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경찰 출신 변호사도 "이례적이다"⋯의문투성이 '한남더힐' 주거침입 사건
[단독] 경찰 출신 변호사도 "이례적이다"⋯의문투성이 '한남더힐' 주거침입 사건
최고의 보안시설 갖춰진 '한남더힐', 8차례나 "무단침입했다" 신고 들어와
신고자도, 조사했던 경찰도 조금씩 수상한 '주거침입 사건'
![[단독] 경찰 출신 변호사도 "이례적이다"⋯의문투성이 '한남더힐' 주거침입 사건 기사 관련이미지](https://d2ilb6aov9ebgm.cloudfront.net/2020-03-27T20.36.22.568_715.jpg?q=80&s=832x832)
74평짜리 집이 84억원에 거래되는 전국에서 제일 비싼 집, 바로 서울 용산구 한남더힐이다. /한스자람
서울 용산구 한남더힐. 74평짜리 집이 84억원에 거래되는 전국에서 제일 비싼 집이다. 집값만큼이나 보안도 철저하다. 사각지대가 없는 건 기본이고, 최고 보안 전문가들이 24시간 아파트를 지킨다.
그런 곳에 무려 8차례나 무단침입한 사람이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사실이라면 '괴도 루팡'급 침입 솜씨였고, 한남더힐 경비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할 대형 스캔들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연인 관계였던 남녀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사귀던 사이였을 때 집에 드나든 옛 연인을, 헤어진 뒤 주거침입으로 고소해 불거진 경우였다. 물론 연인이라 하더라도 집주인의 동의 없이 자택에 들어가면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
원래대로라면 사건의 핵심은 '집주인의 동의 여부'로 쏠렸어야 했다. 하지만 사건은 다르게 번졌다. 수사기관이 피의자로 몰린 전(前) 남자친구의 방어권을 충분히 보장했느냐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피의자로 몰린 남성 측은 "수사 청탁을 의심할 정도로 편파적인 수사였다"고 주장했고, 수사기관은 "정상적인 수사였다"고 맞섰다.
이 사건은 지난 2019년 6월 17일 서울용산경찰서에 고소장이 접수되며 시작됐다. 고소인은 여성 김모씨였다. "내가 소유한 집에 어떤 남자가 침입했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은 다음날 곧바로 현장에 출동해 CC(폐쇄회로)TV를 확인했고, 김씨로부터 고소인 진술조서까지 받았다. 경찰이 고소장을 받자마자 이렇게 빨리 수사를 나서는 경우는 잘 없다.

이례적인 경찰의 움직임은 6월 18일 밤에도 이어졌다. 고소인 김씨 조사가 끝나자마자, 담당 경찰은 고소장에 가해자(피의자)로 적힌 A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경찰서로 나와서 조사를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시각은 오후 6시였다.
보통 피의자 조사 일정은 조율을 거쳐 정한다. 당일 출석을 요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것도 일과가 끝나가는 오후 6시라면 더욱 그렇다.
A교수는 전화를 끊고 "오늘 출석은 어렵고 다음 주에 출석하겠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담당 경찰은 이 문자메시지를 받은 뒤 이날 오후 7시 15분쯤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A교수 측 변호인인 법무법인 오른의 박석주 변호사에 따르면, 경찰은 A교수가 변호인을 선임한 뒤에도 조사 일정을 일방적으로 정하려 했다.
박석주 변호사는 고소장 접수 4일 뒤인 6월 20일, 담당 경찰에 전화해서 "변론 준비를 위해 조사 일정 변경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하지만 담당 경찰관은 난색을 보였다고 한다. "증거관계도 명확하고 사건 처리 기한도 있기에 불가능하다"는 취지로 답했다는 것이다.
박 변호사는 "고소 사실에 대해 반박할 증거가 있고 변호인 일정도 고려해 달라 강하게 요청하자 담당 경찰관이 1주일가량 조사 기일을 연기해줬다"고 밝혔다.

