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식 아니라는데…" 30년 미스터리 천경자 미인도, 대법원도 답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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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식 아니라는데…" 30년 미스터리 천경자 미인도, 대법원도 답 못했다

2025. 09. 11 13:59 작성
손수형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sh.son@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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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 국가배상 소송 최종 패소

진품-위작 양측 근거 팽팽, 미스터리는 계속된다

1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방송 장면. /CBS 김현정의 뉴스쇼 유튜브 캡처

"자기 자식인지 아닌지 모르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화가 천경자(1924~2015)는 생전 이렇게 절규하며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미인도'가 자신의 그림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최근 대법원이 이 미인도 논란에 대한 판결을 내놓자, 많은 언론이 '진품으로 결론 났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30년 넘게 이어진 미스터리는 대법원의 두 번째 판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법원 "진품 여부 판단 안 해"

11일 방송된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따르면 이번 대법원 판결의 본질은 '미인도'의 진위 여부가 아니었다. 천 화백의 유족이 국가(검찰)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 대한 결론이었다. 유족은 과거 검찰이 미인도를 진품으로 결론 내리는 과정에서 ▲감정인을 회유하고 ▲부실하게 수사했으며 ▲허위 보도자료를 배포해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며 1억의 배상을 청구했다.


법원은 1, 2심에 이어 대법원까지 유족의 청구를 기각했다. 하지만 판결의 핵심은 "검찰이 진품이라고 결론 내린 수사 과정이 위법하지 않다"는 것이지, "검찰의 진품 판단이 옳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에 "작품의 진위는 작가의 확인에 따르는 것이 타당하다"며 "검찰의 진품 판단과 달리 볼 여지도 존재한다"고 명시했다. 사실상 법원 역시 진품인지 위작인지 판단을 유보한 것이다.


김재규에서 미술관으로…그림의 기구한 여정

이 그림의 역사는 시작부터 모든 것이 꼬여있었다. 1977년작으로 알려진 미인도의 첫 주인은 10·26 사건의 주역,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었다. 1979년 그가 체포되면서 재산이 압수됐고, 그림은 국가 소유가 되어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로 들어갔다.


10년 넘게 잠자던 그림은 1991년 '움직이는 미술관' 기획전을 통해 세상에 나왔고, 포스터로도 제작돼 팔려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기업 사우나에 걸린 포스터를 본 천 화백의 지인이 이 사실을 알렸고, 그림을 확인한 천 화백은 "내 그림이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미인도는 눈에 생기가 없고 코도 뭉툭하며, 머리카락 표현 방식도 조잡하다"는 것이 천 화백의 주장이었다.


팽팽한 진위 논란…어느 쪽도 결정적 증거는 없다

미술관 측은 '진품'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근거는 명확했다. 우선 김재규 전 부장의 아내가 정보기관 직원에게 선물 받았고, 그 직원은 천 화백에게 직접 구매했다고 증언하는 등 소장 경로(출처)가 확실하다는 것이다.


또한, 과거 천 화백이 자신의 다른 작품 '인도의 무희'를 위작이라고 주장했다가 출처가 확인되자 진품으로 인정한 전례가 있다는 점도 미술관 측 주장에 힘을 실었다.


반면 유족 측은 화가 본인의 부인을 가장 큰 근거로 내세운다. 천 화백은 "나는 머릿결을 새카맣게 개칠하듯 그리지 않고, 사인 연도도 한자로 적는데 미인도는 아라비아 숫자로 돼 있다"고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하지만 이 주장 역시 다른 진품들 앞에서 힘을 잃기도 한다. 1974년작 '바리의 처녀'에는 아라비아 숫자로 연도가 표기돼 있고, 같은 해 작품 '고'의 머릿결 표현은 미인도와 흡사해 보인다.


결국 어느 쪽도 완벽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렀고, 천 화백은 "가짜를 진짜로 우기는 풍토에서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다"며 절필을 선언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법정 다툼은 끝을 향해가지만, 캔버스 뒤에 숨은 진실의 그림자는 여전히 짙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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