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00만원 잃었는데…은행 "보이스피싱 아님" 경찰 "공범 의심"
8400만원 잃었는데…은행 "보이스피싱 아님" 경찰 "공범 의심"
SNS로 만난 외국인에 속아 전 재산 날릴 판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SNS에서 만난 외국인의 달콤한 말에 속아 8400만원을 송금한 A씨. 은행은 'SNS를 통한 만남'이라는 이유로 보이스피싱 피해를 인정하지 않고, 수사기관은 되레 A씨의 계좌를 범죄에 사용된 '대포통장'으로 보고 사기방조 혐의를 의심하는 최악의 상황에 처했다.
피해 구제와 무혐의 입증, 두 개의 전쟁을 동시에 치러야 하는 A씨의 기막힌 사연을 법률 전문가들과 함께 추적했다.
가짜 은행 사이트에 8400만원…돌아온 건 은행의 '냉대'
평범한 일상을 살던 A씨에게 비극이 닥친 것은 2025년 6월 11일이다. SNS를 통해 알게 된 외국인은 정교하게 위조된 가짜 은행 이메일과 사이트 링크를 보내왔다.
'계좌 해제'를 위해 돈이 필요하다는 말에 속은 A씨는 사기범이 지시한 6개의 계좌로 무려 8,400만원을 나눠 송금했다. 뒤늦게 사기를 깨달은 A씨는 즉시 서울강남경찰서에 사건을 접수했고, 6개 계좌에 대한 지급정지 조치가 이뤄졌다.
하지만 A씨를 더 깊은 절망으로 밀어 넣은 것은 은행의 반응이었다. A씨가 초기 상담 과정에서 'SNS에서 알게 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는 이유만으로, 은행 측은 이 사건을 '보이스피싱이 아니다'라고 잠정 결론 내렸다. 이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른 신속한 피해 구제 절차에 큰 장애물로 작용하며 A씨의 애를 태우고 있다.
법조계 "명백한 피싱 범죄…SNS는 수단일 뿐"
법률 전문가들은 은행의 판단이 현실과 동떨어진 기계적 해석이라고 입을 모은다. 법무법인(유한) 한별 김전수 변호사는 "가짜 은행 이메일과 사이트 링크 유도, 인증코드 확인 요구, 다수의 계좌를 이용한 분산 송금, 심리적 압박을 통한 입금 유도 등은 보이스피싱 범죄의 대표적인 수법에 해당됩니다"라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보이스피싱은 전화를 넘어 SNS, 이메일 등 모든 전기통신수단을 이용한 사기를 포괄한다. 더든든 법률사무소 조수진 변호사 역시 "SNS를 통한 접촉이라고 해서 보이스피싱이 아닌 것은 절대 아닙니다"라고 강조하며, 범행의 핵심 수법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피해자가 피의자로? "사기방조죄, 실형 가능성도"
더 심각한 문제는 A씨가 피해자에서 순식간에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 법무법인 한바다의 박성영 변호사는 "계좌의 지급이 정지된 것으로 보아 현상황에서 질문자님은 피해자로서가 아니라 피의자로서,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하여 전자금융거래법위반 행위를 한 점에 대하여 수사를 받게 되실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짐작됩니다"라고 경고했다.
A씨의 계좌가 범죄 자금을 옮기는 '대포통장'으로 활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수사기관이 A씨의 '범죄 가담 고의성'을 의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법무법인 공명 김준성 변호사는 이 상황의 법적 쟁점을 명확히 했다. 그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하였다는 사실이 인정 된다면 상담자분에게 사기방조죄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라며 "따라서 이 부분과 관련하여 '범죄의 고의'가 없었음을 입증하는 것이 이 사건의 주된 쟁점이라고 보여집니다"라고 설명했다.
범죄에 가담할 의사가 전혀 없었음을 스스로 증명하지 못하면, 억울하게 형사 처벌은 물론 민사상 책임까지 져야 할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수 있다.
살 길은 '단호한 이의제기'와 '결백 입증'
벼랑 끝에 선 A씨가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첫걸음은 은행의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는 것이다. 법무법인 대한중앙 한병철 변호사는 "이의신청은 한 번 기각되면 재신청이 어려우므로 전문적인 대응이 매우 중요합니다"라며 초기 대응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 것을 주문했다.
금융감독원에 정식 민원을 제기하고, 사기범과의 대화 내역, 가짜 이메일, 피싱 사이트 캡처 등 명백한 증거를 첨부해 은행의 판단을 뒤집어야 한다.
동시에 경찰 수사 단계에서는 자신이 사기 범죄의 '공범'이 아닌 '피해자'임을 적극적으로 소명해야 한다. 결국 피해금 환급 절차를 원활히 진행하는 것과 사기방조 혐의를 벗는 것, 두 개의 전선에서 동시에 싸워야 하는 힘겨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복잡한 법적 쟁점이 얽힌 만큼, 초기부터 법률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