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무 책임 없습니다" 서약서 받아도, 법은 책임을 지게합니다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우리는 아무 책임 없습니다" 서약서 받아도, 법은 책임을 지게합니다

2020. 01. 20 20:37 작성
박선우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sw.park@lawtalknews.co.kr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네팔 히말라야 눈사태로 한국인 4명 실종⋯트레킹 전 서약서 작성

현지 프로그램 체험 시 작성하게 하는 일방적인 서약서

'책임 회피' 내용 서약서 쓰면, 정말 여행사는 아무 책임 안 져도 될까?

"불의의 사고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다." 여행객들에게 유의사항을 안내하며 서명하게 했다면, 여행사는 아무 책임 없을까? /게티이미지코리아

"모든 위험 부담을 떠안는 데 동의한다."

"불의의 사고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다."

"모든 참여자들은 여행 전 권리 포기 각서에 서명해야 한다."


현지 체험 프로그램들이 여행객에게 유의 사항을 안내하며 서명하게 하는 서약서의 내용이다.


각각 다른 프로그램에서 정한 사항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사고가 나도 업체 측에서 책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도 괜찮은 여행객들만 프로그램에 참가하라는 뜻이다.


이 서류는 주로 스쿠버 다이빙, 암벽 등반 등의 체험 프로그램을 이용할 때 작성하곤 한다. 지난 17일(현지시각), 산사태로 인해 한국인 교사 4명이 실종된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의 사고 구간에서도 '사고가 나도 마을에서 책임지지 않는다'는 서약서를 작성해야만 한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이 서약서의 내용대로 모든 위험을 떠안기로 했으니,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는 걸까? 서약서의 법적 효력은 어디까지일지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했다.


변호사가 지적하는 '서약서'의 문제점


①내용 미리 알지 못한 채 서명, 계약이 아니라 '약관'


법률사무소 덕률의 이광웅 변호사는 이와 같은 '서약서'는 "효력이 없다"고 말한다. 그 내용이 계약을 맺은 상대방(여행객)에게 과도하게 불리하다는 이유에서다.


이 변호사는 "(서약을 하는 과정에서) 여행사는 여행객에게 서약서의 내용을 결정해서 작성해오라고 말하지 않는다"라며 "여행사가 서약서의 내용을 알려주고, 여기에 여행객이 자필로 서명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서약서의 내용이 사전에 정해져 있다고 해석이 가능할 것이고, 만약 그렇다면 약관법의 규율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여행객은 미리 여행사나 업체에서 정한 내용의 서약서를 받는다. 여행객은 단지 이를 읽고 '동의'만 선택할 수 있지 그 내용에 대해선 왈가왈부할 수 없다. 하지만 여행사 측에서 모든 내용을 정해주며 여행객은 서명만 하는 것은 쌍방계약이라기보다 '약관'에 가깝다는 말이다.


약관법이 적용되면 소비자는 보다 유리한 위치에서 법적 책임을 논할 수 있다. 약관법 자체가 업체의 우월한 지위를 전제로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법률사무소 덕률'의 이광웅 변호사. /로톡DB


②상호 협의 없는 일방적인 책임 부과, 계약 자체 '무효'


모든 사고의 책임은 "여행객에게 있다"고 말하는 획일적인 서약서 내용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이광웅 변호사는 "손해가 발생된 전후사정과 귀책 사유를 전혀 따지지 않고 일방(여행객)에게 모든 책임을 귀속시키겠다라는 획일적인 규율은 문제"라며 "원래 계약이라는 것은 당사자 간 합의로 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는 여행객의 잘못이 아니더라도 발생할 수 있다. 이용 시설의 문제 등 사고는 여러 가지 이유로 발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고의 책임을 여행사가 부담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고의 인과관계나 주변 사정을 검토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여행객에게 모든 책임을 부과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즉, 계약을 맺는 여행객과 여행사가 그 내용을 조정해 결정해야 한다. 만약 이런 과정 없이 모든 책임을 여행객에게 전가하는 계약은 불합리하며 그 내용은 무효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획일적인 규율은 여행사 측의 무책임을 키울 수 있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판사 출신의 홍지욱 변호사는 "만일 여행사 측이 자신들의 잘못이 있음에도 아무런 손해배상을 부담하지 않는다고 하면 이들은 도덕적 해이에 빠져 안전관리의무 이행을 소홀히 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반사회질서적이라고 규정해 각서의 내용을 무효로 하는 등의 각종 제한을 가하고 있다"고 했다.


여행객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여행사

여행객은 가이드의 인솔 아래 여행사가 정해주는 여행 일정과 구성 그대로 따라야 한다. 하지만 여행사가 이런 재량은 누리면서 정작 여행객이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땐 나 몰라라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동의하에서 여행사 측은 여행객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이광웅 변호사는 "여행사 측은 여행객이 사전에 정한 프로그램을 이용함에 있어서 이용객에게 손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며 "사고의 귀책 사유를 함부로 여행객에게 옮기는 서약서 내용은 사회상규에 위반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무조건 여행사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여행객이 여행 도중에 여행 시간을 안 지키거나 제공된 서비스 외에 추가 서비스를 요구하는 불합리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라면 여행객에게도 책임이 있다.


또한, 천재지변의 경우도 여행사에 책임을 묻기 어려울 수 있다. 이 변호사는 "천재지변에 대해선 가이드 등 여행사 측이 잘못했거나 여행사에서 준비를 소홀히 했다고 주장하기 어렵다"며 "여행객이 여행사에 별도로 책임을 추궁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나만 모르는 일상 법률 상식, 매일 아침 배달해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