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 없다"며 2년 6개월간 정산자료 '0건'… 깜깜이 기획사 상대로 완승 거둔 아이돌
"수익 없다"며 2년 6개월간 정산자료 '0건'… 깜깜이 기획사 상대로 완승 거둔 아이돌
소속사는 "순수익 없어서 안 줬다"
법원 "실제 수익 존재 여부 떠나 정산자료 제공은 소속사의 핵심 의무"
아이돌 멤버들 완승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화려한 조명 아래서 춤추고 노래하는 아이돌. 하지만 무대 뒤 그들의 현실은 종종 어둡고 답답한 계약의 굴레에 묶여 있다.
아이돌 그룹 멤버 4명 역시 마찬가지였다. 데뷔 후 2년 6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들은 자신들이 얼마를 벌고 얼마를 썼는지 보여주는 정산자료를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다.
참다못한 멤버들이 소속사를 상대로 낸 전속계약 효력 부존재 확인 소송. 법원은 소속사의 명백한 잘못을 지적하며 아이돌 멤버들의 완승을 선언했다.
수익 없어서 정산서도 안 줬다? 법원의 일침
사건의 발단은 정산이었다. 멤버들은 2022년 소속사와 전속계약을 맺고 활동을 이어왔으나, 2024년 9월 말까지 아무런 정산자료를 받지 못했다.
참다못한 멤버들이 활동을 중단하고 정산자료를 요구하자, 소속사는 그제야 종이 한 장짜리 내역서를 내밀었다. 무려 2년 6개월 치의 수입과 지출이 뭉뚱그려진, 증빙자료조차 없는 엉터리 내역서였다.
심지어 일본 자회사를 통해 벌어들인 음반 수익 1억 원은 누락되어 있었고, 용처가 불분명한 접대비 등이 비용으로 청구되어 있었다.
소속사의 변명은 황당했다. "지출한 비용이 더 많아 순수익이 발생하지 않았고, 멤버들이 먼저 요청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제20민사부(재판장 김민철)의 판단은 단호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소속사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 "정산자료 제공 의무는 원고(아이돌)들에게 실제로 지급할 수익금이 존재하는지와 관계없이, 피고(소속사)가 이행하여야 하는 계약상 의무이다."
재판부는 정산자료 제공이 단순히 돈을 나누는 행위를 넘어, 소속사가 업무를 적정하게 처리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신뢰 척도라고 보았다.
법원 명령도 무시한 소속사… "이미 깨진 신뢰, 억지로 붙일 수 없어"
소속사의 횡포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멤버들이 소송에 앞서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해 법원으로부터 인용 결정(1차 가처분)을 받아냈음에도, 소속사는 이를 무시했다.
법원이 "멤버들의 의사에 반해 연예활동을 요구하거나 방해하지 말라"고 명령했으나, 소속사는 "가처분은 잠정적일 뿐"이라며 큐슈 공연을 강요했다.
또한, 독자적으로 방송에 출연하려는 멤버 활동을 "소속사와 협의되지 않았다"며 훼방 놓기도 했다.
법원은 이러한 소속사의 행동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한 쐐기타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연예인과 소속사 간의 전속계약이 갖는 특수성을 통찰하며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 "전속매니지먼트계약은 당사자 사이의 고도의 신뢰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신뢰관계가 깨어졌는데도 연예인에게 그 자유의사에 반하는 전속활동의무를 강제하는 것은 연예인의 인격권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결과가 된다."
재판부는 소속사의 정산 의무 위반과 가처분 결정 위반 행위 등을 종합할 때 "이 사건 전속계약의 전제가 되는 신뢰관계는 파탄되어 향후에는 더 이상 신뢰에 기초한 매니지먼트 업무를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에 이르렀다"고 못 박았다.
결국 법원은 지난 6월 19일, 원고인 아이돌 멤버 4명의 청구를 모두 인용하며 "전속계약 효력이 존재하지 아니함을 확인한다"고 판결했다. 소송 비용 역시 100% 소속사가 부담하도록 했다.
수익금 유무를 떠나 투명한 정산이야말로 상호 신뢰의 기본이며, 이를 저버린 기획사는 아티스트를 더 이상 옭아맬 수 없다는 법원의 엄중한 경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