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임약정 해지의 자유를 제한하는 특약의 유효성
수임약정 해지의 자유를 제한하는 특약의 유효성
대법원 2019. 5. 30. 선고 2017다53265 판결 [손해배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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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관계
피고 조합(지원1구역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설립추진위원회)은 원고를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로 선정하여, 2014. 11. 5. 정비사업에 관한 업무를 위탁하는 내용의 용역계약('이 사건 용역계약')을 체결하였다.
이 사건 용역계약 제9조 제1항은, 다음 각호의 사유가 발생하여 원고가 계약을 이행할 수 없다고 판명된 경우 피고 조합이 10일의 계약이행 기간을 정하여 서면으로 통보한 후 위 기간 내에 이행되지 아니하면 이 사건 용역계약의 일부 또는 전부를 해제 또는 해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면서, 각호의 사유로서 정당한 사유 없이 피고 조합의 업무상 지시에 불응하거나 용역기간 내 용역 업무를 완성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명백한 사유가 발생한 경우(제1호), 원고가 고의적으로 계약조건을 위반함으로써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제2호)를 들고 있다.
이 사건 용역계약 제9조 제2항에서는 피고 조합이 계약을 이행할 수 없다고 판명된 경우 원고는 충분한 계약이행 기간을 정하여 서면으로 통보한 후 같은 기간 내에 이행되지 아니하면 이 사건 용역계약의 일부 또는 전부를 해제 또는 해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편 이 사건 용역계약 제10조는, 원고는 본 계약상 시공사 선정 전까지의 사업추진비(계약이행보증금) 5,000만 원은 본 계약 체결 즉시 피고 조합이 지정한 그 명의의 금융기관 계좌로 입금하는 방식으로 대여하고 피고 조합은 이에 대한 영수증을 발급하되, 대여를 요청하는 피고 조합은 회의록을 반드시 첨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피고 조합은 2014. 11. 14. 10:00경 팩스로 원고에게 '입찰참여규정 제16조 제1항에 의하면 원고가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로 선정된 즉시 계약이행보증금 5,000만 원을 추진위원회에서 개설한 통장에 입금하기로 되어 있으나, 총회 이후 한 달여가 지나도 이를 입금하지 않아 수차례 독촉하였음에도 여전히 입금되지 않아 해지 통보한다'는 내용의 용역계약 해지통보('이 사건 해지통보')를 발송하였고, 이는 그 무렵 원고에게 도달하였다.
2. 대상판결 요지
민법 제689조 제1항, 제2항은 임의규정에 불과하므로 당사자의 약정에 의하여 위 규정의 적용을 배제하거나 내용을 달리 정할 수 있다. 그리고 당사자가 위임계약의 해지사유 및 절차, 손해배상책임 등에 관하여 민법 제689조 제1항, 제2항과 다른 내용으로 약정을 체결한 경우, 이러한 약정은 당사자에게 효력을 미치면서 당사자 간의 법률관계를 명확히 함과 동시에 거래의 안전과 이에 대한 각자의 신뢰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라고 볼 수 있으므로, 이를 단순히 주의적인 성격의 것이라고 쉽게 단정해서는 아니 된다.
따라서 당사자가 위임계약을 체결하면서 민법 제689조 제1항, 제2항에 규정된 바와 다른 내용으로 해지사유 및 절차, 손해배상책임 등을 정하였다면, 민법 제689조 제1항, 제2항이 이러한 약정과는 별개 독립적으로 적용된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약정에서 정한 해지사유 및 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계약을 해지할 수 없고, 손해배상책임에 관한 당사자 간 법률관계도 약정이 정한 바에 의하여 규율된다고 봄이 타당하다.
3. 대상판결의 검토
가. 위임계약의 상호해지의 자유
위임계약은 각 당사자가 언제든지 해지할 수 있다(민법 689①). 민법상의 위임계약은 그것이 유상계약이든 무상계약이든 당사자 쌍방의 특별한 대인적 신뢰관계를 기초로 하는 위임계약의 본질상 각 당사자는 언제든지 이를 해지할 수 있다(대법원 2000. 6. 9 선고 98다64202 판결). 따라서 법률사건·사무에 관한 수임약정 역시 변호사나 의뢰인은 특별한 사유 없이도, 해지사유를 제시할 필요도 없이 해지할 수 있다.
해지는 상대방에 대하여 일방적인 의사표시로 하되, 명시적·묵시적 의사표시로도 가능하다. 해지의 시기는 위임사무의 종료 전이어야 한다. 해지되면 수임인은 수임사건의 처리를 중지할 수 있다. 변호사는 의뢰인이 변호사를 바꾸고자 할 경우에는 업무의 인수인계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협조한다(변호사윤리장전 25②).
