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Law, Talk!] 영화 '1987'에서 찾은 배심제 도입의 필요성
[영화Law, Talk!] 영화 '1987'에서 찾은 배심제 도입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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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의 한 장면 / 출처 네이버 영화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요?”
영화 <1987> 속 연희(배우 김태리)는 “포섭을 하겠다”며 자꾸만 다가오는 한열(배우 강동원)에게 투정하듯 내뱉는다. “가족 생각은 안 하냐”며, 한열과는 삶에서 우선하는 가치가 다르다는 것을 드러낸다.
2017년 12월 27일 개봉한 영화 <1987>, (감독 장준환)은 이른바 ‘87년 헌법’을 만들어낸 6월 민주항쟁의 배경을 그리고 있다.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87년 헌법은 1987년 10월 27일, 우리 헌정사상 9번째로 개정된 헌법이다.
과연 영화 속 연희의 말처럼 한열이가 그런다고 세상은 바뀌지 않았을까? 아니, 오히려 절대 오지 않을 것 같던 ‘그날’이 오게 만들었다.
대열의 최전선에서 최루탄을 맞아 사경을 헤매게 된 이한열의 소식은 6월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되어 전국민의 민주화 열망에 불을 지폈고, 결국 대통령 직선제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국민의 뜻과 상관없이 체육관에서 정해지는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는 대통령을 보게 된 것이다.
한열이로 인해 바뀐 세상은, 1987년으로부터 30년이 지나서도 재확인됐다.
세계인이 놀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대통령을 탄핵한 한국의 평화 시위’는 6월 민주항쟁이 먼저 있지 않았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거라는 통찰이 있다.
「100년의 헌법」 (푸른역사 刊, 2019)에서 저자 한인섭은 이렇게 말한다.
“2016년 10월부터 2017년 3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심판에 이르기까지, 13주에 걸쳐 매번 100만 이상의 시민들이 광장을 채웠습니다.
군사독재 시기였다면 5·18처럼 몽둥이와 총으로 수백 명이 죽었을 겁니다. (하지만) 군대를 시내에 풀어 국민을 총칼로 통제하는 계엄체제를 1987년에 종식시켰습니다. 최루탄이 난사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한열이 최루탄에 사망하는 비극을 겪은 후 김대중 정부는 최루탄을 종식시켰습니다.
2016년의 평화시위는 이전 시대에 널리 쓰였던 진압 방법, 즉 총, 칼, 몽둥이, 최루탄, 물대포, 물을 차례차례 사라지게 한 선열과 지사들의 노력 덕분이기도 합니다.”
“고문이 가능해?”
2000년 이후 철이 들었거나 태어난 세대라면 경찰과 검찰이 행하는 ‘고문’이라는 말에 낯선 감정을 느낄 것이다. “그런 게 가능해?”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늦게는 2000년대 초반까지, 경찰 혹은 검찰이 소위 ‘나쁜 놈’들을 두들겨 패거나 고문하는 일이 왕왕 있었다는 게 그쪽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의 말이다. “대놓고 이 이야기를 하면 장본인들은 경기를 일으킬지 모른다”는 말을 덧붙였지만 말이다.
영화 <1987> 속 대학생들이 가장 크게 외친 말이 “우리는 고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였다. 영화 속에서 관객을 가장 가슴 아프게 한 것도 고문으로 인해 한 인간의 존엄성이 말살되어 가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런 조직적 악행이 자행될 수 있었던 건 사람이 문제인가, 시스템이 문제인가. 다시 말해, 의식이 잘못 박힌 그 한 사람에게만 책임이 있는 걸까?
국가의 이름으로 무고한 국민을 해할 수 있도록 설계된 권력 시스템은 잘못이 없는가.
배우 김윤석이 연기했던 박 처장은 어린 시절 눈앞에서 부모와 형제가 공산당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한 개인적 원한이 있는 인물이다. 그가 쥐 잡듯 공산당을 잡아들이며 혁혁한 공로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애국심으로 변형된 개인적 원한 때문이다.
한 개인으로서도 이유가 있을 뿐 아니라, 국가의 지상목표와도 맞아떨어지는 일을 하고 있기에, 박종철 고문치사처럼 가끔씩 생기는 ‘삑사리’ 쯤은 문제없다고 여겼을지 모른다. 실제 이런 인식을 가진 인물들이 충분히 존재했으리라 추측하는 건 무리가 아니다.
배우 박희순이 연기했던 고문 담당 조 반장 또한 마찬가지다. 자기 손에서 죽어나간 많은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 하지만 그쯤은 대의를 위해, 박 처장이 그리 강조하는 ‘애국자로 살기 위해’ 삼켜내야 한다고 믿는다.
고문치사로 자신이 형을 살게 될 상황이 만들어지자 박 처장에게 “까라면 까고, 밟으라면 밟았습니다.”라며 책임 없음을 절규하는 그는, 나름대로는 충분히 억울할 만하다. 상사에게 복종하는 게 권력기관 소속 공무원의 최고 미덕이라 배울 시절 아닌가.
