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계시로 주식투자"…목사 사모 말에 49억 빨려 들어갔다
"하나님의 계시로 주식투자"…목사 사모 말에 49억 빨려 들어갔다
신앙심을 악용한 가스라이팅 사기
변호사 "피해 회복 어려울 수도"

“하나님이 준 차트”라 속이며 49억을 가로챈 40대 여성이 사기 및 유사수신 혐의로 수사받고 있다. /셔터스톡
"하나님이 주신 차트로 매매하니 해외 선물 고수가 됐습니다."
전직 목사의 아내였던 40대 여성 A씨는 자신을 '하나님의 일꾼'이라 소개하며 투자자들을 끌어모았다. 신의 계시와 환상으로 만들었다는 투자 프로그램은 피해자들의 간절한 마음을 파고드는 교묘한 덫이었다.
A씨의 터무니없는 말에 6명의 피해자가 잃은 돈은 총 49억에 달한다. 종교를 내세운 심리적 조작, 이른바 가스라이팅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치밀했다.
"귀신 쫓으려면 투자하라" 빚까지 내게 한 사기 수법
A씨의 범행 수법은 피해자들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방식이었다. 전 남편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한 피해자에겐 "집에 귀신이 있어 안 좋은 일이 생긴다"며 "나한테 투자해야 남편의 폭행을 멈출 수 있다"고 속여 22억을 뜯어냈다. 피해자 중에는 카드론은 물론 제2, 제3금융권에서 대출까지 받아 돈을 건넨 경우도 있었다.
로엘 법무법인 안수진 변호사는 18일 YTN 라디오 '이원화 변호사의 사건X파일'에서 "사기 혐의가 인정되면 가해자에게 민사상 구상권(대신 갚은 돈을 청구할 권리)을 행사할 수는 있지만, 이미 재산을 빼돌렸다면 실질적인 회수는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A씨는 범행이 들통날까 두려워 피해자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지 못하도록 이간질을 일삼았다. 일부 피해자가 사기 사실을 알리자, 오히려 "사실을 적시해도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역으로 고소하며 압박하기도 했다.
심지어 서울의 고급 호텔에 장기 투숙하고 외제차를 몰며 부를 과시했다. 경기도 고양시에는 허위 투자 회사를 차려 번듯한 사무실까지 꾸몄다. 안 변호사는 "실제로 큰 수익을 내고 있다는 착시 효과를 유발하는 범행 수단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200억 뜯은 목사도 있었다…'종교 사기' 처벌 어려운 이유
A씨 사건 이전에도 비슷한 범죄는 있었다. 2017년, "투자는 헌금"이라며 150여 명에게서 200억을 가로챈 목사 일당이 범죄단체조직죄 등으로 구속된 바 있다. 이 사건의 주범인 목사는 1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종교나 무속 행위를 빌미로 한 사기는 법정에서 기망 행위를 인정받기 까다롭다. 안 변호사는 "어디까지가 신앙이고 어디서부터 사기인지 경계가 모호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무속 행위 대가가 전통 관습이나 종교 행위로서 허용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났다면 사기죄에 해당한다"는 입장이지만, 그 한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경찰은 A씨에 대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 및 유사수신행위 혐의로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재판에 넘겨진다면, 검찰은 A씨의 언행이 "단순한 신앙의 표현이 아니라 명백한 기망 행위였다는 점을 입증하는 데 집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법무부는 지난 2월 가스라이팅과 같은 부당한 간섭에 의한 의사 표시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는 민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종교적 우위를 이용해 헌금이나 투자를 강요하는 행위로부터 피해자들을 구제할 길이 더 넓어질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