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 교수 에세이 (27)] 시골 변호사들이 뭐 아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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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근 교수 에세이 (27)] 시골 변호사들이 뭐 아나요!

2021. 01. 07 15:20 작성
정형근 교수의 썸네일 이미지
hkjung@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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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개업을 한 지 얼마 후 첫 의뢰인을 만난 정형근 교수. 전남 여수에서 개인택시 운전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서울 서초동까지 오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셔터스톡

변호사 개업을 한 지 얼마 후에 의뢰인을 만났다. 전남 여수에서 개인택시 운전을 하던 분이 법률사무소에 찾아왔다. 여수에서 새벽차를 타고 왔다고 했다. 그분은 술 한잔하고 택시 운전을 하다가 가벼운 접촉사고가 발생하여 음주측정을 당했는데, 음주량(혈중알코올농도)이 면허취소 사유에 해당할 정도가 나왔다고 했다. 그 결과 자동차운전면허가 취소되었다고 하면서 재판을 하여 다시 운전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운전면허가 취소되어 택시 운전을 하지 못하면, 개인택시 영업도 못 하게 된다. 평생을 택시 운전만 생업으로 해오신 분이라 운전면허가 꼭 있어야 하는 사정이었다. 그래서 재판을 청구하여 전남지방경찰청장이 한 자동차 운전면허 취소처분을 취소 시켜 달라는 요청이었다.


처음으로 의뢰인과 상담을 하는 것이라 매우 긴장되었다. 긴장되니까 방금 들었던 말도 잘 기억이 안 되었다. 상대방의 눈을 마주 보면서 대화를 하니, 어색하기도 했다. 그래서 메모장을 꺼내어 대화 중에 오간 구체적인 날짜와 시간, 어떤 사실을 질문하고, 그 답변을 차분하게 적어나갔다. 그렇게 메모를 하면서 대화를 하니 여유도 생기고 평정심도 돌아왔다.


우선, 여수에서 어떻게 서울 서초동까지 오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여쭤보았다.


"순천이나 광주에도 변호사들이 많은데, 어떻게 서울까지 오셨나요?"


그러자 그분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시골 변호사들이 뭐 아나요!"


시골이 고향인 나는 기회만 되면, 지방으로 내려가서 지내고 싶었는데, 그곳에서 개업 중인 변호사를 저렇게 평가하는 것이 놀라웠다. 지방에 계신 분들을 시골 변호사로 간주하고, 신뢰하지 못하는 것에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나는 서울 서초동에 개업한 서울 변호사이지만, 생전 처음으로 사건 상담을 하고 있는 왕초보 변호사였다.


"그래! 나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 변호사야! 자신감을 갖자고!"


그렇게 생각하니 여유가 더 생겼다. 미소를 띠면서 자신 있게 대화를 이어갔다. 서울 변호사답게 능숙하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상담을 이끌어 갔다. 사법연수원 시절에 선배 변호사 법률사무소에서 여러 의뢰인들과 상담을 하였던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 아무튼 그 사건을 수임하기로 했다. 어차피 그분은 여수에서 서울로 변호사 선임하러 온 것이니까, 나를 신뢰하고 사건을 맡기기로 한 것이다.


준비해 둔 수임약정서를 꺼냈다. 워낙 어려운 법률 전문용어로 쓰인 처음에는 나도 수임약정서가 생소했다. 서랍 속에 준비해둔 약정서를 처음 사용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수임료로 400만원을 불렀다. 그런 금액을 제시한 것은 운전면허취소 사건은 행정심판청구도 해야 하고, 집행정지신청까지 해줘야 하는데, 그런 돈은 별도로 받지 않을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수임료의 많고 적음보다 나에게 첫 사건을 맡겨주신 것만도 고마운 마음이었다.


변호사가 얼마의 보수를 받아야 한다고 정해 놓은 법은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어쩌면 부르는 게 값이다. 변호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무사·변리사 등 전문자격사들도 마찬가지다. 그 무렵 변호사법에서는 변호사 보수를 대한변호사협회가 정하도록 했다. 그렇다고 다양한 사건의 수임료를 일률적으로 정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대한변협은 변호사보수표를 만들어서 변호사들에게 배포하고서, 그 표를 참고로 하여 적정한 보수를 결정하라고 했다.


그러다가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은 후에 변호사를 비롯한 전문자격사의 보수를 해당 자격사단체가 정할 수 있도록 하였던 법 규정을 아예 없에버렸다. 그 후부터 변호사 보수가 엄청 올랐다. 아무렇지도 않게 몇 천만원, 몇 억을 부르는 경우도 생겼다. 사건수임에 어려움을 겪는 변호사는 의뢰인의 눈치를 보아야 함은 물론이다.

