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날 시각장애 학생 울린 예고 없는 점자 변경…국가배상 책임 가능성은
수능날 시각장애 학생 울린 예고 없는 점자 변경…국가배상 책임 가능성은
익숙했던 한글이 특수문자로 돌변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 소지 다분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3일 서울 광진구 광남고등학교에서 한 수험생이 시험 준비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13일 치러진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중증 시각장애 수험생 한모(18) 군에게 1교시 국어 영역은 당황 그 자체였다. 시각장애 수험생에게 제공되는 점자 문제지의 보조수단인 음성파일 형식이 예고도 없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가)', 'ㄱ' 등을 한글로 읽어줬지만, 이번 수능부터는 사전 안내 없이 '유니코드 특수문자'로 표기 방식이 변경되었다. 이로 인해 수험생들이 평소 사용하던 스크린리더기의 '찾기' 기능이 먹통이 됐고, 긴 지문을 화살표 키로 일일이 넘겨가며 들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교육부는 "읽기 청해도를 높이려는 전문가 의견을 반영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명백한 법적 책임 영역이라는 의견이 거세다.
국가배상 책임 피하기 어렵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변화 그 자체가 아니라 예고 없는 변화다. 법률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사실상 출제 오류에 준하는 행정적 과실"이라고 지적했다.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 따르면, 공무원(또는 공무를 위탁받은 사인)이 직무 집행 중 고의나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손해를 입힌 경우 국가는 이를 배상해야 하는데,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교육부로부터 수능 업무를 위탁받은 공무수행자에 해당한다.
핵심 쟁점은 평가원의 과실 여부다. 법원은 국가 주관 시험에서 출제나 관리에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했을 때 배상 책임을 인정해왔다.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과 관련 고시에 따르면 시험 실시 기관은 편의제공의 기준을 마련해 '시험 공고와 함께' 게시해야 하지만, 평가원은 표기 방식이라는 중요한 변경 사항을 사전에 알리지 않았다.
"청해도를 높이기 위함"이라는 선의가 있었다 해도, 그 변경이 수험생의 기기에 미칠 기술적 영향(검색 불가 등)을 미리 검증하고 고지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주의의무 위반이다. 결국 예고 없는 형식 변경으로 인해 수험생들이 문제 해결에 실질적 장애를 겪었고, 이것이 성적 하락이라는 손해로 이어졌다면 국가배상 책임이 성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의도는 좋았지만...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 소지
교육부는 "전문가 의견을 반영했다"고 항변하지만, 법적으로 볼 때 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을 정당화할 수 없다.
형식상으로는 모든 시각장애 수험생에게 똑같은 파일을 줬으니 공정해 보일 수 있으나, 사전 고지 없는 변경은 수험생들이 기존에 훈련한 방식(스크린리더기 검색 기능 등)을 무력화시켰다. 이는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를 고려하지 않은 기준을 적용해 장애인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한 경우"인 간접차별에 해당할 소지가 다분하다.
또한 법에서 말하는 '정당한 편의'란 장애인이 장애 없는 사람과 동등하게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반 수단이다. 검색 기능이 마비되어 지문을 순차적으로 다 들어야 했다면, 비장애인 수험생과 동등한 조건에서 시험을 봤다고 하기 어렵다. 이는 법이 금지하는 '정당한 편의제공 거부'로 해석될 수 있다.
법원은 과거 영화 자막 미제공 사건 등에서도 장애인에게 동등한 수준의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 것을 차별로 판시한 바 있다(서울고등법원 2018나2001559 판결).
피해 학생들, 어떤 구제 받을 수 있나
그렇다면 당장 피해를 본 13명의 중증 시각장애 수험생들은 어떤 구제를 받을 수 있을까?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성적 무효 확인 소송'이나 '정답 결정 처분 취소 소송'을 통한 재시험 요구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 재시험이 인정되려면 이번 오류가 "시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정도로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는 매우 까다로운 기준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는 피해 문제에 대한 정답 처리나 성적 조정 요구가 그나마 가능성 있는 대안이다.
가장 유력한 수단은 민사소송이다. 수험생들은 국가(평가원)를 상대로 국가배상을 청구하거나,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대학 입학 기회 상실에 따른 재산상 손해뿐만 아니라, 시험 현장에서 겪은 극심한 혼란과 불안에 대한 위자료 청구가 가능하다.
소송이 부담스럽다면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시정 신청을 해 평가원에 시정 권고를 내리게 함으로써, 향후 재발 방지와 사과를 끌어내는 방법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