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BL소설 표절했다" 3100만 원 소송…재판부 "장르적 코드는 아이디어일 뿐"
"내 BL소설 표절했다" 3100만 원 소송…재판부 "장르적 코드는 아이디어일 뿐"
'임신수 설정', '친부 찾는 구도' 두고 저작권 분쟁
법원 "장르적 코드는 저작권 보호 대상 아냐"

서울중앙지방법원 /연합뉴스
남성 동성애를 다루는 이른바 'BL(Boys Love)' 장르 소설에서 남성이 임신한다는 설정과 친부를 찾는 구도를 두고 저작권 분쟁이 벌어졌지만, 1심 법원은 표절로 인정하지 않았다.
해당 설정은 장르 내에서 흔히 쓰이는 아이디어일 뿐이고, 두 작품의 구체적인 서사 전개와 인물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과거 하룻밤 회상하며 친부 찾는 전개…3100만 원 손해배상 청구
웹소설 작가 A씨는 2009년 성인 대상 비공개 인터넷 커뮤니티에 남성 동성애와 임신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을 익명으로 올렸다.
해당 작품은 커뮤니티 내에서 베스트 게시물로 꼽히며 독자들의 지속적인 호응을 얻었다.
이후 A씨는 2016년 전자책으로 출간된 작가 B씨의 소설이 자신의 작품을 표절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냈다.
A씨는 두 작품이 '남성 주인공이 임신 진단을 받는 설정', '황족 직계혈통만이 남성을 임신시킬 수 있다는 조건', '과거의 하룻밤을 회상하며 세 명의 친부 후보를 두고 고민하는 줄거리' 등에서 포괄적인 유사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동성애 소설 작가인 B씨가 과거 같은 커뮤니티에서 활동해 자신의 작품을 접할 기회가 충분했다며, 저작권 침해 등에 따른 31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재판부 "등장인물 정체와 사건 전개 방식에 현저한 차이"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방법원 이광영 판사는 두 작품 사이에 존재하는 주요 설정과 전개 방식의 차이에 주목해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황족 직계혈통이 남성을 임신시킨다는 점을 제외하면 구체적인 표현과 내용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본 것이다.
이광영 판사는 도입부와 등장인물의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고 짚었다. A씨의 소설은 주인공이 궁정의사에게 임신 진단을 받은 뒤 살해하며 시작되지만, B씨의 소설은 친구인 의사의 시선으로 주인공을 관찰하며 전개됐다.
상대 주인공의 정체와 사건이 풀려가는 과정도 달랐다. A씨 소설의 상대 인물은 젊은 남자로 변신한 100세 대마법사였지만, B씨 소설에서는 29세 황태자로 묘사됐다.
친부를 찾는 과정 역시 A씨 소설이 단순 탐색 방식인 데 비해, B씨 소설은 주인공들이 연쇄살인범을 추리하는 과정이 주축을 이뤘다.
남성 임신 등 장르적 코드는 아이디어 영역…저작권 보호 안 돼
재판부는 A씨가 표절의 근거로 제시한 주요 설정들 역시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구체적 표현이 아니라 아이디어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남성이 임신을 하는 설정 자체는 BL 장르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코드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주인공이 성행위를 회상하는 장면이나 입덧을 하는 모습, 친부 후보를 정해두고 누구인지 밝혀나가는 내용 등은 기성의 아이디어 영역에 속해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이 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재판부는 일부 유사점만으로 두 소설 사이에 실질적 유사성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B씨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소송비용 역시 패소한 A씨가 전액 부담하도록 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