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드러난 신정동 연쇄살인 진실...DNA가 지목한 범인은 이미 '한 줌의 재'
20년 만에 드러난 신정동 연쇄살인 진실...DNA가 지목한 범인은 이미 '한 줌의 재'
'엽기토끼' 미스터리, 살인사건 진범은 특정됐지만 처벌 불가
2006년 납치미수 사건은 별개 범행 확인
영구 미제로 남나

2005년 서울 신정동 연쇄살인 사건 발생 당시 현장 모습. /연합뉴스
2005년 서울 양천구 신정동의 주택가. 쓰레기 무단투기장에 버려진 쌀포대 안에서 끈으로 묶인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5개월 뒤, 불과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 똑같은 수법으로 또 다른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른바 '신정동 연쇄살인 사건'이다.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이 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사건 발생 20년 만에 특정됐다. 하지만 법의 심판은 불가능하다. 범인은 이미 10년 전 사망했기 때문이다.
5일 YTN 라디오 '이원화 변호사의 사건X파일'에서는 장기 미제 사건이었던 신정동 연쇄살인 사건의 수사 결과와 법적 쟁점을 다뤘다.
쌀포대, 노끈, 쓰레기장... 20년 전 그날의 공포
사건의 시작은 2005년 6월이었다. 20대 여성 A씨가 실종 하루 만에 쓰레기 투기장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방송에 출연한 로엘 법무법인 박민희 변호사는 "범인은 시신을 쌀 포대에 넣어 노끈으로 칭칭 묶은 뒤 유기하는 엽기적인 수법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충격이 가시기도 전인 그해 11월, 40대 여성이 유사한 방식으로 유기된 채 발견됐다. 박 변호사는 "두 사건 모두 노끈으로 묶여 주거지 인근 쓰레기장에 유기됐고, 성폭행 후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는 등 동일범의 흔적이 역력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수사 기술로는 DNA나 지문 등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과학수사의 승리... "병원 조직 검체와 현장 DNA 일치"
영구 미제로 남을 뻔한 사건을 해결한 열쇠는 비약적으로 발전한 DNA 분석 기술이었다. 경찰은 장기 재수사를 통해 당시 사건 현장 인근 건물 관리인으로 일했던 A씨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결정적 증거는 A씨가 과거 병원 치료 과정에서 남긴 조직 검체였다. 박 변호사는 "A씨의 조직 검체 DNA를 재감정한 결과, 살인 사건 현장에서 나온 DNA와 완전히 일치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사실상 범인이 규명된 셈"이라고 밝혔다.
범인은 2015년 사망... "공소권 없음 종결, 배상도 불가능"
진범은 찾았지만, 죗값을 물을 수는 없다. 피의자 A씨가 이미 2015년에 사망해 화장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상 피의자가 사망하면 검사는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리고 수사를 종결한다. 박 변호사는 "형사절차뿐만 아니라 민사에서도 가해자가 이미 사망한 경우 유족들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설명했다. 20년을 기다린 유족들에게는 허탈한 결말일 수밖에 없다.
'엽기토끼' 납치미수 사건은 별개... "범행 당시 A씨는 감옥에"
이번 수사 결과에서 주목할 점은 대중에게 '엽기토끼 사건'으로 알려진 2006년 납치미수 사건과의 연관성이다. 당시 피해자가 "범인의 집 신발장에 엽기토끼 스티커가 있었다"고 진술해 두 건의 살인 사건과 동일범의 소행으로 추정되어 왔다.
그러나 박 변호사는 "2006년 납치미수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살인 사건 진범인 A씨는 이미 수감 중이었다"며 "물리적으로 동일인이 될 수 없다는 점이 명확해졌다"고 선을 그었다. 즉, '엽기토끼' 사건의 범인은 여전히 거리를 활보하고 있으며,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조차 불가능한 상태로 남게 됐다.
"미제사건 전담팀 정규직화·DNA 데이터베이스 확대 필요"
비록 처벌은 못 했지만, 이번 사건은 '완전범죄는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2001년 대전 국민은행 강도 살인사건, 화성 연쇄살인 사건 등도 과학수사의 힘으로 수십 년 만에 진실이 밝혀진 사례다.
박 변호사는 미제 사건 해결을 위한 제도적 보완을 강조했다. 그는 "임시 조직인 경찰청 미제사건 전담팀을 정규 조직으로 격상하고, DNA 채취 대상 범죄를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한 "살인죄 외에 강간치상 등 다른 강력범죄에 대해서도 과학적 증거가 있다면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