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 교수 에세이 (31)] 박사 과정에 들어가자!
[정형근 교수 에세이 (31)] 박사 과정에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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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전문가라면 어느 분야에서만큼은 남다른 전문성을 가져야 하는데, 매달 사건 수임 상황에 일희일비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평생 이 직업에 종사할 거면 전문분야 하나는 개척해야 할 것 같았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변호사로 개업한 지 3년가량 되니 점차 경제적인 안정도 찾아왔다. 전셋집에서 지내다가 조그만 집도 마련하였다. 사법시험에 합격하지 못하고 여전히 수험생활을 하고 있는 동료에게 후원도 하였다. 변호사 개업을 할 때 대출받았던 1억원 가량의 돈도 갚았다. 그런데 개업 자금을 대출받을 때 서로 보증을 섰던 동기 변호사는 서초동에서 개업을 하였지만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그는 결국 대출금을 갚지 못하였다. 은행에서는 나에게 보증을 섰으니, 그 동기가 갚지 못한 돈을 대신 갚으라고 독촉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은행을 찾아가 동기가 연체한 2000만원 가량을 이자까지 계산해서 지급하였다. 그나마 그 정도 금액만 연체한 것이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 동기는 내가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K형! 은행에 연체한 돈을 전부 갚았으니 앞으로 내 전화 피하지 마시게. 부디 이 어려움 딛고 일어난 후에 여유를 찾게 되면 나를 기억해 주시게!"
그 후로 그 동기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그의 사무소에 가면 혹시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일부러 찾지 않았다. 그는 은행에서 여러 차례 대출을 받으면서 연수원 동기들에게 보증을 서달라고 부탁한 후 돈을 갚지 못한 상태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 때문에 변호사로 일하는 여러 동기들은 은행으로부터 변제 독촉을 받아야 했다. 어떤 분은 은행이 제소한 재판에서 몇 천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기도 했다. 보증을 서주었던 변호사 중에는 2~3년 후에 검사로 임관되기도 했다. 그 검사도 은행에서 보증을 섰던 돈의 독촉을 받고 있었다. 만약 월급에 가압류라도 들어가면 검사로 계속 근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도 나왔다. 그래서 친한 동료들끼리 십시일반 갹출(醵出)을 하여 몇 천만원의 연체금을 갚아주기도 하였다. 그 후 여러 사람에게 보증채무를 부담시켰던 그 동기 변호사는 밤 9시 TV 뉴스에 수갑을 찬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의 근황이 늘 궁금했는데, 오랜만에 화면에서 본 것이다. 변호사가 구속된 사례가 많지 않아서 뉴스거리가 된 것이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불과 몇 해 전에 뉴스에 나온 그 변호사와 검사로 임관되었던 그 동기는 불과 몇 해 전에 서로 다른 사연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어느 날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전국 변호사들에게 보낸 공문이 왔다. 그 내용을 보니 "사건 의뢰인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갖지 말라"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의뢰인과 금전거래를 하지 말라고 하면서 "특히 이혼 사건의 당사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지 말라"는 문구도 있었다. 의뢰인과의 불미스러운 일로 사회의 물의를 일으키는 일이 반복되니까 대한변협이 단속에 나선 것 같았다. 그 당시 변호사가 직무상 지켜야 하는 규범인 '변호사윤리장전'에는 "변호사는 금전(⋯)등의 수수를 명백히 하고 이로 인한 분쟁이 발생하지 아니하도록 주의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었고, 의뢰인과 금전거래를 금지하는 분명한 조항은 없었다. 그리고 "변호사는 권세에 아첨하지 아니하고 재물을 탐하지 아니하며 항상 공명정대하여야 한다"는 현실성 없고 공허한 문구는 많았다. 그 후 개정된 지금의 '변호사윤리장전'에는 "변호사는 그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의뢰인과의 금전대여, 보증, 담보제공 등의 금전거래를 하지 아니한다"라고 하여 '그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한 것이 아니라면 금전거래도 할 수 있는 것처럼 해놓고 있다. 그리고 강제력을 지닌 법규정 형식이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준수하라는 권유문 형식으로 해놓고 있다.
아무튼 대한변협 공문에서 언급된 변호사가 자신의 의뢰인과 성관계를 갖는 행위에 대하여는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규정이 없다. 이런 행위를 염두에 두고 규율할 수 있는 직접적인 규정을 마련해 두지 않았다. 그래서 실제로 이런 사건이 발생하여 징계처분을 해달라고 투서나 진정서가 변호사 단체에 들어오면 품위를 훼손하였다고 징계할 수 있다. 공무원이나 기업체 또는 각종 자격사들 단체에서는 품위유지 의무를 규정한 후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면, 품위를 훼손하였다고 징계를 한다. 그래서 웬만한 일탈 행위는 대부분 품위 훼손 문제로 처리하고 있다.
