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위서 상대 학부모에 "정신병" 발언했다가…형사는 무죄, 민사는 500만원 토해냈다
학폭위서 상대 학부모에 "정신병" 발언했다가…형사는 무죄, 민사는 500만원 토해냈다
학부모 A씨, 상대 엄마에 "정신병원 다닌다" 발언
형사재판 "고의·공연성 없다" 무죄 확정
민사재판 "지속적 괴롭힘 있었다" 500만원 배상 명령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에서 상대 학부모를 향해 "정신병 있다"고 말했던 A씨. 형사재판에선 무죄를 받았지만, 민사재판에선 500만원을 물어내야 했다. 같은 발언을 두고 법원의 판단이 정반대로 갈렸다.
대전지방법원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4년여간 진행한 이 사건은, '형사 무죄'와 '민사 유책'이 어떻게 동시에 성립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갈등의 시작, 사라진 목걸이
사건은 2017년 5월부터 시작됐다. B씨가 딸을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 전학시켰다. 두 달 뒤인 7월, A씨 역시 아들을 같은 학교로 전학시켰다.
2017년 7월, A씨의 집에 문제가 생겼다. B씨의 딸이 A씨 집에 놀러왔다 간 후, A씨 집 안방 서랍에 있던 목걸이가 없어진 것이다. A씨는 카카오톡 사진에서 B씨 딸의 외할머니가 목에 걸고 있는 목걸이를 발견했다. A씨가 잃어버린 목걸이와 비슷해 보였다.
A씨는 즉시 경찰에 B씨의 딸을 절도 혐의로 신고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디지털 사진 감정을 의뢰했다. 2017년 9월, 국과수는 "동일 여부를 판단하기 곤란하다"는 결과를 냈다. 경찰은 2017년 10월 "B씨의 딸을 범인으로 단정할 수 없다"며 사건을 미제로 분류했다.
그러나 두 학부모의 갈등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학폭위에서 터진 "정신병" 발언
목걸이 사건 이후 A씨의 아들과 B씨의 딸 사이에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A씨의 아들이 B씨의 딸에게 "너는 커서 우리 엄마에게 100만원을 줘야 하며 우리 엄마를 모욕했어"라고 말하고 욕설을 하는 등 학교폭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2018년 2월 14일 오후 2시, 초등학교에서 학폭위가 열렸다. 'A씨의 아들이 B씨의 딸에게 학교폭력을 행사한 사건'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학교폭력위원 교사 2명, 학부모 위원 4명, 담당 경찰관 1명, 담당교사 등 7명이 참석했다.
A씨는 가해자 측 학부모 자격으로 출석했다. B씨와 분리된 상태에서 위원들의 질문에 답하던 중, A씨는 이렇게 말했다.
> "(B씨가) 정신병이 있다. 현재 약을 먹고 정신병원에 다니고 있다고 하였다."
> "(B씨를 지칭하며) 정신병이 있어서 애들을 온전하게 양육하지 못해."
이 발언을 전해 들은 B씨는 2018년 7월, A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형사재판 "고의 없고, 공연성도 불충족"…무죄
검찰은 A씨를 명예훼손으로 약식기소했고, 법원은 2018년 9월 벌금 200만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A씨는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대전지방법원은 2019년 2월 8일,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2018고정943). 법원이 무죄를 선언한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 명예훼손의 고의가 인정되지 않는다. 법원은 "B씨가 실제로 A씨에게 '불면증 약을 먹고 있다', '우울증이 조금 있다'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B씨는 실제로 우울증으로 정신과에서 통원치료를 받으며 약물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법원은 "A씨가 B씨 측과 분쟁 경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위와 같은 이야기를 언급하게 된 것"이라며 "A씨에게 B씨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침해할 의사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둘째, 공연성이 충족되지 않는다. 법원은 "학폭위 위원들은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21조에 따라 비밀 또는 자료를 누설하여서는 아니 되는 의무를 부담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비록 당시 출석 인원이 7명이었다 하더라도 A씨가 다수를 상대로 공연히 사실을 적시했다거나 전파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며 "A씨에게 이러한 인식이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셋째,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다. 법원은 "A씨는 학폭위 회의에서 위원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공소사실 기재와 같은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라고 봤다.
