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기록부의 어떤 내용이 법원의 마음을 움직였나
생활기록부의 어떤 내용이 법원의 마음을 움직였나
유리한 양형 사유 중 하나로 언급된 판결문 4건 분석

생활기록부를 언급하며 유리한 양형에 반영한 경우는 어떤 경우였을까. 대체 생활기록부에 어떤 내용이 담겼길래 법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던 걸까. /게티이미지코리아·편집=조소혜 디자이너
반성문과 탄원서. 재판을 받는 피고인들이 선처를 호소하는 가장 흔한 방법이다. 이 밖에도 피고인들은 조금이나마 죗값을 덜기 위해 법원에 각종 양형자료를 제출한다. 헌혈증, 장기기증서약서, 기부금 내역서, 봉사활동 계획서 등등 끝이 없다.
이는 모두 피고인들이 사회적 유대를 가지고 있는 정상적인 사람이며, 다시는 재범할 가능성이 낮고, 개선의 여지가 있으며, 이번 범죄는 실수로 벌어진 일임을 주장하는 자료로 활용된다. 그리고 이 양형 자료에는 초·중·고교 생활기록부도 포함된다.
지난 1월 31일 기준, 대법원이 공개한 판결문 중 '생활기록부'가 유리한 양형 배경으로 따로 언급된 사건을 추려봤다. 최근 4년간 총 4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적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피고인들이 제출하는 각종 양형자료는 판결문에서 '여러 양형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이 한 줄에 담기기도 한다. 이 때문에, 실제로 재판에서 생활기록부 등을 제출한 경우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별도로 생활기록부를 언급하며 유리한 양형에 반영한 경우는 어떤 경우였을까. 대체 생활기록부에 어떤 내용이 담겼길래 법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던 걸까.

서울의 한 지하철 승강장에서 처음 보는 여성을 뒤쫓아가 계속 팔을 잡으며 성관계를 요구한 A씨. 그로 인해 피해자는 상당한 성적 수치심을 느꼈지만, 2심까지 진행된 재판에서 법원은 A씨를 엄벌하는 대신 '벌금 300만원의 선고유예'로 선처했다.
선고유예는 죄는 인정되지만 선고를 미룸으로써 2년간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선고 자체가 없던 일이 된다. 사실상 처벌이 없는 선처인 셈이다. 1심에서만 해도 벌금 300만원이 나왔었던 상황. 2심 판결문을 살펴보니, A씨의 학교생활기록부가 유리한 양형 사유 중 하나로 추가 된 것이 확인됐다(2019년 6월 서울서부지법 판결).
A씨의 강제추행 범행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실이지만, 재판에서 죗값의 무게를 덜어주는 요소로 고려되고 있었다.

살인을 저지른 경우도 있었다. 10년간의 결혼생활 끝에 아내를 살해한 40대 B씨 사건이다. 그는 아내가 자주 외출하고 늦게 귀가하는 일이 많아지자, 갈등을 겪었다. 아내가 자신 몰래 지인들과 여행을 다녀온 이후부터는 외도를 의심해 자주 다퉜다.
그러다 지난 2020년 9월 사건 당일에도 아내와 다투다 결국 주먹을 휘둘렀다. 이어 흉기로 바닥에 쓰러진 아내의 목 부위 등을 수차례 찔러 숨지게 했다. 당시 현장엔 이들의 딸도 있었다.
지난 2021년 2월 인천지법 부천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임해지 부장판사)는 살인 혐의를 받는 B씨에게 "부부의 갈등을 자녀의 면전에서 살인으로 끝맺음한 피고인을 장기간 사회에서 격리해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B씨가 아내와의 불화를 해결하기 위해 상담을 받는 등 노력했다고 언급하면서, B씨에 대한 수년 전 학교 기록인 생활기록부를 언급했다.
"(부부의 갈등 해결을 위해 노력한 점은) 매사 근면·성실하고 책임감이 있다는 평가가 일관되게 나타나는 생활기록부 등에서 짐작할 수 있는 B씨의 성품 등과도 어긋나지 않아 보인다"
가족의 선처 등 다른 양형 사유들도 고려돼 B씨에겐 징역 12년이 선고됐다. 2심 결과도 동일했다.

생후 1개월된 딸이 운다는 이유로 때리고, 침대 매트리스 위로 떨어뜨리는 등 학대해 결국 숨지게 하고 이 사실을 숨긴 20대 C씨도 비슷한 경우였다. C씨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아동학대치사)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2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으로 감형이 이뤄졌다. C씨가 홀로 육아를 도맡으며 심각한 산후우울증에 시달렸고, 반성하는 점 등 다른 사유도 있었지만 모범적인 학창 시절도 고려되면서다. 지난해 5월, 대전고법 제3형사부(재판장 정재오 부장판사)는 다음과 같이 판시하며 선처했다.
"피고인의 학창시절 생활기록부에 따르면, 마음이 착하고 규칙을 잘 지키고 솔선수범하며 어려운 친구를 돕는 등 배려심 많고 의리 있는 학생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다른 사람의 커피숍 등에 침입해 청소기 등의 물품과 현금을 훔친 D씨. 이미 그에겐 절도 전과가 두 차례나 있었다. 하지만 재판에 넘겨진 D씨의 판결문에서도 학교생활기록부가 선처 사유 중 하나로 언급됐다.
"학급 반장으로 성실히 임하고 리더십을 발휘하여 학급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을 수행함"
보육원에서 자란 D씨가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며 성장했다는 점을 양형에 반영해준 것이었다. 지난해 4월 2심을 맡은 창원지법 제1형사부(재판장 김국현 부장판사)는 D씨가 재범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점 등도 참작해 1심과 같은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피고인들이 진정으로 반성했다면 이를 일부 양형에 반영하는 것을 문제 삼을 수 없다. 하지만, 그 '진정한 반성'이 피고인들의 과거 생활기록부에 드러나 있을 리는 만무하다. 위 피고인 4명의 생활기록부에 담긴 내용이 특별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판결문에 유리한 양형으로 언급된 건, 일각의 지적처럼 '기계적인 양형 판단'인 건 아닐까.
이 기사는 2023년 02월 03일 네이버 로톡뉴스 프리미엄에 먼저 발행된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