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드럼통 살인사건, '미필적 고의' 인정돼 최고 무기징역
태국 드럼통 살인사건, '미필적 고의' 인정돼 최고 무기징역
완전범죄 꿈꾸며 서로 책임 떠넘긴 일당
법원이 '강도살인' 확정한 결정적 법리

파타야 한인 살인사건 마지막 공범 법원 출석 /연합뉴스
지난해 5월, 태국 파타야의 한 저수지에서 끔찍한 것이 떠올랐다. 검은색 대형 플라스틱 드럼통. 그 안에는 시멘트와 뒤섞인 채 훼손된 시신 한 구가 들어 있었다. 피해자는 30대 한국인 관광객. 즐거운 마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났던 그는 어쩌다 이토록 참혹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을까.
더욱 충격적인 것은 범인들의 태도였다. 잔혹하게 사람을 죽이고 유기한 것도 모자라, 법정에서는 "죽일 생각은 없었다"며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대법원은 이들의 변명을 단칼에 잘랐다. 사건의 전말과 법원이 이들에게 중형을 확정할 수밖에 없었던 법리적 이유를 파헤쳐본다.
여행자 노린 '죽음의 덫', 그리고 잔혹한 수장
비극은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 시작됐다. A(27), B(28), C(40)씨 일당은 태국에서 보이스피싱 콜센터나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며 생계를 꾸리던 이들이었다. 돈이 궁해진 이들은 '손쉬운 먹잇감'을 찾기 시작했고, 여행 정보를 공유하는 척하며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접근했다.
2024년 5월 3일, 이들은 피해자를 파타야의 한 장소로 유인했다. "술 한잔하자"는 가벼운 제안은 치밀한 덫이었다. 이들은 미리 준비한 수면제를 술에 타 피해자에게 먹였다. 의식이 흐려진 피해자를 차에 태운 순간, 돌변한 일당의 무자비한 폭행이 시작됐다.
차량 안에서 목이 졸려 숨진 피해자. 하지만 이들의 악행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완전범죄를 꿈꾼 일당은 시신의 신원을 감추기 위해 피해자의 열 손가락을 모두 절단했다. 그것도 모자라 시신을 대형 고무통에 구겨 넣고 시멘트를 부어 굳힌 뒤, 인근 저수지에 던져버렸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짓이라고는 믿기 힘든 엽기적이고 잔혹한 시체 은닉이었다.
"아들 잘 있다" 부모까지 속인 인면수심
범행 직후 이들의 행각은 더욱 대담해졌다. 피해자가 이미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휴대전화로 계좌에 접속해 돈을 빼냈다. 심지어 피해자의 부모에게 연락해 "아들이 마약을 물속에 버려 손해를 입혔다. 돈을 보내라"며 협박까지 서슴지 않았다. 아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속여 몸값을 뜯어내려 한 것이다.
수사망이 좁혀오자 이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국내로 도주하거나 인근 국가로 밀항했지만, 결국 차례로 검거되어 법의 심판대에 섰다.
"강도만 하려 했다"? 법원이 '살인 고의'를 인정한 결정적 근거
재판 과정에서 이들 일당은 약속이나 한 듯 '살인의 고의'를 부인했다. "돈을 뺏으려고(강도) 했을 뿐, 죽일 생각은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서로가 주범이라며 "나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책임을 회피했다.

이들이 노린 것은 형량 줄이기다. 단순 '강도치사(강도 짓을 하다 실수로 사람을 죽임)'와 '강도살인(강도 짓을 하며 고의로 죽임)'은 법정형에서 하늘과 땅 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2심에 이어 대법원은 이들의 주장을 일축하고 강도살인죄를 확정했다.
1. '미필적 고의'의 인정: 죽을 수도 있음을 알았다
법원은 이들이 처음부터 확정적으로 "죽이자"고 모의하지 않았더라도, 최소한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살인의 고의는 반드시 살해 목적이 있어야만 인정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행위로 인해 타인이 사망할 가능성이나 위험을 예견했다면 고의가 인정된다(대법원 2004. 6. 24. 선고 2002도995 판결 등).
재판부는 ▲피해자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저항 불능 상태로 만든 점 ▲차량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목을 조르는 등 치명적인 폭력을 행사한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이대로라면 피해자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들이 충분히 인지했다고 봤다. 이를 용인하고 범행을 계속했다면 법적으로는 '살인범'과 다를 바 없다.
2. 시신 훼손과 유기: 살인 고의를 뒷받침하는 정황
범행 후의 태도 역시 살인의 고의를 입증하는 강력한 간접증거가 됐다. 만약 정말 실수로 사람을 죽였다면 당황하여 도주하거나 구호 조치를 고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들은 마치 준비된 것처럼 시신을 훼손하고, 시멘트와 고무통을 이용해 치밀하게 은닉했다. 이는 피해자의 사망을 전제로 한 행동이며, 범행 발각을 막으려는 확고한 의지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법원은 이러한 사후 행위가 살인의 고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판단했다.
3. "쟤가 했어요" 통하지 않는 '공모공동정범'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긴 전략도 통하지 않았다. 형법상 '공모공동정범' 법리에 따르면, 2인 이상이 범죄를 공모하고 그중 한 명이 실행에 옮겼다면, 현장에서 직접 손을 쓰지 않은 공범도 똑같은 책임을 진다.
설령 한 명이 주도적으로 목을 졸랐더라도, 나머지 일당이 이를 말리지 않고 망을 보거나 운전을 하며 범행을 도왔다면, 그들 역시 '기능적 행위지배'를 한 것으로 간주해 모두 강도살인의 죄책을 져야 한다. 법원은 이들이 납치부터 유기, 금품 갈취 시도까지 한 팀으로 움직인 점을 들어 전원에게 살인죄를 적용했다.
4. 죗값의 무게: 무기징역과 징역 30년
대법원 2부(주심 박영재 대법관)는 강도살인 및 시체손괴·은닉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들에게 원심대로 징역 25년(A씨), 무기징역(B씨), 징역 30년(C씨)을 각각 확정했다.
"양형이 너무 무겁다"는 피고인들의 항변에 대법원은 "범행 수법이 잔혹하고, 피해자가 겪었을 고통이 극심하며, 유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며 기각했다. 완전범죄를 꿈꾸며 타국에서 자국민을 잔혹하게 살해한 이들에게 법이 내린 준엄한 심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