이처럼 인간이 가진 품성적 한계를 인정하고 나면, 국가 권력 시스템 자체를 손질해 소수에 의해 자행되는 조직적 거악을 차단할 방안을 생각하게 된다. 국민을 향하는 권력 행위의 근원이 철저히 국민에게서 나오고, 권력의 행사 또한 국민으로부터 철저히 감시받도록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국민이 뽑지 않은 사법부의 ‘사법권’,
국민이 직접 행사하게 하는 ‘배심제’
국가 권력을 행정·입법·사법 세 영역으로 구분할 때, 법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사법부(司法府)만이 헌법상 유일하게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 구성되어 있고 국민으로부터 감시를 받지도 않는다.
정치 권력과 입법 권력은 국민이 일정 부분 조직하고, 감시 또는 통제할 수 있지만 사법 권력에 대해서는 관여할 방법이 현재로서는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제기되는 주장이 배심제 도입이다.
영미법에 근원을 두고 있는 배심제는 ‘국민들 중에서 배심원을 구성하여 재판 또는 기소에 참여시키고 사실문제에 관해 평결하게 하는 제도’다.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는 ‘미국 연방헌법의 배심조항’(2001) 논문에서 미국 배심제가 “자치정부의 통치를 위한 사법주권의 행사로서의 의미를 갖다가, 판사의 힘을 견제하여 사법제도 내 균형을 이루는 수단으로서의 의미가 강해졌다”고 설명한다.
배심제도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박승옥 변호사는 그의 책 「시민 배심원제 그리고 양형기준」 (한올 刊, 2018)에서 “사법제도가 국민의 신뢰를 잃고 있을 때 도입 필요성이 더욱 커지는 것이 배심제”라고 말한다.
“배심제가 국민의 사법주권을 회복시키고, 검찰 및 법원에 독점되어 있는 조사, 처분, 판단 권한의 상당 부분을 국민이 함께 행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배심제의 운영 형태는 국가별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세계 대부분의 나라는 어떤 형태로든 국민이 사법권 행사에 참여하는 배심제를 취하고 있다는 게 박승옥 회장의 설명이다. 아시아 국가 중에는 일본, 홍콩 등이 대표적이다.
일반적으로 배심제는 인원의 규모에 따라 대배심과 소배심으로 나뉘는데, 양자는 기능에도 차이가 있다. 대배심(기소배심)은 피의자의 구속 및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검사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며, 소배심(심리배심)은 사건의 유무죄 결정과 평결을 하는 판사와 같은 역할을 한다.
지난 2008년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은 소배심의 변형된 형태다. 배심원의 평결과 의견이 법관을 구속하지 않고 법관은 독자적으로 판단을 할 수 있게 했다.
이 같은 변형은 우리 헌법 제27조 제1항이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차병직·윤재왕·윤지영 공저 「지금 다시, 헌법」 (창비 刊, 2017)에서는 “전형적인 배심재판은 배심원이 확정적으로 유무죄를 결정하므로 우리나라에 배심제를 도입하려면 이 조항을 적절히 개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즉 헌법 제27조 제1항이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정하고 있기 때문에, 전형적인 배심제 도입에 앞서 헌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개혁 방안이 검경 수사권조정?
“헌법 충돌 없는 대배심 도입하면 간명하다”
현 정부는 검찰개혁을 위해 검찰과 경찰 간 수사권을 조정하는 데서 방법을 찾고 있지만, 이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는 하나로 모아진다. “권력의 분산이 없다”는 것이다.
‘검찰에서 경찰로의 권력 이전’에 다름 아니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수사권 조정은, 검찰 못지않게 위험 요소가 다분한 경찰조직의 힘만 키울 뿐이라는 지적이 이어진다.
이에 박승옥 회장은 “검찰 개혁 방안으로 대배심제 도입이 나왔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대배심의 기능은 범인을 기소하는 것이지만, 근거 없는 소추 및 압제를 막는 방패가 되어주기도 한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대배심이 있다면 영화 <1987>의 조 반장은 달리 행동할 수 있었을 거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박 회장 또한 “부당한 지시명령이 수사담당 경찰관에게 가해질 때 그는 대배심을 방패로 삼아 부당한 명령에 저항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거대 자본가가 검사를 회유해 불기소처분을 받는 일 역시 대배심이 존재한다면 일어나기 어렵다. 검사 한 명에 대한 청탁과 뇌물은 가능할지 몰라도, 무작위로 뽑힌 16~23명의 시민들(대배심)을 회유하고 청탁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륙법체계를 취하는 국가에서 영미법체계의 어느 제도를 들여온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법은 이미 대통령제를 비롯한 다양한 영미법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법조인 양성제도를 영미식 로스쿨제도로 바꾸기도 했다.
800년 연륜을 가진 합리적 제도인 ‘배심제’를 도입 못할 이유는 없다. 더군다나 헌법 충돌 염려도 없는 ‘대배심제’라면 더욱 도입이 간명하다. 배심제의 전제가 되는 디스커버리제도(증거개시제도)와 플리바게닝까지 도입된다면 금상첨화라는 게 배심제도연구회의 주장이다.
영화 <1987> 속 짓밟힌 삶과 현실의 사법비리들이 절대 불가능한 세상은, 배심제 도입을 통해 국민의 힘이 사법권에 효과적으로 미치게 할 때에 비로소 찾아올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