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넘은 양육비 추적…'배드파더스'의 정의는 왜 불법의 얼굴을 하고 있나
국경 넘은 양육비 추적…'배드파더스'의 정의는 왜 불법의 얼굴을 하고 있나
'코피노' 문제 공론화
처벌 피할 열쇠는 '공익성'

구본창(62) 씨가 SNS 계정에 딸을 두고 떠난 아버지를 찾는다며 게시한 사진. /X 캡처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했던 '배드파더스' 운영자 구본창(62) 씨가 이번엔 필리핀에 자녀를 두고 한국으로 돌아온 '코피노(Kopino)' 아빠들의 얼굴을 공개하고 나섰다.
"명예훼손이 되더라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그의 선언은 양육비 미지급 문제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끌어올렸지만, 동시에 '사적 제재'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그의 활동은 법의 이름으로 어떻게 평가될까.
아이 두고 온 사실 공개, 사생활 침해이자 명예훼손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다. "필리핀에 아이를 두고 한국으로 떠났다"는 사실은 개인의 가족관계에 대한 내밀한 정보로, 사생활의 영역에 속한다. 본인의 동의 없이 이를 인터넷처럼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공간에 공개하는 행위는 사생활 침해와 사실적시 명예훼손(형법 제307조 제1항) 모두에 해당할 수 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공개된 사실이 "일반인의 감수성을 기준으로 그 개인의 입장에서 공개되기를 바라지 않을 것"에 해당하고, 이로 인해 "불쾌감이나 불안감을 가질 사항"이라면 위법한 사생활 침해가 된다(대법원 2006다15922 판결). 아이를 유기했다는 사실은 사회적 평가를 크게 떨어뜨리는 만큼, 명예훼손 성립 요건도 충족한다.
문제는 이 행위가 처벌을 피할 수 있느냐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공익성'이라는 방패다.
'공익'이라는 방패, 명예훼손 처벌 막을 수 있다
우리 형법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제310조). 설령 명예를 훼손했더라도, 그 목적이 공익을 위한 것이었다면 위법성이 사라져 처벌을 면할 수 있다는 의미다.
양육비 미지급 문제는 아동의 생존권과 직결된 중요한 사회적 문제다. 특히 '코피노' 이슈는 반한 감정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외교적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은 공공의 이익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
실제로 과거 '배드파더스' 사건 재판부 역시 "양육비 미지급 문제라는 공적 사안에 대한 여론 형성에 기여했다"며 공익적 측면을 일부 인정했다.
다만 이 방패가 작동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더 필요하다. 공개된 내용이 진실해야 하고, 행위의 주된 목적이 상대를 비방하려는 것이 아니라 공익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구본창 씨의 활동이 이 요건들을 충족한다면, 그는 처벌을 피할 수도 있다.
넘지 말아야 할 선, '사적 제재'의 한계
하지만 법원은 공익성만큼이나 '사적 제재'의 위험성도 무겁게 본다. 법치국가에서는 국가가 정한 절차에 따라서만 권리를 실현하고 처벌을 내릴 수 있다. 개인이 법을 대신해 누군가를 심판하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대법원은 과거 '배드파더스' 사이트 운영을 "양육비를 주도록 압박하기 위한 사적 제재의 하나"로 규정했다. 법적 절차를 통해 양육비를 받을 방법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신상 공개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썼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특히 얼굴 사진처럼 민감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피해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정도가 크다"고 봤다.
물론 코피노 문제에는 특수성이 있다. 아빠들이 의도적으로 신분을 숨기고 한국으로 돌아온 경우, 필리핀에 있는 엄마가 한국의 법적 절차를 밟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법의 문턱이 너무 높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들에게 신상 공개는 유일한 최후의 수단일 수 있다.
결국 재판에서는 이 최후의 수단이라는 절박함이 사적 제재의 위험성을 넘어설 만큼 정당한가에 대한 법리 다툼이 벌어질 전망이다.
벌금형이냐 선고유예냐…법적 리스크와 감경 요소
만약 유죄로 판단될 경우, 구본창 씨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별도로 신상이 공개된 남성들로부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재판부가 형량을 정할 때는 여러 사정을 고려하게 된다. 그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감경 요소도 적지 않다.
- 공익성: 양육비 미지급과 코피노 문제의 심각성을 사회에 알린 점
- 법적 구제수단의 한계: 필리핀 현지에서 한국의 법적 절차를 밟기 어려운 현실
- 피해자의 책임: 자녀에 대한 양육 의무를 저버린 행위 자체가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점
- 표현 방법: 다른 방법이 없는 최후의 수단이었음을 강조하는 점
반면, 이미 같은 혐의로 선고유예 판결을 받은 전력이 있다는 점, 얼굴 사진까지 공개한 것은 피해가 너무 크다는 점 등은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과거 '배드파더스' 사건에서 대법원이 벌금 100만원의 선고유예를 확정한 판례에 비추어 볼 때, 다음에도 비슷한 수준의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그의 행위는 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위험한 줄타기지만, 동시에 법이 미처 닿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비추는 역할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