이 사건을 독립적으로 검토한 '변호사 서범석 법률사무소'의 서범석 변호사는 "(관련 법에 따르면) 고소·고발 사건은 접수한 날부터 2개월 이내에 수사를 완료해야 하지만 일반적인 사건 처리 기한이란 건 없다"며 "상당 기간 검토가 필요한 사건도 있고 즉시 처리해야 하는 사건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서 변호사는 경찰대를 졸업하고 경찰청 규제개혁 법무과와 수사기획과 등에서 근무했다.
그렇다면 경찰은 이 사건을 급박하게 처리돼야 할 사건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봐야 하는 걸까.
법무법인(유한) 민의 윤수복 변호사는 "단순 주거침입 사건인데 하루 만에 피의자에게 출석 통보를 하고 변호인 선임 후에 1주일가량만 연기해준 거라면 이례적으로 빨리 처리되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실무상 (사건이 접수되고) 3개월이 지나면 '빨간불 들어왔다'고 얘기하면서 가장 우선적으로 사건을 털고 간다"고 덧붙였다.
사건이 접수되고 나서 시간이 꽤 흘렀다면 몰라도, 처음부터 급하게 처리하는 경우는 이례적이라는 취지다. 윤 변호사는 경찰대를 졸업하고 경찰청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변호사다.
고소장을 통해 지목된 피의자를 범인으로 몰아가는 수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지만, 고소장에 적힌 내용 중 석연찮은 부분이 많았다.
피의자 A교수를 고소한 김씨는 최초 고소장에 "내가 소유한 집에 어떤 남자가 침입했다"고 적었지만 김씨는 집주인이 아니었다. 그 아파트에 사는 사람도 아니었다.
해당 아파트에 실제로 살고 있는 사람은 A교수의 전 여자친구였던 정모씨였다. 하지만 경찰은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때까지도 이 사건의 피해자를 정씨로 특정하지 못했다.
김씨의 거짓말은 사건이 검찰에 송치되고 나서야 바로 잡혔다. 박석주 변호사는 "담당 경찰관은 (최초 고소인) 김씨가 이 사건 아파트에서 실제 거주하였는지에 대한 확인 없이 단순히 김씨의 말만 듣고 수사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런 점 때문에, 피의자 A교수 입장에서는 '편파적인 수사'라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었다.
A교수 측은 정씨가 갖고 있는 사회적 영향력이 이런 방식의 경찰 수사를 이끌어낸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정씨는 수천억원대 자산을 일군 것으로 유명한 IT업체 대표의 전 부인이다.
A교수 측은 "명백한 무죄 증거가 있기 때문에, 그녀에 대한 의심을 더욱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A교수가 주장하는 무죄 증거는 크게 두 가지다.
①현관문 비밀번호 공유
A교수 측은 두 사람이 동거하던 사이라고 말한다. 아파트 현관문 비밀번호와 정씨 소유의 차량도 공유하고 있었다. A교수는 "정씨와 결혼을 전제로 사귀었고 동거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주장한다.
A교수는 정씨의 이런 묵시적인 승낙이 있었기 때문에 출입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또한 정씨가 주장하는 A교수의 주거침입 시기는 둘이 문제없이 교제하던 때였다. A교수는 "당시 싸워서 사이가 나쁜 시기도 아니었기 때문에 A교수의 정씨 아파트 출입은 자유로웠다"고 했다.
② 사전에 허락받았던 출입
주거침입이 발생한 때는 정씨가 미국으로 출국해 집을 비운 상태였다. A교수는 그 시기에 정씨의 아파트에서 그림을 그리기로 계획했다.
A교수는 정씨가 출국하기 전에 이런 계획에 대해 미리 허락을 구했다고 한다. 이 당시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면 두 사람이 친밀한 사이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사전에 허락을 구했으니 주거침입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A교수는 이 카카오톡 메시지를 무죄 증거로 제출했다.
일방적으로 사건이 진행됐다는 A교수 측 주장에 대해, 로톡뉴스는 담당 경찰은 어떤 입장일지 궁금했다. 사건을 담당한 용산경찰서에 여러 차례 연락을 해봤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