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기 좀 빌려주세요"해도 강 건너 불구경⋯한국은 문제 없음, 프랑스는 문제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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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기 좀 빌려주세요"해도 강 건너 불구경⋯한국은 문제 없음, 프랑스는 문제 있음

2020. 11. 06 20:45 작성2020. 11. 06 20:48 수정
백승은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bse@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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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소유의 소화기 빌려주지 않은 것은 문제 삼기 어렵지만⋯

지난 3일, 대전의 한 버스정류장 뒤편 화단에서 벌어진 화재는 자칫 큰 피해를 줄 수 있었다. 소화기로 진압하려 했지만, 이를 발견한 최초 신고자는 결국 근처 빗자루를 집어 들고 불길을 껐다. 이유가 뭐였을까. /유튜브 '벌레' 채널 캡처

"저희 소화기를 가져가시면 저희는 또 소화기를 구매해야 하는데⋯."


두 번째 거절이었다. 이 말을 들은 A씨는 긴 한숨을 내뱉고, 결국 소화기 빌리는 걸 포기했다. 대신 근처 빗자루를 집어 들고 불길을 내리쳤다.


지난 3일, 대전의 한 버스정류장 뒤편 화단에서 벌어진 화재는 자칫 큰 피해를 줄 수 있었다. 인근에 상가 건물이 많았던 데다 바람이 맹렬했기 때문에 자칫 큰불로 번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 뻔히 보면서도 바로 옆 상가 PC방⋅슈퍼 주인은 모두 소화기를 빌려주지 않았다. 소화기가 아깝다는 이유에서였다.


"눈앞의 불보다 내 소화기 3만원이 아까운 현실이 아쉬웠다"고 한 A씨. 혹시 법대로 하면, 상가 주인들은 "소화기를 빌려달라"는 요청에 응해야 할 의무를 어긴 게 아닐까?


'화재 신고 의무' 어긴 것으로 보이지만⋯처벌 규정은 없어

인근 상인들이 '소화기를 빌려주지 않은 행동'은 일단 형사적으로 문제 삼기 어렵다. 자기 소유의 물건을 빌려주지 않았다고 처벌하는 법 조항은 없다. 그것이 소화기더라도 마찬가지다.


'법률사무소 가온길'의 장진우 변호사. / 로톡DB
'법률사무소 가온길'의 장진우 변호사. / 로톡DB

대신, 불이 난 걸 알고도 '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문제 삼을 수 있다. 우리 법은 누구라도 불이 난 현장을 목격했다면 곧장 소방기관에 신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소방기본법 제19조에서 말하는 '화재 신고 의무'다.


법률사무소 가온길의 장진우 변호사는 "해당 조항은 어떻게 보면 '도덕적 의무'를 법률 조항에 넣은 것"이라며 "가게 주인은 불이 난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음에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기에 법 위반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가게 주인을 처벌할 수는 없다"고 장 변호사는 말했다. 소방기본법 제19조를 어겼을 때의 처벌 조항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처벌조항이 없는 의무조항인 셈이다.


소방기본법은 '특별한 책임이 있는 사람'이 화재 신고 의무를 지키지 않았을 때, 처벌하도록 규정한다. 대표적으로 건물 관리 책임이 있는 '관계인'이 그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를 신고하지 않았을 경우다. 관련 법규에 따라 최대 1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이번 사안은 어떨까. 화재가 발생한 화단 인근 상인들은 '관계인'이라 볼 수 없다. 판례상 '관계인'은 "소방대상물을 지배하면서 소방대상물을 보존, 관리할 권한과 책임이 있는 자로 한정해서 해석해야" 하는데(대전지법 2006고정1527), 인근 상인들에게 그런 권한⋅책임이 있다고 볼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소화기 주지 않아 불이 번졌다면⋯손해배상 책임 물을 수 있을까

사고가 벌어졌을 때 화재 현장에서는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다. 뛰어서 1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상가도 즐비했다. 만약 불이 상가에 옮겨붙었다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소화기를 빌려주지 않은 가게 주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변호사들의 의견은 갈렸다. 익명을 요구한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소화기 대여를 거절한) 상인의 행위로 더 큰 피해가 발생했다면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소화기를 빌려주지 않았고, 그 결과 피해가 더욱 커진 것에 대한 '인과관계'가 입증된다면 상인들의 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는 취지였다.


이에 대해 장진우 변호사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가게 주인들이 직접 불을 지르는 등 직접적인 피해를 발생시킨 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장 변호사는 "'가게 주인들에게 화재 진압 의무가 있었다'와 같은 사실이 인정되지 않는 한 별도의 민사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변호사가 말하는 해결책은? 착한 사마리아인 법

다행히 큰 피해 없이 마무리된 이번 사건. 하지만 다음에도 이렇게 '운'이 좋으리란 법은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장 변호사는 "국내는 아직 관련된 법이 없지만, 프랑스의 '착한 사마리아인 법'을 참고해 볼 수 있다"라며 "개인이 도덕성을 지킬 것을 법제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착한 사마리아인 법은 프랑스 형법 제63조 제2항에 규정돼 있다. 이 법은 "비록 자신에게는 위험이 없더라도, 위험에 처한 사람을 보고 구조하지 않는다면 처벌 대상이 된다"는 내용이다. 법을 어긴 사람은 최대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도 있다.


만약 비슷한 일이 프랑스에서 일어났다면, "소화기를 빌려달라"는 요청을 거절한 가게 주인은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었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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