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사건… 개발부터 수사 마무리까지
가습기살균제 사건… 개발부터 수사 마무리까지

최예용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23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검찰의 가습기 살균제 재조사 결과에 대한 특조위의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가습기살균제 사건 발생 8여 년만에 책임자 34명이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검찰은 가습기살균제 제조·개발·판매 등에 관여한 SK케미칼, 애경산업 등의 전·현직 임직원 34명을 기소했습니다. 2016년 1차 수사 이후 지난해 11월 재수사를 시작한 지 8개월만입니다.
이번 재수사를 통해 첫 사법처리 당시 처벌을 피했던 관련자들이 대거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 기업들의 조직적 증거인멸 작업도 드러났습니다. SK케미칼 홍지호(68) 전 대표 등 8명이 구속기소 됐고, 정부 내부 정보를 누설한 환경부 서기관 최모 씨 등 26명이 불구속기소 됐습니다.
25년 전부터 침몰하기 시작한 ‘안방의 세월호’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시작은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SK케미칼은 1994년 가습기에 넣어 사용하는 방식의 가습기살균제를 개발했습니다. 이후 인체 호흡독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1997년부터 가습기살균제들이 속속 출시되었습니다. 무려 18년간 아무 규제 없이 매년 60만 개씩 팔리던 가습기살균제가 판매를 중단한 건 2011년 영유아·산모의 잇따른 죽음으로 치명적인 독성이 확인된 다음이었습니다. 옥시 제품을 사용한 유아가 2002년 사망한 첫 사례부터 9년 뒤의 일이었습니다.
현재까지 가습기살균제로 질병을 얻어 피해를 신고한 이들은 6476명이며 그중 1421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안방의 세월호’라 불리는 이유입니다. 2011년 보건복지부는 “산모 연쇄사망, 가습기살균제 때문”이라고 발표했지만 검찰이 수사를 시작한 건 발표 후 5년이 지난 2016년이었습니다. 결국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최초 사망 이후 9년이 지나서야 사건의 실체가 드러났고, 14년이 지나서야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한 기업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의무를 저버린 정부
출시 이후 사망자가 146명이 될 때까지 소비자는 아무런 의심 없이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해왔습니다. 화학물질의 생산·수입·유통·판매·폐기 등 전단계를 관리해야 할 정부가 침묵했기 때문입니다. 환경부와 보건복지부는 서로 책임을 떠넘겼고, 기획재정부는 국가 예산 지원의 법적 근거가 없다고 난색을 보였습니다. 당시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피해자들에 대한 국고지원은 곧 국민의 세금을 쓰는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제조사와 소송하라며 소비자를 외면했고, 환경부는 피해 신고조차 제대로 받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직접 사과하며 제대로 된 지원을 약속했지만 피해자들은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2016년 폐질환 관련 가습기살균제의 피해등급을 1, 2, 3, 4 등급으로 나누었습니다. 1, 2등급을 받은 피해자는 병원비 등을 지원 받을 수 있지만 3, 4등급을 받으면 사실상 피해자로 인정 받지 못합니다. 2017년 기준 3,4등급으로 분류된 피해자는 전체의 87.2%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70% 이상이 각종 호흡기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면서 환경단체와 피해자들은 피해의 급을 나누지말고 통합 배상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편, 지난 5월 고(故)조덕진 목사는 피해를 신고했으나 4단계 판정을 받아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고 사망하였습니다.

