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노인 문제, 보편적 인권 차원으로 방향 전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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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노인 문제, 보편적 인권 차원으로 방향 전환해야

2019. 07. 31 13:58 작성
안세연 인턴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sy.ahn@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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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인 현실, 국제 인권선언 실현되기 어려워

문제해결 위한 정책이 아니라 권리실현 위한 정책 고안되어야

논문은 “노인을 스스로 복잡하고 다양한 현실에 적응하는 적극적 주체로 여기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 이미지 편집 : 안세연 기자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은 표류 도중 큰 소리로 독백한다.

“아이가 함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날 도와주고, 이걸 같이 볼 수 있을 텐데”


거대한 청새치를 낚은 노인의 절절한 독백은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방점이 ‘도움’이 아니라 ‘같이’에 찍힌 덕분에 노인 문제가 새로운 시각으로 환기되기 때문이다.


헤밍웨이의 노인은 지역사회에서 ‘함께’ 늙어가는 노인의 모습과도 겹친다. 노인 문제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는 국제사회의 흐름과도 통한다. 단순히 노인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권리에 기반한 적극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김주현 (당시) 서울대학교 법학박사 외 4인은 2011년 6월, 법과사회 이론학회 ‘법과 사회’ 40권에 게재한 ‘국제법상에 나타난 보편적 인권규정과 노인인권’에서 노인 문제를 보편적 인권 차원에서 조명한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각에서 노인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게 논문의 골자다. 논의는 국제법상의 인권 규정으로 국내의 노인 인권을 비추어보며 압축적으로 전개된다.

노인의 욕구 충족이 아닌 권리 개발 필요

논문은 기존의 노인 연구를 비판하며 시작한다. 기존의 연구가 고령화에 대한 ‘문제적 시각’으로부터 출발하였기 때문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노인을 정책 수행의 ‘대상’으로만 여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노인집단의 양적 증가와 노인의 내적 변화 경향에 조응하지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건강 상태의 개선, 교육 수준의 향상, 개인주의나 권리 의식 등의 변화에 뒤처진다는 뜻이다. 지나치게 느리고 경직된 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고령화 속도가 유례없이 빠른 것으로 보고되고 있는 가운데, 논문은 “노인을 스스로 복잡하고 다양한 현실에 적응하는 적극적 주체로 여기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더불어 “노인의 전반적 생활 세계 경험에 대한 독립적 자율적 권리의 실현이라는 적극적인 개념의 도입이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논문은 “노인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동적 정책에서 나아가 노인의 권리를 개발하고 노년기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보편적 인권 기준보다 미약한 노인 인권 기준

논문의 근거는 탄탄하다. 국제법 및 국제적 협정 조약상에서 노인 인권과 관련된 항목을 찾아 구분한다.


인권의 국제적 선언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세계인권선언>은 인권을 ‘인간이 되기 위한 권리, 인간이 가져야 할 당연한 권리’로 보고 있다. 이는 국가, 사회, 공동체가 그 권리를 실천하기 위한 생활 여건과 자원들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의미한다. 강조하자면, ‘배려’가 아니라 ‘의무’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인권에 대한 담론은 장애인, 여성, 아동, 이주민 등과 같이 특수집단의 인권상황에 대한 논의로 이루어져 왔다는 게 논문의 문제의식이다.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의 추세에 비하면 노인 인권에 대한 관심은 의외로 높지 않다는 것이다. 논문은 "국제법적 차원에서 보면, 노인 인권은 보편적 인권보다 확립이 미약한 상태"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1980년대부터는 국제적으로 노인 인권과 관련된 국제적 기준, 원칙, 또는 행동계획이 꾸준하게 발표됐다.


논문은 이러한 경향에 주목한다. 고령화의 추세에 맞물려 앞으로 노인 인권의 국제법적 관심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한다. 동시에, 노인 문제를 국제적 인권 선언과 빗대어 볼 근거를 획득한다.


유엔(UN)의 깃발 / 이미지 출처 : 셔터스톡

노인 인권 관련 국제 선언들

노인 인권은 아직 국제법적 차원에서 논의되지 못하고 있지만 국제적 선언과 원칙들은 연성규범(soft law)과 유사하다. 연성규범은 법률로 대표되는 경성규범(hard law)과 대비되는 용어다. 법적 구속력이 둘을 구분하는 핵심기준이다. 노인 인권의 원칙이 연성규범에 가까운 이유는 규범을 어겼을 때 공권력이 나서서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문은 향후 “노인 인권의 원칙이 구속력을 갖는 경성규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으며, 조약 체결이나 관습법규의 형태로 중요한 규범이 될 것이다”고 말한다. 노인 인권 관련 국제 선언에 주목해야 할 필요성이다. 실제로 UN을 중심으로, 많은 국제기구가 제기하는 원칙들이 국제법의 형성과 발전 및 집행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인을 위한 국제 선언들은 <국제인권장전>에서 나열하고 있는 권리를 재차 강조한다.


<비엔나국제행동강령>은 고령화에 대한 첫 번째 국제문서로서, 고령화에 대한 정책과 프로그램의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주목할 강령은 37항의 “정부는 경제생활에서 노인 참여를 촉진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노인을 위한 UN원칙>은 노인의 지위와 독립을 우선한다. 노인이 자력으로 적절한 의식주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하고, 노동을 통해 사회에 통합되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또한 젊은 세대와 지식과 기술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명시한다.


