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살해한 동생, 아버지 굶겨 죽인 아들…가족을 살인자로 내모는 ‘돌봄 사각지대’
형 살해한 동생, 아버지 굶겨 죽인 아들…가족을 살인자로 내모는 ‘돌봄 사각지대’
법원도 고개 떨군 간병 범죄

16년간 형을 간병하던 동생이 결국 형을 살해했다. /셔터스톡
뇌병변 1급 형을 16년간 돌보던 동생이 결국 형을 살해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이는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간병 살인'의 현실을 드러낸 사건으로, 법원은 이례적 감형을 통해 우리 사회 돌봄 시스템의 공백을 간접적으로 지적했다.
20대 청춘 바쳐 형 돌봤지만…
동생 A씨는 16년간 뇌병변 장애 1급 판정을 받은 친형을 돌봐왔다. 7일 YTN 라디오 '이원화 변호사의 사건X파일'에 출연한 원희영 변호사(로엘 법무법인)는 "형은 2003년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 팔다리를 못 쓰고 평생 침대에 누워 지냈다"며 "당시 24살이던 동생 A씨는 결혼도 포기한 채 사실상 가장 역할을 해왔다"고 설명했다.A씨의 20대와 30대는 오롯이 형을 위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형의 짜증과 감정 기복은 심해졌고, 지칠 대로 지친 A씨는 어느 날 술에 취해 형의 거친 언행을 마주했다.
원 변호사는 "형이 욕을 하고 물건을 집어던지자, 순간 이성을 잃고 형의 입을 막고 목을 졸랐다"고 전했다. 만취 상태였던 A씨는 다음 날 아침, 숨진 형을 발견하고 뒤늦게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지만 때는 늦은 후였다.
1심 재판부는 "몸도 가누지 못하는 형의 목을 강하게 압박했다"는 이유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를 인정해 징역 6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원 변호사는 "항소심 재판부는 살인의 고의가 완벽히 입증되지 않는다고 봤다"며 검찰이 예비적으로 추가한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사랑했던 형을 죽게 했다는 죄책감 속에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것이 무엇보다 큰 형벌일 것"이라며 징역 3년으로 감형했다.
어버이날 아버지를 굶겨 죽인 아들…비극은 반복된다
간병이 부른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모시던 20대 아들 B씨의 사연도 법정을 울렸다. 감당할 수 없는 병원비에 결국 아버지를 집으로 모셔온 B씨는 퇴원 다음 날부터 간병을 포기했다.
원 변호사는 "아들은 아버지가 회복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해 약을 주지 않았고, 일주일간 식사도 열 번만 제공했다"며 "결국 5월 1일부터는 물과 음식조차 주지 않아 아버지는 어버이날인 5월 8일경 영양실조 등으로 사망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존속살인죄와 존속유기치사죄(부양 의무가 있는 사람이 부양을 받아야 할 사람을 유기해 사망에 이르게 하는 범죄) 사이에서 법적 공방이 벌어졌다.
원 변호사는 "존속살인은 최하 징역 7년부터 시작하지만 존속유기치사는 5년부터 시작해 형량 차이가 크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적극적 살해 의도보다 방임에 가깝다"며 존속유기치사죄를 인정했다.
월 370만원 간병비…'돌봄 사각지대'가 가족을 범죄자로
이러한 비극의 배경에는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사회 구조적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50년 10명 중 4명이 노인이 되는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며, 간병 부담은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원 변호사는 "2024년 기준 간병인 고용 월평균 비용은 370만 원에 달한다"며 "가족이 가해자인 간병살인은 단순 범죄로만 보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모든 간병 범죄가 동정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환자 항문에 위생패드를 넣거나, 입에 의료용 테이프를 붙이는 등 잔혹한 학대 사건도 끊이지 않고 있다.
원 변호사는 개인의 희생에만 의존하는 현재의 돌봄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 변호사는 "간병인 자격제도 도입, 표준계약서 의무화, 공적 교육·감독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며 "보호자가 안심하고 환자를 맡길 수 있는 제도적 기반 없이는 이 같은 비극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