지난 5월, 서울 여의도 옥시 본사 앞 시민분향소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참사 피해 사망자 추모 시민분향소 철수 추모예배 및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촉구 기자회견'에서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회원들이 고인들을 기리며 헌화 후 묵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죽음으로 드러난 책임조차 회피한 기업, 처벌은
앞서 언급했듯, 검찰은 보건복지부의 발표 이후 5년이 지나서야 ‘가습기살균제 수사 전담팀’을 꾸렸습니다. 발표 이듬해인 2012년에 피해자 9명이 살균제를 생산·유통·판매한 10개 업체를 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첫 고소했으나 검찰은 이마저도 외면했습니다. 질병관리 본부의 역학조사가 나오며 수사를 재개하겠다며 수사를 미뤘던 것입니다. 늦장 수사로 가해 기업들이 빠져나갈 시간만 벌어줬다는 비판이 나오는 까닭입니다.
수사는 초기부터 난항을 겪었습니다. 기업이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질병관리본부가 역학조사를 내 놓았지만 옥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자체 조사결과를 내밀었습니다. 60차례의 측정 결과 위험 농도가 나오지 않았다는 내용의 보고서였습니다. 검찰은 이를 조직된 것으로 밝혔고 보고서를 유리하게 작성해준 서울대 조명행 교수 역시 구속했습니다.
옥시의 뒤늦은 사과는 여론의 못매를 맞았고, 검찰은 옥사와 옥시 외 제조사로 나누어 수사를 확대했습니다. 그러나 옥시 해외 본사의 책임자 수사는 보류됐고, 가습기살균제 관련 화학물질 관리를 엉망으로 한 각 부처 책임자에 대해서도 수사가 거의 없었습니다. 검찰이 수사대상을 좁힌 것을 두고 지속해서 문제 제기가 이어져 온 이유입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가해 기업 절반은 빠져나가게 됐다”고 일갈했습니다.

커 푸자리 옥시 배상대표(왼쪽)와 곽창헌 옥시 전무가 11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가습기살균제사건 진상규명 소위원회 현안점검회의에서 피해자들의 항의에 사과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검찰은 이번 재수사가 있기 전까지 SK케미칼 역시 수사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SK케미칼이 가습기살균제의 원료를 팔았음에도, SK케미칼 측 직원의 “흡입 용도로 사용해서 안된다고 옥시에 경고했고, 가습기살균제로 만들어 팔 줄은 몰랐다”는 진술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번 재수사로 인해 SK케미칼의 시엠아이티(CMIT)와 엠아이티(MIT)의 유해성과 더불어, 이들 연료의 안전성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확인됐습니다. 17년간 “가습기 메이트는 인체 안전”하다고 한 SK케미칼의 광고는 거짓으로 드러났습니다.
검찰이 5년 넘게 끌던 첫 수사는 2016년 6월쯤 마무리됐고, 대법원이 작년 1월 판결을 확정하면서 가습기살균제 관계자들의 처벌까지는 7년이 걸렸습니다. 대법원은 신현우(71) 전 옥시 대표와 노병용(66) 전 롯데마트 대표에게 각각 징역 6년과 5년을 내리는 등 주요 관계자들 대부분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신 전 대표와 함께 기소된 존 리(51) 전 옥시 대표는 무죄를 받았습니다.
판결은 끝났지만 사건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피해자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피해자들 모임인 ‘가습기 살균제 참사 전국네트워크’는 대법원 판결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규모 참사라는 점을 고려하면 살인기업과 살인자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다”며 “사회적 참사특별법이 보장하는 특별조사위원회와 특별검사를 통해 새롭게 진상이 밝혀지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이번 재수사가 제대로 된 처벌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이는 상황입니다.
국가의 의무와 기업의 사회책임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이번 검찰의 재수사 결과를 환영한다고 밝혔습니다. 특조위는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진상규명을 방해한 행위의 적발을 높게 평가한 한편, 일부 기업과 정부의 책임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최예용 부위원장은 “특조위가 정부의 과실에 방점을 두고 계속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주최로 19일 오후 서울 중구 YWCA 대회의실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대상 업무설명회에서 설명회장 벽면에 피해자와 가족들의 요구사항이 적힌 현수막이 부착돼 있다 / 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최 부위원장의 발언은 정부의 소비자보호정책 기초가 된 유엔소비자보호지침(UN Consumer Protection Guideline)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보입니다. 지침은 건강과 안전 위험으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할 국가의 의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ISO26000 사회책임지침(Guidance on Social responsibility) 역시 안전한 제품만을 제공할 기업의 사회책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모든 조직이나 기관이 의사결정 및 활동 등을 할 때 소속된 사회에 이익이 될 수 있도록 책임을 규정한 국제적 합의입니다.
이번 가습기살균제 사건에서 정부의 소비자보호정책도, 기업의 사회책임도 작동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