왔지만, 죽음에 대한 책임은 없는 '갑질' 입주민
아파트 입주민에 협박당하고 폭행당하다 결국 극단적 선택 한 경비원
"가해 입주민 처벌해야 한다" 비난의 목소리 높지만 실제로 처벌 가능성은 작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윤지영 변호사 "경비원의 죽음 반복되는 건 구조적 문제 때문"

'주차 문제'로 시작된 한 입주민과의 갈등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아파트 경비원 A씨가 근무하던 서울 강북구의 아파트 초소 앞에 11일 분향소가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아파트 입주민의 폭행에 시달리다, 끝내 스스로 숨을 거둔 50대 아파트 경비원 A씨. 그의 유서에는 "저 억울해요. 제 결백을 밝혀주세요"라고 적혀있었다. 처음 폭행을 당한 뒤 20일 만이었다.
당시 A씨는 이중 주차 된 차량을 밀어 옮기고 있었다. 그러다 한 입주민에게 손가락질당하고, 밀쳐지고, 어깨를 붙잡혀 끌려 갔다. '입주민 갑질' 이었다. 유족들은 "(A씨가) 근무할 때마다 (이 입주민이) 욕을 하고 갔다"며 "폭행을 당해 코뼈까지 부러졌다"고 하소연했다.
"당장 가해 입주민을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철저히 수사해서 무기징역을 시켜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올라왔다. 하지만 과거 '신현대아파트 경비노동자 분신 사건'을 담당했던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해당 입주민에게 경비원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에 가해자로 지목된 입주민은 형법상 '상해' 혐의를 받고 있다. 말 그대로 사람을 '다치게 한' 책임이다. 향후 재판에서 A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윤지영 변호사는 "폭행과 상해 이상의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해당 입주민이 A씨를 때렸을 때 'A씨가 죽을 수도 있다'고 예측했을 가능성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었다. 법적으로 폭행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가 없다고 볼 여지가 크다는 취지였다.
이렇게 되면 민사상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하더라도, 역시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유가족이 위자료 등을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윤 변호사는 "확인이 더 필요하다"면서도 "지금 드러난 사실관계 정도로는 경비원을 관리한 회사에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밝혔다.
구체적으로 "①경비원 A씨가 사전에 힘든 점을 회사에 토로하거나, 근무지 변경 등을 요청하고 ② 회사가 이런 사정을 알면서도 A씨를 방치했다는 점이 드러나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사정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견이었다.
실제 지난 2017년 '신현대아파트 경비노동자 분신 사건' 때는 회사가 경비원의 스트레스를 방치한 책임이 인정됐다. 당시 경비원은 우울증을 호소하며 병가와 근무지 변경 등을 요청했지만, 회사는 사직을 권할 뿐이었다. 법원은 이를 바탕으로 총 2500만원의 위자료를 인정했다.
2년이 넘는 긴 소송 끝에 유가족 승소 판결을 이끌어냈던 윤지영 변호사는 "유족의 고통을 보상하기에는 너무나 적은 액수이지만, 이때까지 법원은 자살 사고에 대해 사망한 사람의 개인 책임으로만 인정해 왔다"며 "그런 판례를 생각하면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했다.
아파트 경비원들이 계속해서 '입주민 갑질'을 당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건 어떤 이유일까.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취약 노동 계층의 변호를 담당하고 있는 윤 변호사는 이에 이렇게 답했다. "(사회적으로) 경비원을 보호하는 장치가 전혀 없기 때문"이라며 "(오롯이) 경비원 개인이 입주민들의 하대와 무시를 떠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했다.
차분하던 목소리가 높아졌다. 윤 변호사는 "자살 사건 외에도 경비원들에 대한 폭행, 모욕 사건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며 "대응을 위해 그동안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를 대상으로 교육도 했지만, 바뀌지 않고 있다는 게 진짜 문제"라고 했다.
윤 변호사의 말은 이렇게 끝났다.
"사실 대부분의 경비 노동자들이 굴욕적인 상황에서조차 '굽신거려야 한다'는 심정으로 일을 하고 있어요. 사회의 인식 자체가 '경비원은 누군가를 떠받드는 일을 해야 한다'고 여겨지고 있어서 그래요.
결국 이런 인식이 바뀌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참, 말은 쉽죠. 어째서 교육을 해도 잘 바뀌지 않는 걸까요? 저도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계속 이런 사건이 발생하니까 참, 그래요. 안타깝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