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증 투표 안 된다고 돌려보낸 공무원⋯국가가 손해배상해야 할 수 있다
학생증 투표 안 된다고 돌려보낸 공무원⋯국가가 손해배상해야 할 수 있다
"학생증으로는 신원확인 안 된다"며 투표 거절한 투표소
선거 규정에 따르면 '학생증'으로도 투표 가능⋯직원의 실수로 밝혀져
'직무 유기'로 책임 물을 순 없지만⋯과실 인정되면 국가에 책임 물을 수 있다

만 18세 유권자의 '생애 첫 투표 날'이었던 지난 15일. 설레는 마음으로 투표소를 찾은 고등학교 3학년 A군은 투표소 관계자 때문에 자신의 권리 행사를 놓칠 뻔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투표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만 18세 유권자의 '생애 첫 투표 날'이었던 지난 15일. 설레는 마음으로 투표소를 찾은 고등학교 3학년 A군은 기표소를 눈앞에 두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투표소 관계자에게 보여준 '학생증' 때문이었다. 관계자는 학생증에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기재돼 있지 않아 신원확인이 불가능하다며 A군에게 투표를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A군 아버지는 답답한 마음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문의했다. 선관위는 "학생증만 있으면 투표가 가능하다"고 답변했고, A군은 다시 투표소로 갔다.
그런데도 거절을 당하자 A군은 관할 행정복지센터에서 주민등록증까지 발급받아 투표를 마쳤다.
하지만 뒤늦게서야 투표소 관계자가 사실관계를 잘못 알았다는 점이 밝혀졌다. 선거 규정에 따르면, 청소년은 학생증만으로 투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미 A군은 신분증을 구하느라 오전, 오후를 모두 허비한 시점이었다.
A군 사건은 순전히 '어른'들의 잘못이었다. A군이 방문한 투표소를 관할하는 인천시 부평구 선거관리위원회 측은 "투표소 관리관이 (관련 내용을) 잘못 알고 있었던 것 같다"고 시인했다.
투표가 가능한 신분증이란 학교를 포함한 ①공공기관이 발급하고 ②생년월일과 사진이 표기된 신분증을 말한다. 이 요건만 충족하면 학생증도 가능하다. 실제 A군이 가져간 학생증에는 재학하고 있는 학교 이름과 생년월일, 사진이 모두 표기돼 있었다.
청소년에게 투표권이 생긴 의미 있는 4·15 총선. 다행히 A군의 잘못이 없음이 밝혀졌지만, 투표소 관계자들의 미숙함 때문에 애먼 A군만 마음을 졸여야 했다.
해당 관계자가 투표 규정을 숙지하지 않아, 유권자에게 잘못된 안내를 한 행동에 '직무유기'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까.
법무법인 세안의 이임표 변호사는 "직무유기죄가 성립하려면 주관적으로 직무를 저버린다는 의식과 객관적으로 직무 또는 직장을 벗어나는 행위가 있어야 한다"며 "(이번 사안은) 공무원의 일종의 과실에 의한 행위에 불과해 자신의 공무에 대한 직무유기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직무유기죄(형법 제122조)는 의식적으로 업무를 하지 않고 포기하거나, 직장에서 이탈할 때 성립한다.
하지만 A군의 투표를 거절한 관계자의 경우 일부러 투표 업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 그보다는 부주의로 인한 '과실'에 해당되기 때문에 직무유기죄는 적용할 수 없다.
투표소 직원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지만, A군이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것은 가능할 수 있다. 그 근거는 헌법 제29조 1항이다.
이임표 변호사는 "헌법 제29조 1항은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해 손해를 받은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정당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며 "이 경우 공무원 자신의 책임은 면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국민이 손해를 입었을 때, 공무원의 '경과실'이 인정된다면 해당 공무원의 선임과 감독 책임이 있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다. 이때 해당 공무원에게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하지만 공무원의 '고의와 중과실'이 인정되면 당사자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뿐만 아니라 그 공무원 개인에게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해당 공무원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
즉 A군에게 투표 안내를 잘못한 공무원의 행동이 직무상 위법한 행동이라면, 그 과실 정도에 따라 국가 혹은 해당 공무원에게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다.
이 변호사는 "(이번 A군 사건은) 해당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보이며, 경과실로 인정될 여지가 있다"며"실제 근무를 하는 사람이 공무원이 아니라 공무를 위탁받았다고 할지라도 동일한 논리가 적용된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