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검의와 의대 교수가 샅샅이 깨부순 정인이 양모의 주장들
부검의와 의대 교수가 샅샅이 깨부순 정인이 양모의 주장들
살인죄 벗으려는 양모 주장들 부정한 전문가들
"배 앞 쪽에서 들어온 힘 때문에 사망했다"고 입 모아

16개월 된 입양 딸 정인 양을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양부모의 4차 공판이 열린 17일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 앞에서 시민들이 팻말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우발적으로 떨어뜨려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정인이 양모의 주장이 의학 전문가들에 의해 산산조각 났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서울 양천구 입양아동 학대 사망사건(일명 정인이 사건)'의 네 번째 공판에서다.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김성호 국립과학수사원 법의관(정인이 부검의)과 법의학자인 유성호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양모 측 주장을 하나하나 논박했다.
양모 측 변호인이 새롭게 제시한 "심폐소생술(CPR) 하다가 발생한 장기 손상"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두 의학 전문가들은 "성립하기 어려운 주장"이라고 단언했다.
이로써 검찰은 "정인이 양모가 살인죄를 저질렀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매우 유리한 고지에 올랐다. 법률 전문가들은 "7부 능선을 넘은 것"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이번 사건 초기부터 양모 측 주장은 일관적이었다. "고의가 아닌 우발적으로 떨어뜨렸고, 이로 인해 복부 손상이 발생했다"는 것. 살인하려는 의도 없이 훈육하다가 일어난 사고라는 주장이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아이가 밥을 먹지 않아서 흔들다가 아이를 떨어뜨려" → "범보의자(목을 못 가눌 정도로 어린 영아를 앉힐 때 쓰는 전용 의자)에 등허리 부분이 의자에 부딪혔고" → "결과적으로 췌장 절단 등 복부 손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날 법정에 출석한 전문가들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견해를 밝혔다.
근거는 크게 두 가지였다.
① 양모 주장이 사실이라면 척추뼈도 함께 부러졌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② 췌장의 해부학적인 위치상 범보의자에 부딪혀 절단될 가능성은 없다.
① 척추뼈가 부러진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정인이는 '췌장 절단 및 장간막 열창(찢어짐) 등 복부 손상'으로 사망했다. 부검에서 췌장과 함께, 췌장에 붙어있던 췌장종단동맥이 파열된 것을 확인됐다.
췌장 뒤쪽에 척추뼈가 수직으로 지난다. 등 쪽에서 오는 충격으로 췌장이 두 부분으로 나뉘려면 척추뼈가 췌장을 눌러야(압착해야) 가능하다. 몸 뒤편에서 오는 충격으로 췌장이 절단되려면, 그 충격을 췌장보다 먼저 받는 척추뼈 또한 성할 수 없다. 하지만 피해 아동의 척추뼈는 손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성호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관은 "췌장이 절단된 사례는 교통사고 때 운전대나 안전벨트로 배가 세게 눌리는 경우에 보고된다"고 말했다. 김 법의관이 제시한 경우도 몸 앞쪽에서 오는 충격에서 비롯한 것이다.
유성호 교수 역시 "췌장이 뒤쪽에서 가해진 힘으로 절단되려면 척추뼈가 골절돼야 한다"고 답했다.
따라서 척추뼈 골절 없이 췌장이 손상됐다는 것은, 몸 앞쪽에서 직각으로 들어오는 강한 힘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② 범보의자에 부딪힌 정도로 췌장이 절단되지 않는다
양모 장씨는 165cm 키의 성인 여성이 자신의 눈높이에서 체중 9~9.5kg인 아이를 떨어뜨렸고, 아이가 범보의자에 찍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췌장 절단과 장간막 열창이 발생했다는 것.
유성호 교수는 양모의 주장에 반박했다. 췌장이 절단된 이유를 "배 앞쪽에서 압착하는(누르는) 기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복부 속 장기가 손상되려면 4000N(뉴턴)만큼의 힘이 필요하다. 이 힘은 400kg로 복부에 누르는 압력과 비슷하다. 물론 사망 당시 정인이의 상태가 다른 아이들보다 마르고 약했기 때문에 낮은 정도의 힘으로도 췌장이 절단될 가능성은 있다.
유 교수는 "췌장 위치가 오묘하기 때문에 (떨어뜨린 것보다) 발로 밟는 경우가 가장 합당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김 법의관도 "집에서 보통 아이를 키우면 복부 손상이 생기기 드물고, 혹시나 생길 수 있다고 하더라도 췌장이나 장간막이 손상되기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검에서 확인한 손상을 "사고가 아닌 폭행으로 생겼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양모 장씨 측은 복부 손상이 CPR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한 논문을 인용하면서 "복강 내 상해가 부검에서 발견되면 심폐소생술로 생긴 것이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성호 법의관은 "(심폐소생술로 인한 복강 손상이) 보고된 예가 없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딱 잘라 말했다. "늑골(갈비뼈) 골절이 생기는 경우가 있지만, 소아는 골절이 생기는 경우가 없다"고 했다. 소아는 심폐소생술 때 성인보다 약하게 하는 데다 뼈 자체 탄성이 좋기 때문이다.
유성호 교수 역시 양모 장씨 측 주장을 부정했다.
"잘못된 심폐소생술 탓에 복부 손상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없느냐"는 변호인 질문에 유 교수는 오히려 "(배와 등을) 압착해서 하는 경우가 있을까요?"라며 오히려 반문했다. 가능성이 없다는 답변이었다.
유 교수는 "장간막은 생각보다 안 찢어진다"며 "UFC 선수 정도나 돼야 (주먹으로 때렸을 때) 찢어진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