아무튼 수임약정서에 도장을 찍는 데 성공했다. 그분은 지갑에서 여러 장의 수표 중에서 네 장을 꺼내주었다. 아마 많은 액수의 수임료를 준비해 왔던 거 같았다. 돈을 받은 후에 다시금 음주를 한 과정에 대하여 궁금한 것을 차분하게 물어보았다.


의뢰인은 개인택시 영업을 하는 날 기사식당에서 혼자 밥 먹기가 싫어서, 점심은 늘 집에서 먹는다고 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취직도 못 하고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는 아들이 용돈을 달라고 하여 마음이 상했다. 아들은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후 집에서 빈둥빈둥 놀고 지내고 있었다. 그런 아들이 그날따라 못나 보이고 기분이 상했다. 그 아들이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 홀로 택시 운전으로 지내왔다고 했다.


그날 점심을 하면서 맥주잔으로 인삼주를 한잔 들이켰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택시를 끌고 오후 일을 나갔다가, 접촉사고를 내는 바람에 운전면허 취소까지 당하게 되었다. 사법연수원에서는 행정소송 실무 강의는 들었지만, 사건기록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승소 판결을 받을 수 있는지는 이론적으로 알고 있었다. 차분하게 행정심판청구서를 작성하여 접수시킨 후에 '자동차운전면허취소처분 취소청구'에 관한 소장을 광주고등법원에 제출하였다. 그 당시 행정소송의 1심은 고등법원에서 관할하였다. 그리고 1998년 이전에는 모든 행정처분은 필수적으로 행정심판을 거치도록 하였다.


운전면허취소 재판 중에도 운전을 할 수 있도록 집행정지 신청도 하였다. 심문기일 통지서가 와서 광주고등법원으로 내려갔다. 변호사가 되어 수임한 첫 사건이 고향이 있는 곳이라 기분도 좋았다. 법정으로 바로 가지 않고 담당 판사실에 들렀다. 오후에 진행될 사건 대리인이라고 인사를 드렸다. 판사실 입구에 있는 직원이 '부장님 방금 들어오셨다'고 들어가 보라고 했다. 점심시간 직후라서 점잖고 인자한 모습의 부장판사님은 벗어두었던 윗저고리를 입으셨다. 그리고 슬리퍼를 구두로 바꿔 신은 다음에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내가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것과 의뢰인의 딱한 사정을 말씀드렸다. 좋은 대화가 이어져 내가 강진에서 중학교를 졸업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러자 부장님은 그곳 출신의 훌륭한 법조인들이 많다면서 여러분들의 이름을 거명하셨다. 재판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왔다. 며칠 후 집행정지신청이 기각되었다는 결정문이 도달했다. 재판장이 인자하신 인품으로 워낙 내 말을 경청한 후에 내려진 결정이라 응당 내려질 결정으로 받아들여졌다.


법을 위반한 사건은 이미 벌어진 기정사실이지만, 그 사건의 해석은 사람의 몫이다. 가슴 뭉클할 감동 어린 준비서면을 정성스럽게 작성하여 제출하였다. 의뢰인의 서울 변호사에 대한 신뢰를 내 잘못으로 훼손시키면 안 될 일이었다. 꼭 필요한 증인신문도 하였다. 증인으로 나온 분은 원고처럼 개인택시를 운전하는 분이었다. 수십년 동안 함께 운전을 하면서 속사정을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원고가 평소에 봉사활동도 많이 하여 경찰서장의 상장도 많이 받았고, 그동안 수십년 동안 아무런 사고도 없이 운전해 왔다는 점, 홀로 키우던 아들이 할 일 없이 지내면서 용돈을 달라는 말에 기분이 상하여 한잔했던 것이 면허취소까지 당하게 되었던 것을 증언했다. 피고 소송대리인으로 참석한 지방경찰청 공무원도 날카롭게 질문하여 증인을 곤혹스럽게 했다.


얼마 후에 재판이 종결되고, 판결선고 날짜가 잡혔다. 자동차운전면허취소 처분을 취소하라는 내용의 승소 판결이 선고되었다. 피고가 대법원에 상고하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상고 기각되었다. 최종적으로 승소한 것이다.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사정이 있었겠지만, 시대적 분위기도 한몫했다고 생각된다. 그 당시만 해도 음주운전의 참혹함과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덜했다. 그 무렵의 자료를 보면, 음주운전으로 운전면허를 취소당한 사람들이 청구한 재판에서 운전자가 겪게 되는 불이익이 가혹하다는 점을 많이 참작해 주고 있었다. 그래서 음주운전을 금지하여 얻게 되는 공익보다 운전면허 취소로 입게 될 개인의 불이익이 훨씬 중대하기 때문에 비례의 원칙에 위반하였다고 하면서, 운전면허취소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결하곤 했다.


아무튼 의뢰인은 약속한 성공보수를 주면서 한마디 했다.


“역시 서울 변호사가 이름값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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