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아동 성착취물에 관대한 사법부, n번방 사건을 '더 악랄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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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아동 성착취물에 관대한 사법부, n번방 사건을 '더 악랄하게' 만들었다

2020. 03. 23 18:07 작성
엄보운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eom@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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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 소지죄' 판결문 22건 전수조사

22건 중 21건이 벌금형⋯법정 구속은 단 한 건도 없어

법원의 관대한 판결이 "벌금만 내면 끝난다" 인식 심어준 것은 아닐까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성착취물을 소지하더라도 벌금만 내면 끝난다"는 법원의 메시지가 더욱 악랄해진 'n번방'이 되어 돌아온 건 아닐까. /엄보운 기자

'n번방 사건'이 이렇게까지 커지기 전에 법원은 n번방 운영자 '박사' 뿐만 아니라 이용자들 모두에게 강력한 경고를 날릴 기회가 있었다. 지난 2018년 '아동 포르노계의 거물' 손모씨가 붙잡혔을 때다.


미국 국토안보수사국, 영국 국가범죄청 등 32개국 수사기관이 2년 8개월간 유례없는 국제공조수사를 거쳐 손씨가 운영하는 '웰컴 투 비디오' 사이트를 적발했다. 각국 수사기관은 이 사이트에 접속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내려받은 유료 이용자들을 각자의 법을 적용해 처벌했다.


특히 미국은 강력하게 처벌했다. 손씨가 만든 사이트에서 아동 음란물 1개를 다운로드받은 미국인은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한국은 달랐다. 우리 법원은 웰컴 투 비디오의 유료이용자였던 한국인들에게 많아야 벌금 300만원 정도를 선고했다.


599건의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다운로드한 경우도, 968회 내려받은 경우도 모두 '벌금 300만원'이었다. 미국과 비교했을 때 너무도 가벼운 처벌이었다.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이 유통된 다크웹 사이트인 '웰컴투비디오' 홈페이지 화면. 국제공조로 사이트 운영자인 손모씨가 붙잡히고 사이트는 폐쇄됐다. /웰컴투비디오 홈페이지 캡처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이 유통된 다크웹 사이트인 '웰컴투비디오' 홈페이지 화면. 국제공조로 사이트 운영자인 손모씨가 붙잡히고 사이트는 폐쇄됐다. /웰컴투비디오 홈페이지 캡처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 소지죄 판결문 22건 전수조사

로톡뉴스는 최근 4년간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 소지죄로 처벌받은 판결문 22건을 전수조사했다. 그 결과, 이 죄를 범해서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가장 무거운 처벌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이었다.


우리 재판부는 말로는 "엄벌에 처한다"고 했지만, 결과를 보면 달랐다. 실제론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고 있었다.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성착취물을 소지하더라도 벌금만 내면 끝난다"는 메시지를 범죄자들에게 일관적으로 보낸 셈이다. 지속된 메시지의 결과가 더욱 악랄해진 'n번방'이 되어 돌아온 건 아닐까.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3715개 다운받아도 '벌금 300만원'

지난 2017년 6월 전주에 사는 A씨는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집중적으로 다운로드했다. 동영상과 사진 등 음란물 파일의 형태도 가리지 않았다. 7개월이 지났을 무렵 그의 노트북에는 3715개의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이 모여있었다.


검찰은 재판을 맡은 전주지법 박상국 판사에게 엄벌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A씨 범죄 일람표를 100페이지 가까이 정리해 제출했다. 어떤 성착취물인지 체계적으로 정리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박 판사의 결정은 벌금 300만원이었다.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범죄일람표를 보면 A씨가 다운받았던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이 3715번까지 빼곡히 정리돼있다. /엄보운 기자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범죄일람표를 보면 A씨가 다운받았던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이 3715번까지 빼곡히 정리돼있다. /엄보운 기자


검찰은 "형이 너무 가볍다"며 항소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였던 전주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박정대 부장판사)는 항소를 기각했다. "변론 과정에서 드러난 양형 사유들을 종합하여 보더라도 원심이 형이 너무 가벼워 (1심 재판부의) 재량의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났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검사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판시했다.


한 마디로 "형이 가볍다"는 검찰 측 주장이 타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약 4000개의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소지한 범죄자를 보는 법원의 시선은 그만큼 관대했다.


처벌 중 '벌금 200~300만원'이 가장 많아⋯구속은 단 한 건도 없어

이러한 법원의 관대함은 다른 재판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 소지죄 판결문 22건의 처벌 수위를 분석한 결과 거의 대부분이 벌금형에 그쳤다.


로톡뉴스가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 소지죄 판결문 22건의 처벌 수위를 분석한 결과 대부분이 벌금형에 그쳤다. /그래픽=엄보운 기자
로톡뉴스가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 소지죄 판결문 22건의 처벌 수위를 분석한 결과 대부분이 벌금형에 그쳤다. /그래픽=엄보운 기자


22건중 10건이 '벌금 300만원'이었다. 전체의 45.5%다. 이들은 평균 282개의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내려받았다. 재판부는 이들에게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초범"이라거나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벌금형을 선고했다.


다음으로 많은 건 '벌금 200만원'으로 모두 7건이었다. 2~45건의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다운로드받은 경우였다. 이 중에는 과거 공공장소에서 불법촬영물을 찍었다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피고인도 있었지만, 그래도 법원의 선택은 '벌금 200만원'이었다.


그 외 벌금 150만원(2명), 500만원(1명), 100만원(1명)을 선고받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


벌금형 받으면 '취업제한명령'도 못해⋯법의 사각지대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소지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으면, 취업제한 명령도 면제받는다. 우리 법률에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 소지죄(아청법 제11조5항)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취업제한명령에서 제외한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몇몇 1심 판결문을 보면 검찰이 "취업제한명령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지만, 그때마다 법원은 "취업제한명령을 내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한 사건에서는 1심에서 취업제한명령을 내렸다가 항소심(2심)에서 "취업제한명령을 선고한 것은 위법하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새로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제한 명령이 없으면 피고인들은 유치원, 초. 중, 고등학교, 학원, 교습소의 선생님이 되거나 어린이집, 아동복지시설, 체육시설에 취업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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