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살인범으로 몰았던 택시기사⋯ 그가 '진짜 범인'을 잡았다
경찰이 살인범으로 몰았던 택시기사⋯ 그가 '진짜 범인'을 잡았다
경찰, 결정적 증언한 기사를 살인범으로 몰아
성범죄 전과자 놓치고 '헛다리 수사'

2013년 6월, 대구 중부경찰서에서 여대생 살해 피의자 조씨가 기자들로부터 질문을 받는 모습. /연합뉴스
귀갓길 여대생을 살해한 진범은 따로 있었지만, 경찰의 섣부른 판단에 애꿎은 택시기사가 6시간 동안 살인범으로 몰리는 억울한 일이 벌어졌다. 택시기사는 결정적인 증언으로 범인을 특정하는 일등 공신이었음에도, 수갑을 찬 채 공포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4일 YTN 라디오 '이원화 변호사의 사건X파일'에 따르면, 사건은 2013년 5월 25일 새벽, 대구에서 시작됐다. 지인들과 술자리를 마친 여대생 남씨가 택시를 타고 귀가하던 중 실종됐다.
가족들의 애타는 기다림도 잠시, 남씨는 다음 날 경주의 한 저수지에서 하의가 벗겨진 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온몸의 심한 타박상과 목이 졸린 흔적은 단순 사고가 아닌, 성폭행이 동반된 잔혹한 살인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마지막 동행자'라는 덫, 악몽이 된 6시간
경찰의 칼날은 가장 먼저 택시기사 이씨를 향했다. 피해자의 마지막 모습이 택시에 오르는 장면이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사팀은 엿새간의 추적 끝에 이씨를 유력 용의자로 긴급 체포했다.
하지만 이씨를 범인으로 볼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차량 내부에서 범죄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그에게는 전과 기록조차 없었다. 권은택 변호사(로엘 법무법인)는 "참고인 조사가 우선이었어야 할 상황에서, 물적 증거 하나 없이 긴급 체포를 단행한 것은 명백한 과잉 수사"라고 지적했다.
이씨의 악몽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경찰은 그에게 6시간 동안 수갑을 채운 채 조사를 진행했고, 동시에 집을 압수수색하며 장롱을 부수고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이웃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하루아침에 '살인범'이라는 끔찍한 낙인이 찍혔다.
범인 지목한 결정적 증언…그러나 풀려나지 못했다
역설적이게도 사건 해결의 실마리는 살인범으로 몰린 이씨의 입에서 나왔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피해자를 태우고 가던 중, 신호 대기 때 한 젊은 남성이 갑자기 택시에 올라탔다"고 진술했다. 자신을 피해자의 남자친구라고 속인 남성은 술에 취해 잠든 피해자를 흔들어 깨우는 등 연인처럼 행동했고, 결국 두 사람을 산격동 모텔 맞은편에 내려줬다는 구체적인 내용이었다.
이씨의 증언은 사실이었다. 경찰이 인근 CCTV를 확인하자, 만취한 피해자를 한 남성이 부축해 끌고 가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결정적 단서였지만, 이씨는 즉시 풀려나지 못했다. 진술이 사실로 입증된 후에도 그는 새벽 2시까지 수갑을 찬 채 조사를 받아야만 했다.
권 변호사는 "증거 없는 긴급체포와 장시간 수갑 사용은 명백한 인권침해"라며 "만약 당시 변호인이 있었다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나 인권위원회 진정 등 법적 구제 절차를 적극 검토했을 사안"이라고 분석했다.
진범의 섬뜩한 두 얼굴, '공익근무요원 조명훈'
택시기사의 증언으로 특정된 진범은 대구 지하철역 공익근무요원이던 조명훈이었다. 그는 클럽에서 남씨에게 추근대다 쫓겨났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밖에서 기다리다 택시를 타자 뒤쫓아 올라탔다.
그는 성폭행을 시도하다 남씨가 반항하자 무자비한 폭행으로 살해하고, 렌터카를 빌려 시신을 저수지에 유기했다. 범행 후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지하철역으로 출근하고, 밤에는 다시 클럽을 찾아 다른 여성을 물색하는 등 섬뜩한 이중생활을 이어갔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조명훈이 이미 미성년자 성추행 전과가 있는 '성범죄자 알리미' 등록자였다는 사실이다. 경찰이 초기 수사 단계에서 관내 성범죄 전과자만 확인했더라면, 애꿎은 택시기사가 고통받는 일은 막을 수 있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결국 강간 등 살인, 사체유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명훈에게 법원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와 함께 신상정보 공개 10년, 전자발찌 부착 30년이 명령됐다. 그는 현재 청송교도소에서 무기수로 복역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