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서 없는 성범죄 피해, 2천만원 손해배상 청구 가능할까
진단서 없는 성범죄 피해, 2천만원 손해배상 청구 가능할까
전문가들 “형사기록이 핵심 증거, 지금이라도 정신과 진료 받아야 위자료 산정 유리”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몸에 든 멍은 사라졌지만… 끔찍한 그날의 기억, 돈으로 보상받을 수 있나요?”
폭행과 성범죄 피해를 입은 A씨가 뒤늦은 손해배상 청구 방법을 두고 법률 전문가들의 문을 두드렸다. 사건 직후 경황이 없어 병원 진료를 받지 못했지만, 가해자에게 2000만 원 이상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싶다는 게 그의 절박한 심정이다.
사건은 2025년 8월 26일 발생했다.
A씨는 이날 가해자로부터 폭행과 함께 입에 유사성행위를 강요당하는 끔찍한 일을 겪었다. 가해자는 현장에서 긴급체포돼 현재 검찰에 송치된 상태다. 하지만 A씨는 사건 당일 극심한 정신적 충격으로 조사를 받으러 가면서도 병원을 찾을 경황이 없었다.
시간이 흘러 몸에 들었던 멍은 희미해졌지만, 그날의 악몽은 선명하게 남아 그를 괴롭히고 있다. 손해를 입증할 ‘종이 증거’가 없다는 불안감은 그를 더욱 힘들게 했다.
진단서가 없는데, 소송 자체가 가능한가요?
A씨의 가장 큰 걱정은 사건 직후 받아두지 못한 진단서다. 하지만 법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손해배상청구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가해자에 대한 형사 절차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 자체가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대운의 채희상 변호사는 “피의자가 송치된 상황이라면 수사기관에서 확보한 증거자료가 있을 것이므로, 이를 토대로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서아람 변호사 역시 “민사에서는 범죄 사실이 형사사건에서 인정되는 것만으로도 불법행위가 성립하고, 그로 인한 정신적 손해에 대해 위자료 청구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즉, 가해자의 범죄 혐의가 인정되는 것만으로도 A씨의 피해 사실은 법적으로 뒷받침될 수 있다는 의미다.
사건 한참 지나 정신과 진료, ‘증거’로 인정될까요?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병원을 찾아 증거를 만드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전문가들은 ‘매우 중요하고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성범죄로 인한 정신적 후유증은 시간이 흐른 뒤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신사 법무법인의 장휘일 변호사는 “정신적 피해에 대해서는 정신과 진료기록이 중요한 근거가 되므로 시간이 지났더라도 지금이라도 진료를 받아두는 것이 좋다”고 권했다.
법무법인 유안의 조선규 변호사는 “현재 겪고 있는 정신적 고통이 과거의 범죄 피해와 인과관계가 있다는 소견을 받는다면, 이는 손해배상액 산정에 있어 매우 중요한 증거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며 “이는 늦은 대응이 아니라, 피해로 인한 손해를 구체적으로 입증하는 정당한 과정”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위자료 2천만 원, 너무 큰 금액 아닐까요?
A씨가 생각하는 2000만 원이라는 배상액은 과연 합리적인 수준일까.
변호사들은 폭행과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가 결합된 중대 범죄라는 점을 고려할 때 “과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김일권 변호사는 “가해자에게 2천만원 이상의 피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고 단언했다. 법원은 통상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의 죄질을 매우 나쁘게 보고,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을 폭넓게 인정해 위자료를 높게 산정하는 경향이 있다.
법무법인 에스엘의 이성준 변호사는 “유사 사건 판례에 비추어 볼 때, 폭행 및 유사성행위 강요에 대한 위자료로 2,000만 원 이상을 청구하는 것이 과다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다만 예서 법률사무소 배재용 변호사는 “최종 인정액은 법원이 피해 입증 정도, 가해자 재산 상황 등을 종합 고려해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을 덧붙였다.
A씨는 비록 사건 직후의 진료기록은 없지만, 진행 중인 형사사건 기록과 현재의 정신과 진료를 통해 충분히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상황이다.
법의 심판대 앞에 선 가해자에게 형사 처벌을 묻는 것과 별개로, A씨가 입은 마음의 상처를 금전적으로나마 보상받을 길은 열려 있는 셈이다. 사라진 멍 자국 아래, 지워지지 않는 고통의 무게를 법원이 어떻게 평가할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