우리와 달리 미국에서는 변호사와 의뢰인의 성관계를 이익충돌(conflict of interest) 문제로 다루기도 한다. 미국의 '변호사 직무에 관한 모범규칙'에서는 '의뢰인과 변호사 사이의 성관계'(Client-Lawyer Sexual Relationships)에 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변호사가 어떤 사람과 의뢰인 관계가 되기 전부터 성관계를 가져왔다면, 의뢰인이 된 후에도 그런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의뢰인으로 처음 만난 상태에서는 성관계를 가질 수 없다고 한다. 설령 의뢰인의 동의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변호사에게 자신의 사건을 의뢰한 상태에서는 완전히 자유로운 의사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변호사와 의뢰인의 관계는 수임 약정으로 맺어진 대등한 계약관계라기보다는, 변호사에 대한 신뢰와 의존관계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자신의 인생이 걸린 중요한 사건을 맡긴 의뢰인과의 성관계는 일단 부적절한 관계라고 해야 하기에 변협에서도 저런 공문을 보낸 것 같았다.
긴장 가운데 개업을 한 지 3년이 지나고 나니, 앞으로 나의 모습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에 잠기곤 하였다. 퇴근 후에 할 일 없이 보내는 것도 무료했다. 장래를 생각하면 알 수 없는 불안이 밀려왔다. 지금이야 그런대로 살만하지만, 앞으로도 그 상태가 계속될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주변에서는 변호사 직업의 앞날에 대하여 비관적인 전망이 많았다. 하긴 개업 초기에도 변호사 업계는 "단군 이래로 최고의 불황 상태"라는 말이 많았다. 장래를 비관적으로 보는 가장 큰 이유는 변호사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었다. 해마다 300명씩 뽑던 사법시험 합격 인원을 500명까지 대폭 늘리다 보니, 해마다 변호사 증가 속도가 빨라졌다.
주변에서는 대부분 좋은 차를 타고 골프를 치고, 밤새워 마작을 하면서도 "어렵다" "힘들다" "앞으로 장래가 없다" 이런 말을 달고 지냈다. 그 무렵 나는 구멍가게에서 여러 가지 물건 팔 듯, 모든 의뢰인의 사건을 이것저것 하면서 지내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했다. 법률전문가라면 마땅히 어느 분야에서만큼은 남다른 전문성을 가져야 하는데, 나는 매달 사건 수임 상황에 일희일비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평생 이 직업에 종사할 거면 전문분야 하나는 개척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궁리 끝에 경희대 법무대학원 보험·해상학과에 지원했다. 생소한 분야라서 배울 것도 많아 보여 입학한 것이다. 야간에 수업을 진행하였기에 퇴근하자마자 학교로 달려갔다. 영국 유학을 다녀온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재직 중인 변호사님을 비롯하여 국내의 유명하신 분들이 수준 높은 강의를 하였다. 교실에는 학생들로 가득 차 빈자리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열기가 대단했다. 정말 대학원에 입학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며, 첫 학기를 만족스럽게 열심히 수업에 출석하였다.
어느덧 한 학기를 마쳐 가던 여름날 밤, 수업 후 귀가하던 길에 노동법 전공이신 강희원 교수님을 만났다. 내가 법무대학원에 다니고 있다고 하니까 강 교수님은 "이미 법학석사 학위를 받은 상태에서 또다시 석사과정을 다닐 필요가 있느냐. 차라리 박사과정에 입학하여 더 깊은 공부를 하면 좋겠다"는 등의 조언을 해주었다. 그러면서 박사과정에 들어와서 노동법을 전공하면, 천만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하여 활약할 기회도 많을 것이라고 했다.
휘영청 밝은 달밤에 거리에서 법학박사가 되라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설렜다. 그런 조언을 듣고서 노동법을 전공할 생각은 없었지만, 박사과정에 진학하라는 말은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순간 법무대학원은 그만 다니기로 했다.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이 그렇게 찾아왔다. 그해 8월 무렵에 일반대학원 박사과정 법학과에 원서를 냈다. 박사과정에 들어간 후 행정법을 전공하기로 하였다. 종일 일을 마치고 학교 가는 것은 힘들었지만, 뭔가에 이끌린 듯 퇴근만 하면 강의실로 달려갔다. 그렇게 지내면서 수임 사건 처리 경험을 정리하여 "백혈병과 업무상 재해"라는 실무연구 글을 학술지에 발표하기도 하고, 순간적으로 스치는 토막 이야기도 흘려보내지 않고 수필로 적어 서울변호사회의 월간지 '시민과 변호사'에 기고를 하곤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