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재판선 '유죄 인정', 민사재판선 "쌍방과실"… 돈 앞에서 말 바꾼 가해자
형사재판선 '유죄 인정', 민사재판선 "쌍방과실"… 돈 앞에서 말 바꾼 가해자
형사 판결문만 믿고 있어도 될까?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형사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가해자가 민사소송에서 말을 바꾸며 책임을 부인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민사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 중인 A씨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간다. A씨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가해자 B씨는 이미 형사재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이라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돈 문제가 걸린 민사소송에 들어서자 B씨의 태도는 180도 돌변했다. 형사재판 기록을 정면으로 뒤집으며 "사건은 쌍방 과실"이었다고 책임을 떠넘기기 시작했다.
A씨는 "법원 판결문까지 있는데도 없는 사실을 꾸며내는 가해자의 뻔뻔한 거짓말을 재판부가 믿어줄까 두렵다"며 "이런 공허한 메아리 같은 주장까지 일일이 반박해야 하는 현실이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형사 판결문은 민사 재판의 '절대 반지'인가?
가장 큰 쟁점은 형사재판의 유죄 판결이 민사재판에서 어느 정도의 효력을 갖느냐다. 결론부터 말하면, 형사 판결문은 민사재판의 사실관계를 뒤집기 힘든 결정적 한 방이다.
대법원은 "민사재판이 형사재판에서 인정된 사실에 구속받는 것은 아니"라고 전제하면서도, "이미 확정된 형사판결이 인정한 사실은 유력한 증거자료가 되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배척할 수 없다"(대법원 1986. 9. 9. 선고 85다카2255 판결)는 입장을 확고히 유지하고 있다.
이는 형사재판의 증명 수준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매우 엄격하기 때문이다. 이 높은 문턱을 넘어 인정된 사실이기에, 민사재판에서도 그 신뢰도를 높게 쳐주는 것이다.
이주한 변호사(법무법인 한별)는 "형사 유죄 판결의 범죄사실은 민사에서도 그대로 인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재판부가 특별한 이유 없이 이를 뒤집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설명했다. 즉, B씨가 형사 판결을 뒤집을 만한 새로운 객관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한, 그의 주장은 법정에서 힘을 얻기 어렵다.
'결정적 한 방' 쥐었지만…피해자가 반박해야 할 부분은?
그렇다면 A씨는 B씨의 주장에 손 놓고 있어도 될까. 그렇지는 않다. 형사 판결문이 '불법행위'라는 핵심 사실을 입증하는 강력한 무기인 것은 맞지만, 민사소송의 모든 쟁점을 해결해주는 만능 열쇠는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B씨가 주장하는 '쌍방 과실'과 같은 과실상계(피해자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을 때 그만큼 손해배상액을 깎는 것) 주장이 그렇다.
최경섭 변호사(법무법인 인화)는 "과실 비율을 따지는 부분은 원칙적으로 형사사건의 판단 대상이 아니"라며 "가해자가 피해자의 과실을 별도로 입증해야 하지만, 피해자도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재판에 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방어 수준에 대해 과도한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김명수 변호사(법무법인 인화)는 "피해자 입장에서는 가해자의 주장에 대해 형사판결문을 근거로 간략히 반박하는 정도로도 충분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현 변호사(법률사무소 유)도 "상대방이 억지 주장을 계속한다면, 이를 반박하는 자료를 일부 제출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