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 교수 에세이 (54)] 고검장은 바쁘지 않다
[정형근 교수 에세이 (54)] 고검장은 바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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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동안 활동하였던 선교단체를 나온 후에는 기독교나 교회 같은 건 생각도 하기 싫었다. 그런데 어쩌면 하나님이 나를 다시 신앙의 길로 이끌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셔터스톡
17년 동안 활동하였던 선교단체를 나온 후에는 기독교나 교회 같은 건 생각도 하기 싫었다. 주말마다 골프장을 다니며 변호사 동료들과 어울렸다. 틈만 나면 골프연습장으로 가고, 일요일 새벽 시간에도 운동하러 집을 나섰다. 그간 놀지 못했던 것을 뒤늦게라도 보충하는 것 같았다. 굿샷! 소리를 외치고, 듣는 것이 기쁨이고 즐거움이었다. 전반 9개 홀을 돌고서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그늘집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도 과거에 느껴보지 못한 추억이었다. 잘 가꿔놓은 골프장을 걸을 때면, 늦게라도 운동을 시작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운동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 연장 탓한다고 조금이라도 좋은 제품이 비거리를 늘려줄 것 같고, 홀에 잘 들어갈 거 같아서 골프채 구입에도 열을 올렸다. 경건하게 지내려고 노력했던 지난 시절과는 달랐다. 그렇게 지내고 있을 무렵 고등검찰청 검사장으로 계신 분이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한번 들른다고 하더니 왜 오지를 않나요? 다른 일정 없으면 지금 오세요."
고검장님은 내가 사법연수원 다닐 때 실무수습으로 검찰청에 나가서 검사직무대리를 할 때 알게 된 분이었다. 그 무렵 검사장이 연수생들에게 점심을 사면서 폭탄주를 돌렸다. 나는 교회를 다니고 있어 폭탄주를 받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자 검사장은 매우 불쾌해하였다. 바로 그때 차장 검사님이 나를 옹호해 주었다.
"정 시보가 신앙적인 이유로 잔을 받지 않으려고 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썰렁해진 분위기를 되살려주신 차장 검사님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검찰청의 신우회 모임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었다. 나도 검찰청에서 시보를 하는 동안 신우회 모임에 참석하였다. 모임에는 기독교인 검찰청 직원들이 많이 참석하였고, 점심을 하고 헤어졌다. 검찰청 주변에 있는 식당에서 콩나물 비빔밥을 함께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부터 알게 된 차장 검사님은 나중에 지방검찰청 검사장을 거쳐 광주고등검찰청 검사장으로 부임해 있었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분이시라 며칠 전에 우연히 길에서 만났을 때 인사를 하면서 "한번 찾아뵙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는데, 그걸 기억하고 직접 전화를 하신 것이었다. 그래서 급히 고검장실로 찾아갔다. 부속실 직원이 차와 함께 사과를 하나 깎아서 가져왔다. 고검장은 바쁘지 않으니 자주 들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요즘 어느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다녔던 선교단체를 그만둔 후 출석할 교회를 정하지 못하고 방황 중이라고 말씀드렸다. 마치 내가 고검장님에게 신앙상담을 하러 들른 거 같았다.
그랬더니 고검장님은 다니고 있는 교회에 함께 나가자고 권유했다. 최근에는 부속실의 계장이 결혼하고 십여 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고 하여 그 아내가 임신하여 출산할 수 있도록 기도를 하였는데, 최근에 자녀를 낳았다는 말씀도 하셨다. 실제로 그 계장과는 학연관계로 평소에 잘 알고 있었는데, 고검장님이 기도해 주신 후에 임신이 되어 자녀를 갖게 되었다고 전해주었다. 그러면서 고검장님은 그동안 검사로 살아오면서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조상들이 어떻게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는지에 관한 이야기, 형제들이 많은 집안에서 태어나 장학금을 준다는 지방의 사립고등학교에 입학한 것, 검사 초임 무렵 어느 지방에 있는 지청에서 근무 중이었는데, 정기 인사이동 때 혼자만 빠져버려 낙망했던 일, 인천지방검찰청에 있을 때 동기가 찾아와서 검사라면 서울지검 검사를 한번은 해야지 지방만 전전하냐고 하더니, 그 동기가 힘을 써서 서울지검으로 발령받은 일, 세월이 흘러 서울지검장 내정 소식을 들었는데, 그날 오후에 건강진단 결과가 안 좋게 나와서 그 자리를 고사해야 했던 일, 그때 서울지검장으로 갔던 분이 나중에 안 좋은 사건에 연루되어 검찰을 떠났던 일, 그때 서울지검장으로 갔더라면 자신이 그 일을 겪어야 했을 것 등등의 지난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검사로 지내온 과정을 회고하는 말씀을 담담히 털어놓으셨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검사장님의 부친은 시골 교회의 장로였는데, 주일 낮 예배시간에 기도자로 강단에 오르려고 할 때 담임 목사님이 정장을 하지 않는 복장이라고 기도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어려운 형편이라 정장 한 벌 마련할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에서는 2006년 한국선교 121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가장 모범적인 신앙 가정으로 고검장님 부모님을 선정했다고 한다. 여러 신앙서적에서나 목사들이 대표적인 신앙인으로 거명하는 훌륭한 집안이었다.
아무튼 이틀 후 수요일 밤 예배 시간에 어느 교회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 검찰청을 나왔다. 선교단체를 나온 후 제대로 교회를 나가지 않았는데, 그런 연유로 다시 교회를 향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어쩌면 하나님이 나를 다시 신앙의 길로 이끌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한 수요일 저녁시간에 교회를 갔다. 희미한 가로등이 비추는 어두운 교회 입구에서 고검장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겠다고 하였지만, 정말로 그럴 줄은 몰랐다. 그 교회 목사님은 "고검장님이 정형근 변호사를 전도해 오셨다"고 광고를 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게 되었다. 교회 예배를 마친 후에는 근처에 있는 가게에서 저녁을 함께하자고 하였다. 무슨 초가집 같은 허름한 집을 찾아가서 매우 간단한 저녁을 함께했다.
그리고 며칠 후에 나에게 전화를 하신 고검장님은 내 법률사무소에 찾아와서 업무를 잘하도록 축복기도를 해주겠다고 하였다. 사실 그런 호의에 감사하기도 하였지만, 부담스럽기도 했다. 현직 검사장이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온다는 것은 괜한 구설에 오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아무튼 며칠 후에 고검장님이 오시겠다고 하는 날에 사무실 청소도 깨끗이 해놓고 기다렸다. 그날 오후에 고등검찰청 직원이 전화를 하였다.
"오늘 고검장님이 법무부차관으로 발령을 받아서 오후에 서울로 올라가시게 되었다."
그렇게 되어 사무실에 오려는 일정은 취소되었다. 전화로 영전을 축하드렸다. 그때 서울로 가신 고검장님은 나중에 법무부장관, 국가정보원장의 중책을 맡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