2002년의 <고령화에 대한 마드리드 국제행동계획>은 앞의 원칙들의 내용을 포괄하며, 노인의 개발권(right to development)을 특히 강조한다. 핵심은 노인이 일할 수 있게 하고, 그들의 완전한 참여를 증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적 노인 인권 선언의 국내 실현 어려움

위의 선언들이 인권의 국제법 조항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에 반해, 국내에서의 실현은 제한점이 나타난다. 문제는 국제 선언과 대비하여 드러나는 노인 인권의 낙후된 인식에서 비롯된다.


논문은 국내 정책의 비판에서 주저앉지 않고, 근본적인 문제에 도달한다. ▲ 소득 보장과 주거권 ▲ 노동 시장의 연령차별과 은퇴권 실현 ▲ 공적노인부양체계와 돌봄의 권리 ▲ 노인 집단의 통합과 참여 촉진 등으로 요약된다.


먼저, 소득과 주거권 문제이다. 현재 한국 사회 노인의 소등보장을 위한 대표적인 사회보장 제도는 노후소득보장제도인데, 논문은 해당 제도가 노인 계층을 위한 소득 보장의 충분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전 국민의 3.1%에 해당하는 기초생활수급자 중 노인 인구의 비율은 78%인데, 그 수급액은 1인당 30만원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국가가 노후 소득보장을 의무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게 논문의 주장이다.


노인주거정책 역시 국제 인권 선언들에 반한다. 담당부처의 이원화로 실효성이 미약하며, 공공임대주택 배분 또한 노인주거정책이 아니라 사회 취약계층 주거 정책으로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노동 시장의 연령차별이 문제점으로 꼽힌다. 노인은 일률적이고 비자발적인 퇴출을 강요받는데, 최근 연구는 1990년 이후 고령 근로자의 상대적 임금수준의 하락이 분명한 추세라고 경고한다. 원인은 고임금 장기근속자가 빠져나가고, 저임금 단순직 고령 근로자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의 취약한 부문에 노인이 내몰리면서, 차별이 공고화되는 결론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년제 역시 근본적인 모순을 안고 있다. 신규 채용 시에는 연령, 적성, 능력, 학력 등 다양한 기준이 고려되는데 퇴직 시에는 다른 기능적인 측면이 고려되지 않고, 연령만이 절대적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연령을 근거로 해고할 수 없도록 법제화되어 있는 서구와 달리, 시장의 구조적 제약이 노인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노인의 독립과 자아실현을 보장한 국제 선언들과는 극단에서 대치한다.


세 번째는, 공적노인부양체계와 돌봄의 권리다. 노인은 돌봄을 받을 당연한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존적 존재로 여겨진다. 때문에 노인은 돌봄을 자신의 권리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이 가족의 ‘짐’이 될 것을 걱정한다. 부양자에게 과도한 부담이 이어질 경우 노인 학대와 같은 사회문제를 초래하기도 한다.


노인 관련 국제 선언들은 지금의 ‘선 가족·후 국가’ 모델이 아니라 사회적 돌봄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의 부분적인 사회의 분담이 노년기 삶의 중요한 위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기 위해선 돌봄 노동자의 전문적 가치가 인정되어야 하며,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여 구체적인 표준을 제공하고 규제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수혜적인 태도가 아니라 노인이 돌봄의 권리를 인식할 수 있도록 선택권 확대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노인 집단의 통합과 참여 촉진이다. 젊음 중심의 문화는 노인 문화의 관심을 앗아가고, 비주류화한다. 이러한 배제와 편견은 분명한 연령 차별적 양상이다. 노인 개개인의 객관적 현실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으로 고정화된 이미지에서 비롯된 바가 크기 때문이다.


차별이 차이를 만든다. 나이 그 자체보다,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세대 간 소통을 가로막고 정책 차원에서 노인을 배제한다. 이에 <노인을 위한 UN원칙>은 노인의 사회참여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봉사활동, 사회 참여와 교육 등이 노인에게 긍정적 정체성을 심어주고, 소외를 극복할 수 있게 해준다는 이유다.


그러나 2006년부터 수행되어 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에 의하면 기본계획에 세대 간 연대, 노인의 사회발전 동참 등은 반영되지 못했다. 고령화가 사회적 위기로는 인식됐으나, 노인을 사회에 통합하려는 노력은 부족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노인 관련 법안, 배제가 아닌 통합으로 나아가야


지난 5월, 서울 시내 특급 호텔 피트니스 클럽 11곳 중 만 65세 이상 노인의 가입을 허가한 곳은 단 2곳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유는 모두 같았다. 호텔 측은 “안전사고가 생길 우려가 있다”고 했다.


서울시는 지난 3월부터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하는 70세 이상 노인에게 10만원이 충전된 교통카드를 지급하고 있다. 실제는 '자진 반납'이 아니라 10만원의 ‘보상 반납’에 가깝다.


덕분에 다시, 헤밍웨이의 노인이 떠오른다. 청새치를 낚은 헤밍웨이의 노인이 출항을 그만둘 시기는 노인이 정해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논문도 “노인의 고유한 경험과 인식에 민감하게 주목하면서 '배제'가 아닌 '통합'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의 노인 관련 법안이 보편적 인권 차원에서 법 규정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며 논문은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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