검사가 항소했지만, 2심 역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A씨의 무죄가 확정된 것이다.
민사재판 "학폭위 발언 외 지속적 괴롭힘"…500만원 배상
형사재판에서 승리한 A씨는 민사재판도 제기했다. B씨를 상대로 목걸이 손해배상 5000만원을 청구했다. B씨 역시 A씨를 상대로 정신적 피해 1500만원을 반소로 청구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대전지방법원은 2021년 2월 10일, A씨의 목걸이 손해배상은 기각했다. 대신 B씨의 반소청구를 일부 인용해, A씨에게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목걸이 청구는 왜 기각됐나
법원은 목걸이 사건에 대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2차례 감정 결과에도 불구하고 B씨의 어머니가 착용한 목걸이가 A씨의 목걸이와 동일한지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A씨는 B씨를 절도교사, 장물취득으로 다시 고소했지만, 2019년 12월 검찰은 "정범인 B씨 딸의 절도 행위 자체를 인정할 자료가 없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법원은 "A씨의 주장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500만원 배상 명령, 이유는
법원은 A씨의 학폭위 발언 외에도 그 이후의 행동을 문제 삼았다. 법원이 인정한 A씨의 행위는 다음과 같다.
A씨는 B씨에게 지속적으로 모욕적인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 "자식이 훔쳐 온 목걸이 차고 카톡에나 올리는 주제에", "남편이 바람 피우고 이혼당하는 주제에", "니 마티즈 팔아도 내 목걸이 귀걸이도 못 사", "술집도 나갔다면서요" 등이다.
심지어 행정관청에 B씨의 허위 전입신고 의심 민원까지 제기했지만, 현장조사 결과 B씨 가족이 실제 거주 중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B씨는 "더 이상 우리 가족 괴롭히지 마세요", "우린 30만원짜리 목걸이 가져간 적도 없으니 제발 그만하세요", "우리에게 관심 끄고 목걸이 진범 잡아요 제발", "그만 해요 자식들이 보고 있잖아요" 등의 답장을 보냈다.

법원은 "A씨가 학폭위에서 7명의 위원들이 있는 가운데 B씨가 정신병자라는 취지의 과장된 발언을 했다"며 "일반인들의 사회통념상 의사능력을 상실한 정신이상자 같은 정신병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학폭위원들이 비밀유지의무를 부담하도록 되어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이후 B씨가 학부모를 통하여 학폭위에서 있었던 A씨의 정신병 발언을 전해 듣고 학폭위 회의록도 보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위와 같은 A씨의 행위들로 인하여 B씨가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임은 추인된다"며 위자료를 500만원으로 정했다.
A씨가 항소했지만, 2심 역시 "1심 판결이 정당하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A씨의 500만원 배상 의무는 확정됐다.
"형사 무죄가 민사 면죄부는 아니다"
민사 2심 판결문은 형사 무죄 판결과 민사 배상 책임의 관계를 명확히 했다.
법원은 "형사상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침해행위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하는지 여부는 형사책임과 별개의 관점에서 검토하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목걸이 분실에 관하여 A씨가 B씨 측에게 의심을 품은 것 자체는 수긍할 여지가 있으나, 그러한 사정 및 A씨의 당시 처지를 감안하더라도 1심 판결에서 설시한 A씨의 일련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어 보인다"고 판단했다.
결국 A씨는 형사에선 이겼지만, 민사에선 졌다. B씨는 형사고소에선 실패했지만, 민사에선 500만원을 받아냈다. 5년간의 법정 싸움 끝에 양측 모두 '반쪽 승리'를 거둔 것이다.
[참고]
대전지방법원 2020가단118411(본소),2020가단118428(반소) 판결문 (2021. 2. 10. 선고)
대전지방법원 2021나104526 판결문 (2023. 6. 16. 선고)
대전지방법원 2018고정943 판결문 (2019. 2. 8. 선고)
대전지방법원 2019노519 판결문 (2019. 10. 10. 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