나. 수임약정상 채무불이행을 원인으로 하는 해지
위임인(의뢰인)는 수임약정상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위임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그런데 위임인이 주장하는 채무불이행 사실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변호사를 사임시키려는 의도로 존재하지 않는 채무불이행 사실을 주장한 경우에도 해지의 효력이 발생하는지 문제 된다. 사실 이런 상황이라면 변호사가 수임약정이 유효함을 주장하면서 계속적으로 대리인의 지위에 있기 어렵다.
판례는 위임계약의 일방 당사자가 타방 당사자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위임계약을 해지한다는 의사표시를 하였으나, 실제로는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한 계약 해지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 의사표시에는 민법 제689조 제1항에 기한 임의해지로서의 효력이 인정된다고 한다(대법원 2015. 12. 23. 선고 2012다71411 판결). 여기서 '특별한 사정'이란 임의해지를 제한하는 특약과 같은 사유를 말한다. 따라서 수임약정은 원칙적으로 수임인의 채무불이행은 물론 위임인의 비밀을 공개하는 것과 같은 불법행위가 있을 때 또는 이런 사유가 없더라도 임의로 해지할 수 있다.
다. 상대방이 불리한 시기의 해지
각 당사자는 언제든지 수임약정을 해지할 수 있고, 그로 말미암아 상대방이 손해를 입는 일이 있어도 원칙적으로 이를 배상할 의무가 없다. 그러나 당사자 일방이 부득이한 사유없이 상대방의 불리한 시기에 계약을 해지한 때에는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민법 689②).
여기서 '부득이한 사유'는 변호사에게 질병 또는 구금되는 사정이 발생하거나, 의뢰인이 장기간 연락두절 또는 약정 보수액의 미지급도 이에 포함된다. 그리고 '불리한 시기에 계약을 해지한 때'는 변호사가 구속적부심 재판이 예정된 날에 수임약정을 갑자기 해지하여 다른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기회를 갖지 못하도록 한 경우 등을 말한다. 이때 변호사는 징계처분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의뢰인이 입원 중이라서 다른 변호사를 선임하여 사무처리가 곤란하게 된 때도 상대방이 불리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라. 상대방이 불리한 시기에 한 해지로 인한 손해배상
당사자 일방이 부득이한 사유없이 상대방의 불리한 시기에 계약을 해지한 때에는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고 할 때, 그 배상의 범위는 위임이 해지되었다는 사실로부터 생기는 손해가 아니라 적당한 시기에 해지되었더라면 입지 아니하였을 손해에 한한다.
그리고 수임인이 위임받은 사무를 처리하던 중 사무처리를 완료하지 못한 상태에서 위임계약을 해지함으로써 위임인이 사무처리의 완료에 따른 성과를 이전받거나 이익을 얻지 못하게 되더라도, 별도로 특약을 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임계약에서는 시기를 불문하고 사무처리 완료 전에 계약이 해지되면 당연히 위임인이 사무처리의 완료에 따른 성과를 이전받거나 이익을 얻지 못하는 것으로 계약 당시에 예정되어 있으므로, 수임인이 사무처리를 완료하기 전에 위임계약을 해지한 것만으로 위임인에게 불리한 시기에 해지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대법원 2015. 12. 23. 선고 2012다71411 판결)고 한다.
마. 해지의 자유를 제한하는 특약
대상판결은 민법 제689조 제1항, 제2항은 임의규정에 불과하므로 당사자의 약정에 의하여 위 규정의 적용을 배제하거나 그 내용을 달리 정할 수 있다고 한다. 당사자가 위임계약을 체결하면서 민법과 달리 해지사유 및 절차, 손해배상책임 등을 달리 정하였다면, 민법상 위임의 상호해지의 자유 약정과는 별개 독립적으로 적용된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 약정에서 정한 해지사유 및 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 손해배상책임에 관한 당사자 간 법률관계도 위 약정이 정한 바에 의하여 규율된다.
따라서 위임계약의 해지 사유, 시기, 방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특약을 할 수도 있다. ① 수임인의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가 있을 때만 해지할 수 있다. ② 수임사무인 재판의 변론종결 후에는 해지할 수 없다. ③ 해지는 서면으로 한다. 다만, 수임약정서에 부동문자로 "향후 이 계약은 해지할 수 없다."는 내용은 위임인의 해지권을 포기시키는 것이라서 무효라고 할 수 있다. 대상판결은 위임계약의 해지 자유를 특약에 의하여 제약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여 불완전한 위임계약의 법적 안정성을 도모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정형근 교수(경희대 로스쿨)
사법시험 34회, 사법연수원 24기
변호사, 전 경희대 로스쿨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