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상 군 유괴사건' 고문 피해자 국가배상 승소… 법원 "가혹행위 책임 8천만 원 배상"
'이윤상 군 유괴사건' 고문 피해자 국가배상 승소… 법원 "가혹행위 책임 8천만 원 배상"
1981년 대통령 특별담화 후 이뤄진 불법 체포와 가혹행위 인정
실명과의 인과관계는 증거 부족으로 기각

이윤상 군 유괴 사건 /연합뉴스
1980년 11월 13일, 중학교 1학년 이윤상 군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납치범들은 이 군의 부모에게 60여 차례에 걸쳐 협박 전화와 편지를 보내며 4,000만 원을 요구했으나 약속 장소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사건이 장기화되자 1981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윤상이가 살면 네놈도 살 것이고 윤상이가 죽으면 네놈도 죽을 것이다"라는 특별 담화를 발표하며 강력한 수사를 지시했다.
경찰은 수사본부를 꾸리고 용의자 약 1,700명과 주변 인물 720명 등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조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1981년 9월 4일, 이 군과 같은 동네에 거주하며 소 운반 기사로 일하던 이상출 씨가 용의자로 검거됐다. 경찰은 이 씨가 냉동 트럭을 이용해 시신을 유기했을 것이라 의심하고, 영장 없이 그를 마포구의 한 여관으로 연행해 나흘간 구금했다.
여관 내 가혹행위와 허위 자백 그리고 1년 뒤 밝혀진 진범
연행된 이 씨는 여관에서 가혹행위를 당했다. 경찰은 이 씨의 상반신을 끓는 물에 강제로 집어넣거나, 얼굴을 젖힌 뒤 짬뽕 국물을 코에 붓는 고문을 가했다. 수사 과정에서 한 경찰관은 손가락으로 이 씨의 오른쪽 눈을 찔렀고, 이 씨는 이 과정에서 시력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이 씨는 계속되는 협박과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이 유괴범이라는 허위 자백을 했다.
경찰은 이 씨의 자백 외에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자 공갈 혐의를 적용해 그를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사건 발생 1년 만인 1981년 11월, 진범이 체육 교사 주영형으로 밝혀지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주 씨는 도박 빚을 갚기 위해 제자를 유괴해 살해한 사실을 자백했고, 이후 사형이 확정되어 집행됐다. 이 씨는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지속했으며, 고문 시점으로부터 5년 뒤 백내장 제거술을 받는 등 안과 치료를 이어왔다.
진실화해위원회 결정과 국가배상청구 소송의 전개
2024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 사건을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로 규정하고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이 씨는 이를 근거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에서 국가(경찰청) 측은 고문 사실이 구체적으로 입증되지 않았으며, 1982년 이미 피해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2024년에 소를 제기한 것은 소멸시효가 완성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4부(박사랑 부장판사)는 2026년 1월 14일, 국가가 이 씨에게 8,000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 씨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당시 언론 보도 내용과 일치한다는 점을 들어 불법 체포와 가혹행위 사실을 인정했다. 또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의 경우 민법상 10년의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를 적용해 국가의 시효 소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률 분석 가혹행위 인정과 실명 인과관계에 대한 판단
재판부는 수사 공무원들이 직무 집행 과정에서 고의로 불법행위를 저질렀으며, 이로 인해 이 씨가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음이 명백하다고 보았다. 현행 법 체계에서 영장 없는 체포와 구금은 형법 제124조(불법체포·구금)에 해당하며, 고문은 형법 제125조(폭행·가혹행위)에 따라 처벌되는 중범죄다. 또한 형사소송법 제309조는 가혹행위로 얻은 자백의 증거능력을 엄격히 부정하고 있다.
다만 이번 판결에서 법원은 이 씨의 '실명'과 고문 사이의 인과관계는 인정하지 않았다. 고문이 발생한 1981년과 이 씨가 백내장 수술을 받은 1986년 사이 5년의 시간적 간격이 있다는 점이 결정적이었다. 재판부는 "우안의 상태가 외상성으로 발생했다는 객관적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현재의 국가배상 체계에서는 인과관계가 증명될 경우 일실수입과 치료비 등을 포함한 대규모 배상이 가능하나, 본 사건에서는 정신적 위자료 성격의 배상금만 확정됐다. 이 씨 측은 고문 직후부터 시력이 저하된 점을 강조하며 항소심에서 이를 다시 다툴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