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남 변호사에게 '벤츠' 받은 검사, 법원은 '사랑의 징표'로 봤다
내연남 변호사에게 '벤츠' 받은 검사, 법원은 '사랑의 징표'로 봤다
변호사로부터 5천만 원대 금품 수수
대법원 "사랑의 선물, 대가성 없어" 무죄 확정

2011년 ‘벤츠 여검사’ 사건에서 법원은 금품이 청탁 대가가 아닌 ‘사랑의 선물’이라며 무죄를 확정했다. /셔터스톡
한 검사가 있었다. 그는 내연관계에 있던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로부터 벤츠 승용차와 명품 가방, 신용카드 등 5,591만 원 상당의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 그리고 그 변호사가 고소한 사건의 담당 검사에게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해달라"는 청탁을 넣었다.
이는 연인 간의 애정 표현이었을까, 아니면 검사의 지위를 이용한 추악한 거래였을까. 2011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벤츠 여검사' 사건은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됐다.
모든 비극의 시작, 얽히고설킨 '세 남녀'
사건의 중심에는 30대 여성 검사 이씨와, 그보다 16살 많은 40대 후반의 변호사 최씨가 있었다. 2007년, 변호사였던 이씨는 부장판사 출신 최 변호사와 내연관계를 시작했고, 그 관계는 이씨가 검사로 임용된 뒤에도 이어졌다.
최씨는 빚더미에 오른 자신의 고소 사건 처리가 지지부진하자, 검사가 된 연인에게 "담당 검사가 네 동기니 알아봐달라"며 도움을 요청했다. 이씨는 실제로 담당 검사에게 연락해 신속한 처리를 부탁했다.
13일 YTN 라디오 '이원화 변호사의 사건X파일'에서 로엘 법무법인 강은하 변호사가 재조명한 바에 따르면, 이 은밀한 거래가 세상에 드러난 것은 최 변호사의 또 다른 내연녀인 진정인의 '탄원서' 한 통 때문이었다. 자신 역시 사기 등 혐의로 재판을 받던 진정인은 최 변호사에게 수사 무마를 부탁하며 1,000만 원을 건넸지만, 구속될 위기에 처하자 관계가 틀어졌다.
이 과정에서 최 변호사의 복잡한 여자 관계를 알게 된 진정인은, 복수심에 최씨에게 들었던 모든 로비 의혹을 폭로하는 탄원서를 법조계 고위 인사들에게 보내버렸다. 한 편의 막장 드라마 같은 치정극이 대한민국 법조계를 뒤흔든 비위 사건으로 비화하는 순간이었다.
법원 "대가성 없는 사랑의 선물"
결국 세 사람 모두 재판에 넘겨졌다. 최 변호사와 진정인은 각각 집행유예와 실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던 이 검사의 재판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검찰은 당초 이 검사를 공무원의 지위를 이용해 뇌물을 받은 '알선수뢰' 혐의로 체포했지만, "검사 지위를 이용한 것은 아니다"라며 한 단계 낮은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하며 유죄를 인정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판결은 뒤집혔다. 재판부는 "두 사람이 내연관계였고, 금품 수수가 청탁 이전에 이뤄진 점 등을 고려할 때 사건 청탁의 '대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역시 "순수한 사랑의 증표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무죄를 확정했다. 법원은 결국 벤츠와 명품백을 '사건 청탁의 대가'가 아닌 '사랑의 선물'로 판단한 것이다.
'김영란법' 시대였다면 결과는 달랐다
판결 이후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과 함께 "사랑은 벤츠를 타고 온다"는 조롱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 사건이 만약 '김영란법'이 시행된 이후에 벌어졌다면 결과는 180도 달라졌을 것이다.
김영란법은 공직자가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더라도 1회 100만 원, 연간 3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으면 형사처벌하도록 규정한다. '사랑의 선물'이라는 변명 자체가 통하지 않는 것이다.
'벤츠 여검사' 사건은 우리 사회에 '공직자의 청렴'이라는 무거운 화두를 던졌고, 훗날 김영란법 제정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사랑과 뇌물의 경계, 법의 잣대는 시대에 따라 더욱 엄격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